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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4 [10:02]
악의 비밀 (1)
마귀가 사용하기를 즐기는 사람의 유형 다섯 가지
 
정성민
이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
왜 악이 존재할까?
우리는 이러한 악의 기원을 정확히 밝힐 수 없다.

악의 기원을 하나님에게 둘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악의 기원을 악마에게 둘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악의 기원을 인간의 자유의지에 둘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악의 실체는 신비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세상에 악이 현존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신비한 것이다. 그러기에 어거스틴은 악의 기원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한다. 악조차도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아름답게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은 선의 시녀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온갖 사회 부정의와 인간 개개인의 거짓과 탐욕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경험하는 현실이다.

도대체 세상의 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필자가 고민하는 가운데 내린 결론은 악한 영과 그를 따르는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마귀는 영의 세계에 속하였다. 그러므로 악한 영이 인간 세계에 관여하는 것은 그 자신의 직접적 침입보다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통해서이다. 세상의 악은 마귀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렇다. 마귀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야심을 펼친다.
마귀는 곳곳에 심어놓은 자신들의 일꾼들을 통하여 세상과 교회를 아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악의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마귀는 자신을 뜻을 펼치기 위해 주로 사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cnn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무기가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인간의 두뇌와 혀가 가장 무서운 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마귀가 사용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사람들의 유형을 5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로, 거짓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거짓의 아비, 마귀를 쫓아 속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보편적인 특징은 아주 점잖고 예의 바르며 아주 말수가 적다는 것이다. 어쩌면 신사와 숙녀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보편적인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독버섯이 너무나 아름답고 탐스러운 것처럼 거짓의 사람들의 위장술은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던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이 거짓의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가짜 거짓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거짓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어쩌면 거짓의 사람들의 모조품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거짓의 사람들을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하여 그들과 대항하여 싸운다. 하지만 자신들의 명백한 거짓말과 얕은 수로 인하여 쉽게 사람들에게 들키고 오히려 망신을 당하게 된다. 어쩌면 거짓의 사람들의 희생 제물로 쓰여진다. 거짓의 사람들과 가짜 거짓의 사람들의 한판 승부로 인하여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위치?)를 굳히게 된다. 사람들은 거짓의 사람들의 온순함과 사려 깊음에 감탄하게 되고, 가짜 거짓의 사람들의 경박함과 사기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바로 거짓의 사람들의 눈속임에 가짜 거짓의 사람들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감옥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리라.   

셋째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과 악의 차이점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거짓의 아비 마귀가 자신을 그렇게 쉽게 노출시킬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지만 이들이 마귀가 검은 색 옷을 입고 드라 퀴라와 같은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거짓의 사람들의 아주 용이한 도구이다. 거짓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겸손과 온유를 극찬하며 그들의 추종자가 된다. 이들은 거짓의 사람들과 가짜 거짓의 사람들의 전쟁을 바라보면서 점차 거짓의 사람들을 추앙하게 된다. 결국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거짓의 사람들을 성자로 등극시키게 된다. 바로 가짜 거짓의 사람들의 단순무식한 저항과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판단이 거짓의 사람들을 모든 단체와 기관의 핵심인물로 성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넷째로,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렴풋이 선과 악의 기준을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로 인해 피해 입기를 두려워하는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다. 거짓의 사람들의 사기성을 목격 한다 해도 그냥 보아 넘기려고 한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평화이다. 갈등관계를 원치 않기에 성장을 위한 건강한 갈등조차도 원치 않는다. 한마디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용하고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냥 넘어가자 내지는 덮어 버리려는 것이 이들의 성향이다. 결국 이들은 거짓의 사람들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거짓의 사람들은 항상 윤리와 도덕을 강조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를 중시한다. 거짓의 사람들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건드릴 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의 개념이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용서와 사랑은 회개와 심판에 의해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간과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없고 그냥 위기를 넘기기 위해 말로 하는 회개를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이 빠져드는 함정인 것이다. 여기에 이들이 지닌 메시아 콤플렉스가 더해지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은 결국 거짓의 사람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

다섯 째로,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거짓의 사람들과 싸우기도 전에 가짜 거짓의 사람들이 거짓의 사람들과 전쟁을 벌여 교회와 단체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거짓의 사람들은 힘 하나 안들이고 가짜 거짓의 사람들의 상대효과로 성자로 등극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거짓의 사람들을 대변하며 그들을 추앙하게 된다. 더 나아가 소심하고 겁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내세우며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게 된다. 이제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선택은 단 2가지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다가 쫓겨나가든지 아니면 스스로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용기 있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다. 어쩌면 파레토의 법칙에 따라 5명중의 한명이라고나 할까. 물론 거짓의 사람들도 이러한 용기 있는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알고 의식한다. 하지만 거짓의 사람이 이미 가짜 거짓의 사람을 거짓의 사람으로 정죄하고 감옥(왕따?)에 가둔 후 그의 추종자들을 확보한 이후에는 정말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이제 용기 있는 사람들은 아주 지혜로워야 하며 인내해야 한다. 함부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거짓의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을 말해보아야 더 큰 문제가 터지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거짓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는 영들과의 전쟁뿐만 아니라 거짓의 사람들의 기만과 술수와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영적 전쟁은 이중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주로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는 아주 능하다. 하지만 그 마귀들이 병기로 사용하는 거짓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영적 전쟁이 아주 힘겨울 수밖에 없다.

개척교회의 창립 멤버에 거짓의 사람들이 끼어있다면 그 교회의 성장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러기에 아무리 성도 한 사람이라도 다급하더라도 거짓의 사람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가 아주 커지게 되면 거짓의 사람들을 다 몰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을 장로로 임명하는 순간, 그 교회의 운명은 명암을 달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단신으로 왔다가도 문제를 일으키고 나갈 때는 수십명, 아니 수백명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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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05 [15:5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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