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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1 [09:01]
진실게임, 다윗-시바-므비보셋의 삼각관계(2)
삼하 4:4; 9:1∼13; 16:1∼4; 19:17, 24∼30
 
김윤희

시바의 정치적 행보(삼하 16:1∼4)

다윗이 므비보셋과 시바를 만난 이후 많은 정치적인 변화와 상황이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다윗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다윗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 그가 두려워한 사울 집안의 왕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친아들인 압살롬의 반란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 됨을 선포하고 반역의 무리를 이루어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을 두려워한 다윗은 급히 신복들과 함께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하는 신세가 된다(삼하 15장).

그 와중에서 다윗은 많은 무리들을 만나게 된다. 현대에도 그렇듯이 권력자가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결정하고 줄을 서게 된다. 명예롭게 물러났을 때에도 그러한데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경우에는 수모와 배반을 감수해야 하는 비참함이 있다.

왕의 자리에서 허겁지겁 망명하는 다윗의 앞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에게 충성을 보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순수하게 다윗과 함께하는 자들과 후에 정치적 이득을 바라고 접근하는 자들 등 많은 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과 문맥 속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는 인물이 시바이다. 다윗과 시바의 두 번째 만남을 살펴 보자.

다윗이 마루턱, 즉 감람산 꼭대기를 조금 지나자 시바가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본문은 시바를 ‘므비보셋의 사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전에는 ‘사울의 사환’(삼하 9:9)으로 불렀었는데 지금은 그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시바는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 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았다. 저자가 굳이 음식량을 기록한 것은 그 양이 상당한 것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과거에 아비가일이란 여인이 다윗에게 보낸 음식의 양과 비교해 보았을 때(삼상 25:18), 비록 그것보다는 양과 종류에 있어서 조금 적지만, 결코 이것들이 적은 양이 아님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급히 도망하느라 철저한 준비가 없이 떠난 왕과 그의 신복들에게는 시바의 이러한 식량의 공급이 가장 절실한 것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본문은 짧지만 다윗과 시바사이의 3라운드에 걸친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말 성경 번역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원어로 보면 모두 동일한 단어와 형식으로 되어 있다.

(1) 첫 번째 라운드(2절)

첫 번째 라운드에서는 다윗이 시바에게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원어에는 세 단어로 되어 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의도를 묻는다. 시바는 외교적으로 시비거리가 될 수 있는 모든 답을 피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단순한 대답으로 상황을 유도한다.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라’고 답한다. ‘나귀는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먹게 하고, 포도주는 마시게 함’이라는 것은 답이라고 할 수 없는 답이다. 그것을 모르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왕의 신하들과, 소년들과, 지친 자들을 위함이라는 것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한 것들을 가져온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답하고 있지 않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자마자 다윗도 황급히 도망을 나왔으므로 시바로서도 이만큼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반역이 일어나자마자 시바는 일단 승자인 압살롬보다는 다윗에게 충성을 보임으로 정치적인 모험을 단행한 것이다.

(2) 두 번째 라운드(3절)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다윗이 당연히 기대되는 질문을 한다.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라고 묻는다. 주인은 없이 종이 음식을 가지고 나온 상황에서 시바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지, 또한 그의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동의한 것인지, 왜 주인은 동행하지 않은 것인지 등 질문은 간단하나(원어에는 세 단어로 되어 있다) 내용상 많은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다윗은 므비보셋이라는 이름을 되도록 피하고 ‘네 주인의 아들’로 므비보셋과의 거리를 두는 표현을 쓰고 있다. 또한 ‘네 주인의 아들’이란 말을 사용함으로 원래 시바가 사울의 충성된 종이였었음을 상기시키며 시바의 갑작스런 다윗에 대한 충성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시바가 대답을 하는데 먼저 므비보셋의 행방을 묻는 데 대한 답으로 그가 예루살렘에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9장 13절에서 그가 예루살렘에 있던 이유는 다윗과 함께 다윗의 상에서 먹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목적은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는 불순한 야심 때문이라고 시바는 밝히고 있다. 쫓기는 다윗에게, 권력의 자리에서 맥없이 초라하게 물러났어야 하는 다윗에게, 본인이 ‘은총’을 베풀었던 므비보셋의 이러한 배반은 충격과 함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시바의 일방적인 말이 현재 의존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만약 시바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므비보셋의 충성심에 의심을 불어넣음으로 실제로 혜택을 받는 자는 그 주인을 피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다윗에게 온 시바 자신이다. 그의 입지만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여부를 밝힐 여유도 없고 그러한 상황도 되지 않는 가운데서 다윗은 시바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3) 세 번째 라운드(4절)
세 번째 라운드에서 다윗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고 선언한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시바의 말에 100퍼센트 의존하여 므비보셋에게 벌을 내린다. 다윗은 자신이 은총으로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토지를 자신에게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보인 시바에게 주어 버린다. 시바의 말 한 마디에 요나단과의 언약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삼상 20:15; 24:21∼22). 시바의 한 일에 대하여 일단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시바가 그의 주인에 대하여 한 말은 후에 진위를 파악하여 처리해도 되는데 왜 굳이 다윗이 이토록 성급하게 시바에게 상급을 주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상황이 어려운 만큼 다윗의 판단력이 그만큼 흐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윗의 보상에 대하여 시바는 “내가 절하니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답한다. 한 가지 관찰할 점은 9장 2절에서는 시바가 처음 다윗을 만났을 때에 이처럼 절했다는 기록이 없지만 다윗이 그에게 물질적인 보상을 하자마자 시바의 행동은 ‘엎으려 절하는 것’(원어의 의미)으로 반응한다. 본문은 우리 모! 두에게 과연 시바의 말은 모두 진실된 것인지, 므비보셋의 진심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 채 다윗과 시바와의 두 번째 만남을 일단락 짓는다.
 
시바의 세 번째 출현(삼하 19:17)
본문은 위의 사건 때와는 또 다른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압살롬의 죽음으로(삼하 18장) 정치적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망명을 나갔던 다윗 왕이 요단을 건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상황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며 다윗은 다시 여러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급히 다윗을 맞이하기 위하여 유다 사람과 함께 시므이가 내려오는데 묘하게도 본문은 시므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중간에 시바의 출현을 소개하고 있다.

시므이는 압살롬 반란 시절 다윗을 저주하던 자이다. 시므이가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오고(삼하 19:16)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 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삼하 19:17)고 기록함으로 시므이의 무리와 시바를 함께 기록함으로 시바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다. 어쨌든 시바와 시므이의 등장 바로 다음에 왕을 맞으러 나온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므비보셋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삼하 19:24∼30)
본문의 관심사는 시바가 다윗에게 므비보셋에 대해 한 말들이 사실인지의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그 결론은 학자들마다 다르다. 므비보셋의 언행이 전부 연극이며 속임수라고 보는 자도 있고, 본문이 애매하게 묘사함으로 진실여부를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과연 본문이 우리에게 진실을 가릴 수 있는, 의문을 제거할 만큼의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본문은 서론과 함께 다윗과 므비보셋사이의 두 번에 걸친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서 어떠한 결론을 내릴 것인지를 결정해 보자.

(1) 서론(24절)
여기에서의 서론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구절만이 유일하게 다윗의 말도, 므비보셋의 말도 아닌 본문의 저자의 코멘트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론이 없이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대화로만 전체의 내용이 이루어져 있었더라면 결론을 내리기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서론은 므비보셋의 출현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드디어 왕을 맞는다. ‘사울’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이 도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사울과 관계된 이 손자가 어떤 인격을 가진 자인가가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저자는 ‘왕이 평안히 돌아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본문의 끝에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왕께서 평안히… 돌아오시게,” 30절).

이렇게 본문의 시작(24절)과 끝(30절)에 동일한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저자는 본문 전체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 준다. 또한 이것이 압살롬의 반란 이후 사무엘서 저자의 관심이기도 하다. 과연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왕권이 거기에서 끝이 나는 것인가의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서 드디어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24절은 저자의 관점에서 한 말이고 30절은 므비보셋의 관점에서 한 말이며 이 두 관점이 서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서론에서 저자는 므비보셋이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고 우리에게 그의 상태를 귀띔해 주고 있다. 이런 므비보셋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자세하고 길면서도 목적과 기간을 뚜렷이 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극심한 애도의 표현이며 ‘의식적으로 부정한 상태’(ceremonially unclean)를 의미함으로 므비보셋이 의지적으로 다윗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시바의 물질적인 후원의 측면과도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므비보셋의 외형적인 모습 자체를 가지고 내적 진실성을 다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코멘트없이 므비보셋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으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므비보셋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을 동안 극심한 슬픔의 상태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다윗이 환궁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는 왕을 맞기 위해 요단까지 마중을 나온 것이다.

(2) 다윗과 므비보셋의 첫 번째 대화(25∼28절)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다윗이 저에게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전에 시바에게도 물은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삼하 16:3) 이번에는 므비보셋 본인에게 직접 물어본다. 그의 이름을 불러가며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라고 정면으로 대면하여 묻는다. 이에 대하여 므비보셋의 긴 스피치(26∼28절)가 이어진다. “대답하되”라는 말만 빼고는 모두 11줄로 되어 있고 이것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5줄로(26~27a) 다음과 같은 분석이 가능하다(fokkelman이라는 학자의 분석을 따른 것임). 히브리 원어의 문장과 순서를 반영했으므로 한글 성경 번역과 약간의 차이를 보임을 참조하기 바란다.

a 내 주 왕이여 나의 종이 나를 속였나이다
b 왜냐 하면(키:히브리어) 내가 말하기를(또는 생각하기를: "하였더니")
x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리라'
b' 왜냐 하면(키:히브리어)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기 때문입니다
a' 그러나 그가(나의 종이) 왕의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위의 분석에 따르면 강조점이 x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충심을 다윗에게 강조하며(“왕과 함께 가리라”) 왕과 함께 갈 수 없었던 사정을 밝힌다. 결국 그의 절뚝발이 장애가 관건이었다. 다윗을 따르기 위하여 그는 나귀가 필요했고 시바는 그 나귀들을 이끌고 가 버린 것이다. 이러한 므비보셋의 변호는 왜 사무엘하 9장 13절이 “그 [므비보셋]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고 끝나는지, 또한 시바가 다윗에게 왔을 때에 ‘안장지운 나귀들’(삼하 16:1)이라고 저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했는지에 이해도를 높인다. 이렇게 저자가 암시한 일련의 표현들과 므비보셋의 설명이 일맥상통하며 일관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의 배후에 시바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시바는 자신의 주인을 속이고 다윗 왕에게는 그 주인을 참소하는 죄를 저질렀음을 고한다.

두 번째 부분은 6줄로 되어 있고(27b~28절) 다음과 같은 분석이 가능하다.

a 내 주 왕께선ㄴ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x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a'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일단 첫 번째 부분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후에, 두 번째 부분에서 므비보셋은 모든 것을 다윗의 주권에 맡기는 태도를 보인다. 중간부분(x)은 다윗이 과거에 숙청을 당했어야 마땅한 사울 집안의 사람인 자신에게 은총(헤세드)을 베푼 사실을 은혜로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윗에게 달려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한다(aa’). a부분에서 므비보셋은 다윗을 ‘하나님의 사자’로 표현한다. 이것은 드고아의 여인이 다윗을 묘사한 것과 동일한 표현으로(삼하 14:17) 다윗의 지혜와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a’에서는 자신을 주어로 하고 있지만 내용상 결국 다윗의 의로운 판단에 모든 것이 달려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정당성은 없고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왕께 호소하고 처분만 바랄 뿐임을 고백하고 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은총(x: 헤세드)과 그의 주권과 지혜(a) 그리고 그의 의로운 판단력(a’)에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로 전체를 다윗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신은 철저히 낮추고 왕의 자비만을 바라는 모습으로 그의 스피치를 마친다.

(3) 다윗과 므비보셋의 두 번째 대화(29∼30절)

므비보셋의 감동적인 스피치를 듣고 다윗이 판결을 내린다.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는 것은 므비보셋이 자기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은총 입은 이야기를 언급한 것을 일컫는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제지하고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최종 판결을 내린다. 여기에 대해서도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다윗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다윗이 시바에게 받은 도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안을 내놓았다는 견해, 다윗은 므비보셋이 전적으로 무죄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견해, 다윗 자신이 이미 시바에게 내린 판결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절충안을 취했다는 견해 등 대부분이 다윗의 결정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다윗의 결정이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단처럼 의로웠음을 주장하는 자도 있다. 솔로몬이 두 창기가 자기 아이라고 서로 주장하며 다툴 때에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고 명함으로 진짜 어미가 아이를 포기하는 것을 보고 아이의 어미를 찾아 주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왕상 3장). 이처럼 다윗도 ‘밭을 둘로 나누라’고 함으로 진정한 충성된 자가 누구인지 가리려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문 속에서 다윗이 그러한 의도가 있었는지의 확실한 힌트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윗보다는 므비보셋의 의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본문은 다윗의 결정에 대한 므비보셋의 반응으로 마친다.

므비보셋은 이제 왕이 궁에 평안히 돌아오시게 되었으므로 본인에게는 그것이 원하는 전부임을 분명히 한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30절)라고 하며 자신에게는 물질적인 보상이 목적도 아니요 큰 의미가 없음을 밝힌다. 다윗이 솔로몬처럼 진위를 가리기 위해 밭을 둘로 나누라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분명한 것은 므비보셋의 이러한 마지막 코멘트를 통하여 옥석이 가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시바와 므비보셋을 대조시킴으로 저자는 시바가 추구한 것은 물질적인 보상이며 정치적인 계산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다윗은 주인을 속인 시바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므비보셋과 동일하게 놓음으로 절뚝발이 식의 판결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절뚝발이인 므비보셋은 다윗을 향한 충정에 있어 순수한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본문 전체를 통해서 안타까운 것은 므비보셋의 누명은 일단 벗겨졌으나 그의 재산의 반을 잃어버림으로 결국 사울 집안에 드리운 그림자는 므비보셋 개인과 관계없이 계속 따라다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오해이든, 모함을 받았든 사울 집안은 이런 식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다윗의 신실함을 보아야 한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예루살렘에 불러 자신의 상에서 먹도록 하고 재산을 찾아준 것은(삼하 9장) 다윗이 요나단과 사울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다윗은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인물로 나온다. 사무엘서에서는 다윗의 삶 전체를 통하여 왜 여호와께서 그를 택하시고 기뻐하시는지를 잘 보여 준다. 비록 압살롬과의 내전으로 다윗의 정황 판단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시바의 말을 일시적으로 듣지만 다윗은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 되돌려 놓는 용기를 보인다. 시바에게 이미 한 약속도 파기하지 않으며 므비보셋에게도 계속적으로 은총을 베푸는 모습을 보인다.

둘째, 므비보셋은 감사할 줄 아는 자이다. 므비보셋은 자신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애당초 재산을 받은 것도 모두 다윗이 베푸는 은총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자이다. 설사 다윗이 그 재산을 시바에게 다 주었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다윗의 주권임을 인정할 줄 아는 자였다. 그러기에 다윗의 결정이 어떠한 것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이가 하는 올바른 처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왕이 평안히 돌아오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임을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이 그에게 재산의 반을 다시 허용했을 때에 그는 그것도 은혜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에 항의하지도 불평하지도 않고 충성됨과 감사로 받아들인 것이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장애자이나 므비보셋은 마음이 건전한 순수한 인물로 나온다. 우리는 므비보셋의 이런 모습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약간의 연결성을 발견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 나머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든 주시지 않든 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주권이 아닌가!

셋째, 시바도 은혜를 입은 자들의 대열에 꼈다. 본문에서 가장 득을 본 자가 있다면 시바이다. 졸지에 재산도 얻고 일종의 승진도 한 셈이다. 자신의 주인을 모함한 것을 생각하면 그를 징계하지 않은 다윗의 처사가 마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윗의 입장으로만 본다면 두 사람의 말만 듣고는 시바와 므비보셋 사이에 일어난 일의 100퍼센트의 진실을 가린다는 것은 어차피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엄연한 정치적인 현실은 다윗의 가장 어려운 시점에서 시바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시바는 다윗의 필요를 잘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십분 잘 이용했다. 그러나 시바로서도 정치적인 모험을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충성하기로, 그가 섬기기로 작정한 자가 압살롬이 아닌 다윗 왕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시바의 수단과 방법은 졸렬했으나 그의 정치적인 판단은 옳고 의로웠다는 것이다. 다윗이 패자였을 때 시바는 그가 승자가 될 것을 확신했기에 나름대로 결단을 한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선택한 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종에게 선대를 베푸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은총이 있다. 다윗이 시바를 벌하지 않고 그에게 보상을 한 것은 다윗 자신이 그에게서 받은 선대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러니까 시바는 다윗에게 호의를 베풂으로 은혜를 입은 자들의 대열에 낀 셈이다. 아이러니컬하다. 시바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충성을 보인 다윗 왕의 의로움의 덕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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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22 [11:2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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