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1.16 [10:02]
“일본 교회의 자체 힘으로는 안 됩니다.”
<김안신 선교사의 일본 선교 통신>
 
김안신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몇 분 배출하였다. 무교회주의자로 더 많이 알려진 우찌무라 간조(內村 鑑三), 빈민 위해 친히 빈민이 도어 사회운동을 일으킨 가가와 토요히꼬(河川 豊彦), 일본동경제국대학의 총장을 지내면서 “나의 나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폭적인 은혜”라고 늘 간증했던 야나이바라(矢內原忠雄) 등을 들 수 있다. 소설가 보다는 오히려 기독교 변증가로 더 많이 알려진 우리들의 호프 미우라 아야꼬(三浦 綾子)는 일본에서 보다도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25년 먼저 받아들여 개화된 민족이 되었다. 허지만 오끼나와에는 이보다 훨씬 먼저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와 선교활동을 전개했었다. 3백여 년 전, 토요토시 히데오와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자기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5인 제도를 실시하여 무자비한 방법으로 캐톨릭 신자 20여만 명을 죽임으로써 순교의 피를 뿌린 기록도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후루카와(古川) 목사가 시무하시던 교회의 후계자는 어느 선교단체가 해외에 파송하여 20여 년간을 활동하였는데 그 분은 여러 번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일본은 자체의 힘으로는 복음화가 불가능 합니다.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 합니다.” 이 분 뿐이 아니다. 오끼나와의 어느 원로 목사도, 북해도의 어느 저명한 지도자 한 분도 이런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누가 일본을 도울 수 있는 이웃이요 나라일까? 미국일까? 아니면 영국일까? 그렇지 않으면 독일일까? 그들은 일본에 와서 엄청난 희생과 수고를 하였다. 수많은 인재들을 보내고 억만의 헌금과 시간을 투자하였다. 이 땅 일본의 복음화를 위한 그들의 크고 거룩한 사랑과 헌신을 깊이 존경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일본은 목사와 선교사의 무덤이요 전도가 자살한 나라”였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들로 인하여 구원받고 목회자로, 평신도 지도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한 분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양 선교사들이 기초를 놓은 일본 선교를 이어 받아 이들 일본인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두 나라 사이! 지정학적으로도 언어학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이 일본을 도울 수 있는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현재일본 열도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94%가 한반도에서 건너 온 도래인의 후예인데다가 천년 전에는 통역 없이 두 나라 국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일본의 천황은 옛날 백제 왕손의 후예였음이 본인의 고백으로 확실히 밝혀졌다. 임진왜란 때의 극심한 피해들, 왜정시대의 36년간의 식민지 생활로 인한 감당하기 어려웠던 핍박들, 지금도 계속 비싸게 지불되는 기술 사용료,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침략의 역사. 아직도 이런 아픔들을 생각한다면 철전치 원수의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최초로 갖게 된 한글 성경은 오히려 일본에서 번역되어 들어온 것이 아닌가? 오히려 여러 면에서 복음의 빚진 자가 되었다.
 
우리가 이러한 일본을 영적으로 돕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영국 국교회의 핍박을 피하여 아메리카로 건너 간 퓨리탄들이 왕성한 복음의 나라를 건설한 후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괴롭혔던 어머니의 나라 영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였던가?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로서 마땅히 일본 선교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많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열매가 없다는 이유와 생활비와 자녀 양육비가 턱없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철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영적으로 강도만난 어떤 사람과 같은 일본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도와야 한다. 이는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전도자의 사명인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에 항상 힘쓰라”는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의 순종이기도 하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07/10/04 [19:37]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일본 선교] “일본선교, 적극적 협력으로 이뤄내야” 홍진우 2010/10/11/
[일본 선교] "무스비문화 때문에 일본선교 잘 안돼” 김철영 2010/06/05/
[일본 선교] "일본 교회는 정신적 유산만 남았다" 김철영 2010/06/03/
[일본 선교] '일본선교' 거제열린문선교센터 개원 거제=김철영 2010/04/12/
[일본 선교 ] 일본 개신교인 비율 0.4% 고석표 2010/03/16/
[일본 선교] 김안신 선교사의 일본 선교 통신 김안신 2008/01/24/
[일본 선교] 두꺼비와 거북이와 뱀의 마스코트 김안신 2008/01/17/
[일본 선교] 단기선교 가려는 딸과 못 가게 하는 목사 아버지 김안신 2007/10/19/
[일본 선교] “3 B를 조심하시오!” 김안신 2007/10/15/
[일본 선교] “일본 교회의 자체 힘으로는 안 됩니다.” 김안신 2007/10/04/
[일본 선교] 일본교회 연합에 기여한 뉴라이프 김안신 2007/09/20/
[일본 선교] 목욕탕에서 야쿠자를 전도한 뉴 라이프 멤버 김안신 2007/09/07/
[일본 선교] 세 번 기절한 후 네 마디하고 포기 김안신 2007/08/30/
[일본 선교] 2주간 내내 예배당 수리하기 김안신 2007/08/23/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