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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6 [04:02]
진실게임; 다윗-시바-므비보셋의 삼각관계(1)
삼하 4:4; 9:1∼13; 16:1∼4; 19:24∼31
 
김윤희

보통 인간관계 속에서 삼각관계라 함은 남녀간의 애정으로 얽힌 관계를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삼각관계라 한 것은 세 남자 다윗, 시바, 므비보셋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 속에서 진실성의 여부를 가리기 어려움을 두고 붙여 본 제목이다. 폰라드(von rad)라는 유명한 신학자도 이 부분이 풀기 어려운 숙제임을 인정했다.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지,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므비보셋의 등장(삼하 4:4)

사무엘하 4장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암살당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은 죽고 다윗은 유다 지파에 의해 헤브론에서 왕으로 추대를 받고 통치하고 있었으며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은 뒤늦게 베냐민과 에브라임, 트랜스 요르단(요단강 동편 지역)의 길르앗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즉위하여(삼하 2:8∼11) 다윗과 대치 정국에 있었다. 그러한 그가 4장에서 암살을 당함으로 비로소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스보셋의 암살 장면을 기록하기 바로 전에 저자는 갑자기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잠깐 소개하고 있다.

므비보셋을 이 시점에서 등장시킨 이유는 다섯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사울 집안이 끝난 것이 아님을 알려 주기 위해 급히 므비보셋을 소개하고 있다. 둘째, 사울 집안에 남아 있는 왕족인 므비보셋이 ‘절뚝발이’로 소개됨으로 그가 뒤이어 통치를 할 가능성이 희박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당시에 왕들은 전쟁에 나가 싸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사명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므비보셋은 그러한 조건에서 탈락된 것이다. 즉, 더이상 다윗을 대적할 만한 사울 집안의 인물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후에 나오는 사울의 아들들은 첩의 자손들이거나 딸 쪽의 손자들이다: 삼하 21:8).

셋째, 이스보셋을 암살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로서, 물론 그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이 암살당한 것이 치명적이었지만(삼하 3:27; 4:1), 거기에 더해 암살에 대한 원수를 갚아 줄 사울 집안의 인물이 장애인이었기에 위험부담이 그만큼 적었다는 계산이 있었다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넷째, 후에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정치적인 배경을 미리 가르쳐 주고 있다. 다섯째, 이스보셋의 암살자에 대한 다윗의 처형이 진심이라는 것을 나중에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푸는 은혜를 통해 알 수 있다. 므비보셋을 등장시킴으로 다윗이 결코 사울 집안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다윗이 사울 집안에 대해 가진 순수함을 앞으로 펼쳐질 므비보셋과의 관계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

저자는 또한 므비보셋이 어떻게 두 다리를 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이 이스르엘(블레셋과의 접전 시 이스라엘이 진쳤던 곳: 삼상 29:1; 31:2∼6)에서 올 때에 므비보셋의 나이 다섯이었는데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울 집안의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역대기에서는 므비보셋의 이름이 므립바알로 기록되어 있다(대상 8:34; 9:40). 후자에 ‘바알’이라는 이방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을 사무엘서에서는 피하기 위해 완곡하게 대치하여 므비보셋으로 부른 것 같다. 므비보셋의 뜻은 ‘부끄러움을 없애버리는 자’란 의미이다. 이렇게 하여 다윗과 절친했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등장하게 된다.

므비보셋에게 베풀어진 은총-시바의 등장(삼하 9:1∼13)

세월이 흘러 므비보셋이 다시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하 9장이다. 이때는 다윗이 그야말로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등극하여 내분을 규합하고 예루살렘이 수도가 되고, 외부적으로는 주위의 많은 적국들을 평정했을 시기이다. 본문에서는 므비보셋과 다윗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세 번째의 인물인 시바도 등장한다. 이들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본문 속에서 살펴보자. 먼저 9장 전체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a 다윗의 사울 집안에 대한 은총(9:1)
b 다윗과 시바(9:2∼5)
c 다윗과 므비보셋의 만남(9:6∼8)
b' 다윗과 시바(9:9∼11a)
a' 다윗과 사울 집안에 대한 은총의 실행(9:11b∼13)

위의 구조를 살펴보면 본문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중간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윗과 므비보셋과의 만남이다(c). 그렇다면 왜 다윗이 굳이 므비보셋을 만나야 했는가? 그것에 대한 해답은 a’가 주고 있다. 다윗은 사울 집안에 은총을 주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이 굳이 그러한 필요를 느꼈는가? 그것에 대한 해답은 1절에 기록되어 있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인하여 그것을 신실하게 지키려는 다윗의 의도가 있다. 여기에서 핵심단어는 ‘은총’이라는 명사이다. 히브리어로는 ‘헤세드’라고 불리는데 너무나 유명한 단어이기 때문에 이 히브리어 단어 하나쯤 외워두어도 좋을듯 하다. 어쨌든 이 단어가 본문에서 세 번이나 쓰였다(1, 3, 7절). 이를 통해 저자는 본문 속에서 다윗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세월이 지났어도, 사울 집안의 위협이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다윗의 사울 집안에 대한 은총(9:1)

본문은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윗이 그렇게 묻는 이유를 밝히는데 그것은 그가 ‘요나단을 위하여 사울 집안의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성경에서 유명한 이야기이다(삼상 18:3∼4; 20:12∼17, 42; 23:15∼18).

요나단은 마치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다윗에게 “너는 네 인자(헤세드)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삼상 20:15)고 다윗에게 맹세케 하고 언약을 맺게 한다. 이것이 비록 요나단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다윗은 자신의 맹세를 잊지 않고 있었다. 또한 과거에 사울도 다윗에게 자신의 후손을 끊지 않도록 맹세하게 했었다(삼상 24:20∼22). 비록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울 집안과 오래 전쟁은 있었지만(삼하 3:1, 6, 8, 10) 다윗이 왕으로 군림하고 내·외부적으로 나라의 평정을 되찾은 이 시점에서 그가 하고자 한 일은 과거 요나단과의 언약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본문은 마치 요나단이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엽(삼상 20:15)라는 말이 성취된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다윗이 대적들을 물리친(삼하 8장) 것이 다음 장(9장)에 기록되어 있다.
 
(2) 다윗과 시바(9:2∼5)

1절에서 다윗이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줄 사람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시바이다. 그는 본문에서 “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네가 시바냐”고 묻는다. 그가 “종이 그로소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다윗은 1절에서의 질문을 반복한다.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그리고는 자신이 그러한 자를 찾는 이유를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헤세드)을 베풀고자 하노라”고 밝힌다. 다윗의 의도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거기에 대하여 시바가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라고 고한다.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씀으로 그 자가 바로 다윗이 찾는 자의 의도에 일치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가 ‘절뚝발이’라고 보고하는 시바의 말 속에서 우리는 이를 전달하는 그의 의도에 의아심을 갖게 된다. 시바는 다윗의 말을 여전히 정치적인 의도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러기에 재빨리 그가 다윗의 적수나 위협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아님을 밝히므로 다윗을 안심시키게 한 것 같다.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왕이 시바에게 “그가 어디있느냐”고 묻는다. 시바는 다윗에게 그는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고 답한다. 상당히 구체적인 대답이다. 로드발은 요단 동편에 위치한 도시이름이며 암미엘의 아들 마길은 후에 다윗에게 친절을 베푸는 인물로 나온다(삼하 17:27). 이 말을 듣고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요나단의 아들을 데려온다.
 
(3) 다윗과 므비보셋(9:6∼8)

드디어 요나단의 아들과 다윗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본문은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라고 장황하게 그를 소개하는데 저자의 초점은 그가 누구의 자손인지를 가르쳐 주는 데에 있다. 요나단과의 관계까지는 용납이 되지만 문제는 그가 사울의 후손이라는 데에 있다. 본문은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의 므비보셋의 등장은 시바의 등장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차이점을 비교하여 두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먼저 시바보다 므비보셋의 소개는 훨씬 장황하게 되어 있다. 사람을 ‘보내어’와‘데려오니’라는 표현 속에서 다윗이 개인적으로 므비보셋이 오는 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다윗의 앞으로 나아왔을 때에 시바의 행동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므비보셋은 ‘엎드려 절했다’고 되어 있다. 장애의 몸으로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고통과 노력을 수반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므비보셋이 몸을 아끼지 않고 다윗에게 예우를 다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윗이 시바에게는 이름을 확인하는 식으로 묻지만 므비보셋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시바는 ‘종이 그로소이다’라고 간단히 답하지만 므비보셋은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라고 더 적극적으로 그의 충성을 나타낸다. 물론 다윗 왕에게 불려간 므비보셋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시바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만약 나중에 시바의 사건이 없다면(삼하 16장) 단순하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에 시바와 므비보셋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본문에서부터 두 사람을 비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여기에서 유보한다. 독자 각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고 진행을 해 보자.

사울의 집안과 이제까지 있어 왔던 전쟁의 전력으로 보았을 때 자신도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숙청당할 수 있음을 므비보셋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다윗이 제일 먼저 므비보셋에게 “무서워 말라”고 위로함을 준다. 이것은 요나단이 다윗에게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삼상 23:17, “두려워 말라”).

다윗은 므비보셋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세 가지로 증명한다. 먼저 다윗이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헤세드)을 베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또한 므비보셋의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돌려 준다는 약속이다. 재산을 회복시킴으로 후한의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사실 다윗으로서는 정치적으로 위험을 부담하는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언약을 지키는 것을 정치적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고 초청한다. 이 세 번째의 약속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에 사울의 상에서 먹는 고통을 당해 본 다윗으로서(삼상 20:28∼31,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식사 자리를 피해 감) 므비보셋을 가까이 두고 그의 모반가능성의 뿌리를 아예 근절하고 감시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다음의 분석을 보면 그러한 해석이 적합지 않음이 잘 드러난다. 즉, 본문 속에서 언급된 세 번의 ‘은총’의 약속이 본문 전체의 중간 절인 7절부터는 그대로 실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은 말로만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은총은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재산을 돌려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의 상에서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가 은총의 긍정적인 결과이므로 후자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의도에 벗어난다고 보겠다. ‘왕의 상에서 먹는다’는 것은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으로 그를 왕자처럼 대접하려는 의도이다(11절 참고).

이러한 다윗의 관대함에 대하여 므비보셋이 은혜를 입은 자답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감사를 표한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는 자신을 심하게 낮추는 표현 속에서 그의 낮은 ‘자아상’을 이야기하는 학자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다윗의 관대함과 은혜가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4) 다윗과 시바(9:9∼11a)

사울의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그것을 유지하고 돌보아주는 자가 필요한데 그러한 역할을 맡은 자로 다시 등장하는 자가 시바이다. 다윗은 시바를 불러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라고 하며 그의 할 일을 가르친다. 여기에서 보면 ‘네 주인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묘한 뉘앙스를 준다. 다윗은 자신의 원수(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한 의미에서)의 아들에게 은총을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과연 시바는 ‘자기 주인의 아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그러한 의문이 어떠한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더 지켜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일단 다윗이 시바에게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본문은 시바에게 아들 열 다섯과 종이 스물이 있음을 알려 준다. 이것을 통하여 그에게 충분히 사울의 밭을 관리할 능력이 있음과 동시에 이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만큼의 재산이 므비보셋에게 돌아갔음을 또한 시사해 주고 있다.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라고 답한다. 다윗은 신실하게 오래 전에 한 약속을 지키는 자로 나온다. 과연 시바는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자인가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하여 다윗과 시바의 대화도 매듭이 지어진다.

(5) 다윗의 사울 집안에 대한 은총의 실행(9:11b∼13)

이 부분은 결론적으로 전체를 요약해 주고 있다. 본문은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고 기록함으로 다윗의 은총의 의도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또한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고 하며 그의 후손을 소개한다. 역대상에 보면 그의 자손들이 상당히 번창했음을 보여 준다(대상 8:35∼38; 9:41∼44). 그들도 다윗의 왕권에 얼마든지 위협적인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부담도 개의치 않고 사울의 집안에 은총을 베푸는 다윗의 놀라운 면모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과연 다윗이 어느 정도의 신의와 믿음의 사람인지를 엿볼 수 있다.

본문은 또한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고 기록하며 다윗의 약속이 실행되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므비보셋에 대한 언급으로 마친다.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이러한 표현이 다시 나오는 이유는 사무엘하 19장과의 연결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후에 어떤 사건들이 이 세 사람의 관계 속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나머지 부분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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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29 [11: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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