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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4.24 [02:02]
CCM의 긍정성과 부정성
미국 CCM의 어제와 오늘을 중심으로
 
김삼

한국과 해외 한인교계가 요즘 ccm으로 인한 세대차 증후군을 앓고있다. 미국교계도 가장 골치 아픈 당면문제의 하나가 예배에서의 세대차이다. 이 문제는 이미 전세계 선·중진국교계에 공통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ccm 악계는 국제저작권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주로 미국 곡을 비롯한 해외 곡들이 활용되다가 '주찬양'의 최덕신 등이 쓴 창작곡들이 호평을 받고 새 작품들이 이어지면서 한국 나름의 ccm 영역을 넓혀왔다.

미국 ccm 역사를 간추려보면, 그 시조는 1970년대에 스웨덴계 이민교회인 복음기독교단(ecc)출신의 '지저스피플'을 중심으로 한 거듭난 히피들의 '예수운동'(jm) 등으로 배태됐고, 음악적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 등의 영향을 받았다.

80년대 들어 빈야드·마라나타·인티그리티호산나·워드와 같은 교계 음악출판사를 통해 ccm이 빠른 속도로 보급돼 90년대 후반기에는 미국교계 전체에 번지면서, 금세기 전 이미 미국교회 과반수가 ccm을 활용하게 되는 통에 기성세대와의 격간을 낳기에 이르렀다.

ccm은 19세기 미국 영적대각성운동의 음악적 지주였던 복음찬가(gospel hymns)의 선분과 연결되는 기존 복음송가는 물론, 남부의 컨추리송, 락과도 야합하여 온갖 종류로 분화, 발전했다. '모든 것 되신 주님'의 랠프 카마이클, '나는 길 잃은 나그네였네'와 수많은 칸타타를 쓴 잔 피터슨, '살아계신 주'의 윌리엄 게이더, '작은 불꽃 하나가'의 커트 카이저, '나의 헌정' 의 안드레 크라우치 등 기라성 같은 교회음악인들이 이미 70, 80년대부터 ccm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며 이들의 곡은 이미 '고전화'되다시피 했다.

교회음악 세대차 현상이 노골화되자 여기저기서 교회분규가 일어나고 심지어 교회분리마저 발생해왔다. 그나마 괜찮다는 해결방식이 음악스타일이 다른 세대끼리 모임시간을 달리해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예배형태와 음악스타일이 공존하는 가운데 '소비자' 입맛대로 골라 참석하는 소위 '백화점교회'가 여기저기 형성되고있다. 덩치가 큰 한국 교회들이 언젠가 이렇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6년전인 1997년의 한 통계를 보자. 기독교 시사주간지 '크리스차니티투데이'의 자매지 '유어처치'가 그해 7-8월호에 게재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10분의4를 차지하는 교회가 ccm내지 비전통음악을 사용하고있는 반면, 오르간과 찬송가 등을 사용하는 전통교회는 4분의1에 불과했다. 후자그룹에서마저도 1993년 75%가 전통음악을 사용했으나 4년후엔 60%로 줄어들었다. 또 당시 주일아침예배 출석수가 전자가 후자의 거의 2배였고 성장률대비는 69%대47%였다.

악기는 기성세대 교회음악이 오르간·그랜드피아노·관현악 중심이라면, 젊은 세대는 디지털키보드·신서사이저·드럼·(전자)기타 등 중심이다. ccm의 가장 중요한 기악적 특징은 전자악기와 타악기를 교회음악에 도입한 점이다. 과거엔 타악기라곤 주로 오라토리오 등 대규모 클래식 교회음악 반주로 관현악에 곁들여 팀파니가 동원됐을 뿐이다.

미국 ccm은 상당기간 전부터 예배음악(worship music)과 공연음악(christian entertainment music)의 두 차원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양쪽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미국의 영향을 가장 빨리 흡수하는 한국도 최근 비슷한 경향이다. 예배음악은 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때 젊은 회중들의 경배와 찬양, 공연음악은 주로 콘서트 중심으로 연주가가 직접 청중들과 만나는 형식이다. 후자는 특히 cd를 통해 애청자들의 안방에 깊숙이 침투해있다.

미국 ccm 공연음악에는 가장 최근 들어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세속음악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ccm음반은 세속음악보다 빠른 평균속도로 세속청소년들의 귓전을 끌고있다.

예를 들면, 그룹 p.o.d는 수백 만장의 cd 앨범들을 팔고 있다. 과거에 상상 못한 놀라운 일이다. 비슷한 문화현상으로 최근 기독교영화들도 할리우드업계에 속속 진출하고 있으며 크리스천 영화인들도 늘고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엔 장단점이 있다. 세속 청소년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기회가 있다는 것, 비신자들을 염두에 둔 만큼 기독교의 절대 진리성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 공연형태 때문에 세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이다.

ccm이 세속 팝 차트 정상에 오른 최초의 케이스는 1997년. 크루너(crooner/감상적으로 부르는 저음가수)인 밥 칼라이슬이 부른 '나비 입맞춤'(butterfly kisses)이 빌보드의 탑-200앨범차트에 1위로 뜬 것이다. 96년 칼라이슬이 랜디 토머스와 함께 자기 딸 브룩에 관해 만들어 부른 이 노래는 '다이어뎀' 상표를 붙인 솔로앨범중 한 곡이었다.

그런데 곧장 기독교 라디오의 히트송이 됐고 더브상 2부문을 탐과 동시에 '그해의 노래'로 선정됐다. 97년초 세속음악사 '자이브'가 다이어뎀을 매입해 이 노래만 성인 컨템프러리, 탑40 방송국으로 내보내면서 앨범 2백만 개가 팔려나갔다.

이에 고무된 다른 가수들도 줄이어 세속차트에 올라 일반음악 판매고를 따라잡기 시작했고 일부는 비디오로 제작돼 관능적인 연주모습을 여과 없이 비춰주는 세속음악방송 'mtv'에도 실리기 시작했다. mtv에 본격적으로 선보인 기독교그룹은 '진흙항아리'(jar of clay)였다.

매년 열리는 미국최고의 기독교음악제 '더브'(dove) 시상식에서는 위 두 가지 모두 다뤄지며 장르도 다양하다. 전통스타일로부터 남부 복음송가 스타일, 컨추리송 스타일, 여기에다 음색과 리듬의 특징까지 곁들여 나눈다면 음악종류는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에서는 인기 높은 현대기독교음악인들을 '수퍼아티스트'라고 부른다. 현재 대표적인 수퍼아티스트와 그룹으로는 마이클 w. 스미스, 씨씨 와이넌즈, 에이미 그랜트,  '진흙항아리', 'p.o.d.' 등 무수히 많다. 

ccm이 많은 문제를 안고있음은 사실이다. 필자는 교회음악 강의를 하면서 한인2세들이 부르는 미국 ccm을 연구분석 해봤다. ccm의 특징을 대강 몇 가지만 추려보면, 리듬이 당김음 중심으로 기존 회중음악보다 비교적 복잡해 기존세대가 부르기가 다소 까다롭고, 음역이 좁고 평균적으로 음조가 낮다(솔로 등 일부 제외)는 것 등이다.

또 노래가사 다수가 주님을 'you'라고만 표현해 예배 때 이외에 들으면 'you'가 누군지 종잡기 어렵게 대상이 모호한 점, 드럼소리가 소음으로 들릴 정도로 강렬한 점, 구도랄까 구상 자체가 화음이 아닌 멜로디 중심이어서 그만큼 깊이가 없는 점, 기성세대가 거의 따라 부르기 어려운 까다로운 당김음(신커페이션) 등이 집혔다.

음악적으로도, 찬송가처럼 합창성부(聲部) 우선이 아니라 청소년 일반대중 중심인 만큼 높은 윗소리 음역이 찬송가보다 훨씬 제한된 데다 정상적으로 공명된 소리보다 말소리 또는 생소리를 많이 씀으로써 성악발전에 마이너스를 가져온 점, 멜로디 내지 단선율(homophony)중심이어서 합창음악의 후퇴를 가져온 점도 지적된다. 이것은 미국의 일반적인 ccm을 논하는 말이므로 예외도 물론 있을 수 있다.

연주양식상으로는 흔히 팔 올리기나 춤 같은 동작이 들어가고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악기군이다.  그밖에도 기존 회중찬송 때와 달리 침침한 반 조명과 오버헤드프로젝터나 '파워포인트'나 대형스크린 등이 거의 꼭 필요하다는 번거로운 점, 장시간 팔을 들거나 기립해 부름으로 기성세대가 부담을 느끼는 점들이 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단점들은 장점도 겸하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ccm이 크게 공헌한 것 한가지가 경배음악(worship music)운동이다. 찬양경배운동(praise&worship movement)과 같은 개념이다. 경배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가사에 하나님을 향한 고백적 내용이 많고 초기에 성경가사를 그대로 쓴 곡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경배음악을 갖고 회중을 인도하는 이른 바 워십리더(worship leader)가 전문화되어 수많은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우리네 현행 찬송가에는 경배음악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극소수여서 100장 이내에 쏠려있고 복음과 신자의 생활에 관한 객관적·하향적·측면적 가사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름은 '찬송가'인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사의 내용이 극히 적고 거의 대부분 성도의 삶에 관한 것이다. 그 점에서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매우 드라이하다.

반면 ccm에는 상대적 압도적으로 경배음악이 많다. 하나님께 1대1로 직접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는 직접적·주관적·상향적인 가사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이러한 경배음악은 이른 아침 개인이 하나님을 섬기는(ministering to god) 새벽기도나 qt 등 현대적 경건운동과도 성격상 맥락을 같이한다고 필자는 본다. 또 그 점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다고 필자는 믿는다.

또 찬송가에는 성경가사를 그대로 사용한 곡이 거의 없는데 비해 초기 ccm은 수많은 곡들이 성경가사를 그대로 도입했다. 이를테면 '만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겸비한다면'(if my people which are called by my name), '힘으로 능으로도 안되나'(not by might nor by power) 등이 그것이다. 물론 미국에도 전통교회들은 여전히 전통 찬송가를 사용하지만 빠른 속도로 경배음악이 늘고있다.

찬송가가사는 매 소절마다 철저히 압운법(rhymes)을 지키는 정형시 형식을 사용했기에 딱딱하고 퍽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데 비해 ccm 가사내용은 형식에 묶이지 않아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또 전자는 절수가 많아 최다 7-8절까지도 있지만 ccm은 보통 1-2절을 반복하기 때문에 암기하기도 쉽다.

흔히들 ccm을 '수준 낮은 노래'라고들 말하지만 그들 나름의 높은 수준을 확보했다. 컴퓨터까지 동원하며 자유자재로 음색을 조절하는 전자음악·합성음악 분야는 그들이 단연코 앞서고 타악기도 그러하며 가락의 음역이 좁은 대신 리듬이 고도로 발달해 기성세대가 따라 부르기 힘들 정도다.

또 기성세대 교회음악이 강박(downbeat)중심의 직선적(straight)음악이라면 요즘 ccm은 약박(upbeat)내지 오프비트(offbeat), 엇박자 등이 중심인 마일드한 음악들이다. 일반적으로 후자는 전자보다 힘은 덜 들어가면서도 부르기는 더 까다롭다.

ccm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성세대의 이유중 하나는 시대가 바뀐다고 음악이 바뀌어야 하는 얘기들이다.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예루살렘 성전음악과 같은 고대음악은 현재 남아있지도 않으며 남아 있다해도 고고학적, 박물관적인 가치만 지닐 뿐이다. 구태여 고대음악을 경건하다며 회중찬송으로 선택해 부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레고리 송가는 중세와 근대에 애호 받던 교회음악의 하나였지만 요즘은 카톨릭교회에서도 신교와 같은 복음송가를 즐겨 부른다. 필자가 갖고있는 카톨릭 노래집을 봐도 90%이상이 신교 것이거나 신교적이다. 그만큼 시대 따라 변한다는 얘기다.

성경이 말하는 '새 노래'란 거듭난 영들의 노래이기에 새롭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새로운 노래(new song)이기도 하다. 새 노래는 다음 순간 새로 떠오른 가락일 수도 있으나 새 경향 내지 새 악풍으로 창작된 곡일 수도 있다. 시편들을 부르며 히브리 성전음악을 본격적으로 구축해나간 다윗 시대에도 이미 새 노래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었다. 창작하면 새 노래가 되는 법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구태의연한 옛 틀에 가둘 수 없다. 모든 것이 엄청 빠른 현대에는 낡은 노래에 대한 집착은 한 세기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구세대의 찬송가가 있었으면 새 세대의 ccm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ccm은 다음 세대에겐 또 다른 낡은 노래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하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 풍에 맞는 노래인 ccm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게 해야 한다. 전통적인 찬송가는 우리 세대로 족하다.

우리가 좋아하던 찬송가라고 해서 다음 세대도 부담 없이 좋아하리란 착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지금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들의 과반수가 18-19세기 미국의 복음찬가(gospel hymns) 내지 부흥전도 찬송가들이다. 일례로 아이라 생키 곡인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478장)가 그렇다.

지금 우리는 미국교회가 과거에 쓰던 것들을 끼고 '우리 찬송가'로 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복음찬가들이 미 교계에 선을 뵐 당시만 해도 엄청난 반발을 불렀다. 교회노래로 적합하지 않다고 대다수 기성교회가 반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보다는 부흥전도집회에서 주로 불리다가 결국 신자들의 압력 때문에 교회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애창하는 '전진하라 주의 군사들이여'(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는 잉글랜드의 배링 굴드 성공회신부가 주일학교 어린이행진용으로 쓴 가사에다 오페라작곡가 아서 설리밴 경이 작곡한 것이다. 훗날 이 곡이 교회에 선뵐 때, 많은 사람들이 "이건 재즈 아냐?"하며 열나게 반대하고 나섰었다. 당시로선 너무나 전위적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바로크양식의 대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도 당대에는 '괴짜음악'으로 취급받고 별 환영을 받지 못했다. 바로크란 말 자체가 '괴짜'란 뜻이다. 지금 우리가 애청하는 바흐음악의 대부분이 당시엔 홀대 당했다.

우리가 인정하든 부인하든 전통찬송가 시대는 교계 곳곳에서 이미 종말을 고했든지 고하고있는 중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찬송가들이 다음 세대에 변함없이 불린다고 보장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찬송가도 여태까지 계속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낡고 케케묵은 곡들은 언제고 도태되기 마련이다. 초기의 '신편찬송가'에서 사용되던 곡을 우리가 현재 몇곡이나 갖고 있는가? '합동찬송가'에서 현재까지 사용되는 곡이 과연 몇 곡인가? '21세기찬송가'는 또 얼마나 다른가?

이처럼 변해가고 있지 않는가? 음악적으로나 가사(정형)로나 분명히 변화해가고 있는데도 전통만 붙들고 변화에 눈 돌리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모순적인 얘기다.

한국교회가 "은혜롭다"고 애지중지하며 끼고 놓지 않는 수많은 곡들이 미국교회에서는 "한물간" 곡들이거나 이미 내던져진 곡들이다. 현재 출판을 코앞에 둔 21세기찬송가에 그런 곡들이 상당량 여과됐는데 과연 어느 정도일지 두고볼 일이다.

ccm은 젊은 세대에 적합하다. ccm은 이 세대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음악임이 분명하다. 이 말은 무조건 모든 ccm을 수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ccm을 선별 여과시키고 부르는 양식과 자세도 교정해가며 개선하며 세대간 다리를 놓도록 힘써보자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그런 노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각에서 세대간 다리 놓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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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01 [14:3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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