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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4.10.23 [08:50]
예수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잔느 귀용, 테레사 수녀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본다
 
황효식

 

주님의 실물 초상화나 사진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현존하는 예수님의 모든 초상들은 오로지 화가의 상상에 의거하여 그려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거룩과 성결에 걸 맞는 주님의 성스러운 얼굴을 끈질기게 묘사해 온 예술가들의 진지한 노력의 결과로 "아, 저분은 예수님이시다!" 하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주님의 얼굴 원형이 만들어졌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내 방에 십년이 넘도록 걸려있는「warner sallman」의 예수님 초상화이다.

「warner sallman」이 묘사한 주님의 얼굴(사진)은 예지와 총명으로 가득하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감으로 인하여 한 치의 권태나 게으름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분명한 초점. 확신의 침묵. 단아한 이마와 콧날. 무척 잘생긴 얼굴이다. 그러나 잘 생겼다고 느껴지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웅혼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불현듯 옷깃을 여미고 내 영혼을 수습해야한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성화를 보면 주님의 얼굴이 너무 예쁘게(?) 그려져서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된다. 장동건보다 더 예쁘게 생긴 주님의 얼굴을 보면 나는 왠지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런 주님의 얼굴은 전혀 은혜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여자들이 오빠, 하고 소리치며 매달릴 것 같은 불경건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무슨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려는 싸구려 감상주의는 사절이다. 눈 쌍커플이 뚜렷하고 인형처럼 예쁜 예수님의 얼굴을 성경책에 붙여 놓은 사람을 보면 나는 그 사람의 영성이 왠지 천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글세, 어쩌면 도에 지나친 엄격주의가 불러일으킨 독선적인 편견인지도 모르겠다.
▲워너 셀먼     ©자료사진

나는「warner sallman」이 묘사한 주님의 얼굴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주님이 실제로 그렇게 생기셨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면 실제와 상상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나는 그것을 이생에서의 피곤한 몸과 부활한 영생체에서 오는 차이점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북한 사람들이 늙고 못생긴 김정일을 젊고 잘생긴 김정일로 묘사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예수님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성경이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상상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길게 길러 어깨까지 드리우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셨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분이 입으신 옷도 그분의 검소함에 비추어 볼 때, 그 당시 서민들이 즐겨 입던 거칠고 허술한 통 베옷을 입으신 것이 맞을 것이다.
▲간증하는 워너 셀먼     ©자료사진

주님의 머리모양과 수염, 그리고 그분의 옷차림은 우리가 흔히 보는 주님의 초상과 거의 흡사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용모는 어땠을까? 신약성경에는 주님의 용모가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이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이 들어 보이셨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요8:57에는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주님의 실제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십대 후반으로 보였다는 얘기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 있고 또 더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대게 5년 안팍이다. 그런데 나이보다 15년 이상 늙게 보였다는 것, 그것도 한창 때인 30대 초반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은 주님이 겪으신 당대의 고충과 비원이 얼마나 심원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중동지역의 그 뜨거운 햇살아래에서 목수생활을 했던 주님의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이 아마도 그분을 실제 나이보다 그토록 많게 보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고 해서 꼭 못생겼다는 보장은 없다. 잘생기고 멋진 늙은이들도 얼마든지 많다.「숀 코넬리」나「로버트 레드포드」는 노인들이지만 얼마나 멋지고 잘생겼는가. 그러면 주님도 비록 나이보다는 늙어 보였지만 잘 생긴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사야서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묘사를 통하여 주님의 얼굴이 못생겼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2)

내가 좋아하는 신앙인 중에「쟌느 귀용」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녀는 그 무서운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도 꺽을 수 없었던 불멸의 신앙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녀는 1600년대 사람인데 그녀의 용모를 표현한 많은 그림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마리아와 같은 성스러운 미인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오랜 세월 감옥에 투옥되어 고난을 당했던 여인이 그렇게 젊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쟌느 귀용」을 생각하면「테레사」수녀가 떠오른다.「테레사」수녀는 우리와 동시대 사람이므로 우리는 그녀의 실제 용모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테레사」수녀는 거칠고 투박하며 깊이 패인 주름살 투성이의 못생긴 늙은 여인이다. 그러나 만약「테레사」수녀가 몇 백년 전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녀의 실제 용모를 알 길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젊고 성스러운 미인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안 그런가?

나는 왠지 주님도「테레사」수녀처럼 보잘 것 없는 용모를 지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테레사」수녀가「쟌느 귀용」처럼 젊고 성스러운 미인으로 묘사될 수 있듯이 주님도 젊고 잘생긴 모습으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원히 덧입게 될 영생체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게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warner sallman」이 묘사한 주님의 얼굴이 좋다.


 



기사입력: 2003/09/05 [11:1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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