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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18 [14:01]
<설교>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1~8)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주일설교, 2009-11-02
 
김동호
목사 안수를 받은 지 30년이 좀 넘었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아직 늙은 목사는 아니나 이젠 저도 젊은 목사라는 소리를 듣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목회는 언제나 제 능력 밖으로 풍성했습니다. 그 때문에 목회하면서 살아온 삶이 행복했습니다.

올 1월부터 교회를 직접 운영하는 목회에서는 손을 뗐습니다. 설마 정말로 그랬을까 의심하는 분들도 없지 않지만 높은 뜻 숭의교회가 제 마음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졌으니, 그리고 그것이 조금도 섭섭하거나 아쉽지 않으니 교회 목회에서 손을 뗐다는 말이 크게 거짓된 말은 아닙니다.

목회는 늘 행복하고 감사했었는데도 막상 목회에서 손을 떼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섭섭하실는지 모르겠으나 날아갈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자유 함을 느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목회에 짓눌려 있던 면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생각들’이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늘 그것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힘들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게도 물론 고집이 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셉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나름대로는 남의 말에 제법 귀를 기우리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제 마음에는 언제나 나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만 나의 부족한 생각이 보충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과 마음은 있습니다.

저는 양심적이기만 하다고 생각되면 저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배척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였습니다. 양심이 다른 사람과는 가급적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여도 배척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어서 나와 다른 생각을 이야기 해 주어야만 내가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착한 생각(?) 바른 생각이 제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늘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옳고 내게 좋은 일로 여겼습니다.

저는 양심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저는 사람을 나름 판단할 때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놓고 판단하기 보다는 저가 양심적인 좌익이냐 양심적인 우익이냐를 먼저 봅니다. 양심적인 우익과 양심적인 좌익을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언제나 저는 그 모두에게서 감동을 받았던 교훈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상보다 양심을 언제나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저도 양심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저는 저의 그런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심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말씀하시면서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내가 그토록 중히 여기는 양심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다 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중에도 정직하고 깨끗하며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심적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교회에는 양심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같은 관(觀)을 가지는 것입니다. 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교회의 일을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그와 같은 갈등은 참고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개선하고 고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껏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와 같은 갈등을 인정하고 참으려고만 하였습니다.

교회 목회를 접으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과 같이 교인들에게 성령을 사모하고 그것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가르쳤어야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진정한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보통 선생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신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니고데모는 정답을 맞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니고데모의 답을 인정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틀렸다는 것입니다. 답은 맞았는데 그 답을 유출하게 된 식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니고데모가 당시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예수님의 다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하늘로서 부터 오신 선생님이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답이 맞는 것 같아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너는 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를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다가 오순절 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정말로 거듭났습니다.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 받기 전에도 저들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었을 뿐입니다. 무늬만 크리스챤이었던 것입니다. 인생관이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전과, 세상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거듭난 이후 저들의 삶은 befor와 after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 달라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인 자신에게서 하나님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죽도로 예수님을 따라 다닌 이유와 목적이 자기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 자리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헌신하고 열심을 내기는 하였지만 저들이 그렇게 한 이유와 목적은 ‘보다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하여’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성령을 받은 후 저들의 삶의 목적은 온전히 주를 위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니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지 않음으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졌기 때문에 저들은 서로 유무상통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불편하고 불행한 여건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저들은 언제나 천국을 누리며 느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 달라진 또 다른 하나는 삶의 능력입니다. 저들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과 주파수가 같아지자 그 주파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를 하나님 나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습니다. 그 능력 중에 하나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식대로 사는 것이 쉬워지는 능력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를 믿는 것이 쉬어 집니다. 하나님의 식과 법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어집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럽던 일들이 전혀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주와 같이 길을 가는 것이 즐거워 집니다. 전에 무거웠던 부담과 짐들이 가벼워 집니다.

그 능력 때문에 저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불편하고 불행한 여건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저들은 언제나 천국을 누리며 느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또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아주 민감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잘 몰랐습니다. 죄에 대하여 둔감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기가 오히려 의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나자 저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죄들에 대하여 민감해 지기 시작하였고 그 죄를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품으면서부터 자기의 죄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 죄 때문에 절망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죄에 대하여 민감해지고, 죄가 괴로워지면 죄를 계속 품고 살 수가 없습니다.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 죄에서 자유로워지고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십자가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는 자기가 죄인 인 줄을 아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할 줄 아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자기의 죄에 대하여 민감해 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언제나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회개케 해 주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죄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깊은 회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을 갖고 회개하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게 되면 구원을 얻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던 날 저를 키워 주신 목사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이제 다 끝나가는데 우리 김 목사는 이제 시작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교회를 넷으로 분립하고 네 목사님들에게 담임을 맡기고 나니 그 마음이 제게도 듭니다. ‘나는 이제 다 끝나가는데 우리 이 네 목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모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높은 뜻 교인 모두가 다 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같은 생각이 될 것입니다. 한 뜻이 될 것입니다. 같은 목적을 갖게 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같은 방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그 목적을 능히 달성하고도 남을 삶의 능력들을 갖게 되어 남들이 다 힘들어 부담스러워하는 일을 쉽게 그리고 아주 신나게 하는 복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저는 성령으로 거듭남의 중요성을 깊이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냥 양심만 반듯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되고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아무리 양심적이어도 육입니다. 양심적인 육의 생각으로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중책을 맡아 일꾼이 되시거든 특히 성령으로 거듭남을 의무적으로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심적인 육의 생각으로 교회를 이끌어가게 될 것을 두려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확신이 없다면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으로 중책을 맡지 마시고 사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잘 못 이끌고 갈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 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사모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성령 받지 않고 예수 믿는 일입니다. 세상과 하나님께 양다리 걸치고 사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에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거듭남을 사모하여 여러분들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 높은 뜻 교회는 전과 다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좀 더 파워풀하고 좀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아름다운 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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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02 [19:5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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