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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22 [19:02]
아히도벨과 후새의 한판 승부
사무엘하 15:31∼37; 16:15∼17:14, 23
 
김윤희

성경에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나라의 정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사에 있어 자문을 구하는데, 그때 그는 노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기들과 자라난 소년들의 권위주의적인 강경 억압정책을 따름으로 급기야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분열왕국 시대의 도래를 자초하는 내용이 나온다(왕상 12장). 이렇게 한 개인뿐 아니라 나라의 방향도 누구의 충고를 따르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르호보암의 경우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겪고 있는 여러 분야의 정책들, 즉, 경제, 교육, 남북관계, 대미관계, 국가안보 등 많은 이슈들도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결국은 누구의 충고와 지혜를 따르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두의 목적은 본문에 소개될 두 사람 모두 국가전문정책위원들이었으며 그들의 경쟁적인 충고를 통하여 이스라엘 국가의 운명과 두 왕의 운명, 자신들의 운명조차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다.

사건의 배경

본문의 배경이 되는 것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삼하 15∼19장) 사건이다. 압살롬은 자신이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계획적으로 민심을 자신에게 돌려놓는 물밑작업을 철저히 한다. 거사 당일에는 모든 지파에 정탐을 보내어 압살롬을 왕으로 추대하는 데 충성할 것을 지시해 놓는다(삼하 15:10). 그리고 다윗을 보좌하는 이들 가운데서 중요 요직 인물들 200명을 골라 초대하는 집요함을 보인다(삼하 15:11). 그들은 멋모르고 압살롬의 초대에 응했다가 꼼짝없이 볼모로 남아있게 된다. 거사 장소는 헤브론이요,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다윗은 국가 비상시에 있어야 할 핵심 인물들 200명이 없는 국정 공백과 무방비 상태에서 반란을 직면한다.

다윗은 사태의 위급함을 깨닫고 그의 신복들을 이끌고 압살롬이 쳐들어오기 전에 예루살렘을 벗어나 망명을 떠난다(삼하 15장). 이러한 배경 속에서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아히도벨이다.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謀士) 아히도벨을 청하는데 그는 반란에 합류하기로 작정한다(삼하 15:12).

후새의 등장(15:31∼37)

다윗이 도망가는 중에 어떤 이가 다윗에게 아히도벨도 압살롬의 모반에 가담했다는 보고를 한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내각에서도 전문 정책자문위원격에 속하는 핵심 인사로 많은 조언을 주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성경에서 그를 모사로 표현할 만큼(대상 27:33) 그는 국가정책 카운셀러로서 높은 요직을 차지한 인물로 그의 모반가담 사실은 다윗에게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치명적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다윗은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기도’였다.

그는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삼하 15:31)라고 기도한다. 기도의 내용은 어떤 학자가 지적한 대로 경건과 현실주의의 조화를 보여 준다. 그의 기도는 지극히 정치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그는 믿음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현실과 신앙과의 괴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은 아히도벨에 대한 보고와 다윗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마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도 주듯 후새를 등장시킨다. 후새도 아히도벨과 견줄 만한 사람으로 정부 요직에 속한 사람이며 다윗의 ‘벗’(friend)으로 역대상에 기록되어 있다(대상 27:33,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그가 다윗을 보고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나온 모습 속에서 그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다. 다윗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 달라’는 자신의 기도가 실현될 수 있는 정략을 즉시에 짜낸다. 그는 후새가 자신을 따라 오는 것은 자신을 돕는 길이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 판단을 한다. 나이 든 후새는 망명길을 지체시킬 뿐이다. 그가 쓰일 곳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후새에게 압살롬에게 거짓 충성을 함으로 ‘아히도벨의 모략’을 저지시키는 역할을 해 달라고 명한다.

다윗은 자신을 따라 나온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들을 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다.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믿음과 함께 그들을 연락책으로 이용하려는 실용적인 판단 때문이다. 다윗은 위기 상황에서도 군대 신복들은 자신을 보호하게 하고, 후새는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산시키기 위하여 압살롬의 진영으로 보내고, 제사장들에게는 연락책과 보고책의 역할을 맡기는 전략을 세움으로 나름대로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그의 기도에서 드러난 대로 믿음의 기초 위에서 하고 있는 최선의 몸부림임을 저자는 분명히 하고 있다. 즉, 다윗의 작전의 성패는 어디까지나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다윗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후새는 위험 부담을 안고 다윗에게 충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때 압살롬도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진영을 옮긴다.

정책 대결(16:15∼17:23)
(1) 압살롬과 후새의 신경전(삼하 16:15∼19)
 
압살롬과 아히도벨이 예루살렘 성에 당도했을 때에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아온다. 본문은 후새가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후새는 압살롬에게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하며 충성심을 표현한다. 이제부터 흥미진진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후새가 어떻게 교묘히 압살롬을 속이면서도 다윗에게 거짓이나마 말로 누를 끼치지 않는지를 관찰해 보는 것이다. 그는 지략적으로 ‘언어의 이중성과 애매모호함의 최대한의 활용’이라는 방법으로 압살롬의 신뢰를 얻는 데에 주력한다. “왕이여 만세”라는 표현도 분석해 보면 흥미롭다. 후새는 왕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므로 실제로 어떤 왕인지가 애매하다. 겉으로는 압살롬인 것 같지만 실제로 다윗을 대비시켜도 무리가 없는 이중 의미를 쓰고 있다.

압살롬도 만만한 자는 아니다. 그는 후새가 다윗 왕을 배반함을 비난하며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라고 비꼰다. 그리고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며 다윗을 따라가지 않은 의도를 심문한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먼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확실하게 선을 긋고는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거할 것이니이다”라고 답한다. 아첨 섞인 이 말 또한 해석 여부에 따라 양쪽 다 적용될 수 있다. 현재 스스로 왕임을 선포한 압살롬에게 이 말처럼 듣기 좋은 말도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택한 자’는 다윗임을 분명히 한다(삼하 6:21; 왕상 8:16; 11:34; 대상 28:4; 대하 6:5∼6; 시 78:70).

후새는 거기에 더하여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라고 답한다. 이것은 다윗이 시키는 대로(삼하 15:34) 후새가 순종하여 한 답변이다. 또한 이 말 속에서도 압살롬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피하고 ‘왕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긴다“는 뜻은 왕의 아버지에 대한 충성도 여전히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왕이 되어 자기 도취에 빠진 압살롬은 이런 후새의 주도면밀한 표현력 속에 숨은 뜻까지 간파할 여유는 없었다. 압살롬은 일단 후새의 답에 만족했으며 후새는 위장 침투에 성공한 셈이다.

(2) 아히도벨의 첫 번째 전략(삼하 16:20∼23)

압살롬은 일단 후새의 일은 안심한 듯 접어두고 아히도벨에게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략을 요구한다. 대책을 간구하라는 명령이다. ‘가르치라’(20절)는 명령이 복수동사인 것으로 보아 압살롬 주위에 자문을 줄 만한 이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압살롬이 기대를 가장 많이 건 자는 아히도벨인 것으로 나타난다. 다윗의 우려가 왜 컸는지를 입증하는 부분이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묘책을 지시한다.

그 내용은 다윗이 궁을 지키도록 남기고 간(삼하 15:16) 열 명의 후궁들과 더불어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동침하여 왕같이 행하라는 내용이다. 고대근동에서 왕의 첩을 차지하는 것은 곧 왕권의 장악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참고: 왕상 2:13∼25). 그러므로 다윗의 왕권이 압살롬에게 넘어갔음을 확실히 하는 동시에 다윗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돌아섬으로(“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압살롬의 추종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다. 다윗과 압살롬이 부자(父子)지간이라는 것 때문에 사태가 어찌 될지 몰라 망설이는 자들에게 이러한 가증한 사건을 통하여 이제 그들의 관계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것임을 공포함으로 현재의 실세인 압살롬에게 충성을 유도하자는 작전이다.
 
이러한 아히도벨의 전략을 평가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히도벨과 압살롬의 이러한 대범하고도 망극한 정치적인 행동은 그들의 최선의 지혜를 모은 작품으로 생각되겠지만 실상은 이미 오래 전에 여호와께서 나단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내용의 성취일 뿐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를 죽인 사건으로 인하여(삼하 11장)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네 집에 재화(災禍)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 12:11)고 말씀하셨다. 이제 실제로 그 말씀이 성취된 것이며 압살롬의 반란도 ‘다윗 집안의 재화’의 일부일 뿐이다. 또한, 아히도벨의 인간적인 지혜는 토라에서의 교훈의 원리를 간과하는 우(遇)를 범하고 있다. 모세오경에서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은 아비의 서모 빌하와 통간함으로 장자권을 상실하는 수모와 심판을 당한다(창 35:22; 49:3∼4; 대상 5:1). 이제 압살롬이 아비의 후궁들과 통간함으로 같은 운명을 당하리라는 것이 이 사건 속에 시사되어 있다.

아히도벨의 지혜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자신의 간교에 스스로가 넘어지는 어리석은 사례이다. 그리고 압살롬의 행위는 또한 토라의 율법에서 엄격하게 금하는 것으로(레 20:11)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악한 행위이다. 마지막으로 아히도벨의 묘책 속에는 다윗의 성적(性的)인 죄가 아들의 성적(性的)인 죄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요소가 있다. 다윗이 동침한 밧세바(“엘리암의 딸이요” 삼하 11:3)는 아히도벨에게 손녀가 된다(“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삼하 23:34). 그러한 그가 다윗이 ‘은밀히 행한 일을 압살롬을 통하여 백주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더한 아이러니는 아히도벨이 왕을 만들려고 한 압살롬은 실패하고 그가 무너뜨리려 한 다윗은 그의 손녀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솔로몬)을 배출한다. 아히도벨 또한 묘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얽혀 있음을 알고 있는가!

본문에서의 저자의 결론은 아히도벨의 모략은 당시에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이것을 언급하는 저자의 목적은 아히도벨의 모략이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도 되지만 다음 장에 나오는 후새의 역할이 그만큼 어려운 것임을 보여주려는 데에 있다. 이런 자의 모략을 후새가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관건이다.

(3) 아히도벨과 후새의 한판 승부(삼하 17:1∼14, 23)
ㄱ. 아히도벨의 두 번째 전략(17:1∼4)
 
위에서 언급된 아히도벨의 첫 번째 전략에 이어 그는 두 번째 전략으로 압살롬의 왕권을 확립시키는 데에 박차를 가한다. 그것은 본인이 직접 1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 밤에 다윗이 곤하고 약한 틈을 타서 급습한다는 계획이다. 다윗과 함께한 신복들이 놀라 도망가게 하고 다윗 왕만 쳐 죽이고 나머지는 다 생포하겠다는 작전이다. 다윗 한 사람만 죽이면 전체 백성을 규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000명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각 지파들을 대표하는 숫자로 적절한 병력으로 야간 기습을 통해 아직 전열을 다듬지 못하고 정보 체계가 거의 없는 다윗의 무리를 침으로 최소한의 피해를 보면서도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다윗을 처형한다는 분명한 목적과 함께 피를 적게 흘림으로 백성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사실상 지혜로운 전략이다. 본문은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4절)고 기록함으로 그의 계획의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ㄴ. 후새의 도전(17:5∼14)

압살롬은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후새를 부른다. “그의 말도 들어보자”는 것이 의도이다. 이제 모든 것은 후새에게 달려있다. 실제로 아히도벨의 계획은 아직 요단을 건너지 못하고 지척에 있는 다윗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인 것이다. 후새는 간단한 아히도벨의 전략 내용과 언어의 간결함에 비해 장황하고도 거대한 계획을 내어놓는다. 발 에프랏(bar-efrat)이라는 학자의 분석을 조금 변경시켜 후새의 전략 내용을 도식화 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후새는 “아히도벨의 베푼 모략이 선치 아니하다”(not good)는 말로 시작한다(7절). 여기에 이중의미가 들어있다. 다윗에게 좋지 않은 계획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후새의 작전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다윗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내용이다(8∼10절). 후새는 다윗이 과거에 용사였음을 상기시킨다. 그가 새끼 빼앗긴 곰처럼 격분해 있고 병법에 익은 자로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어느 곳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다윗이 쉽게 발견될 것이라는 아히도벨의 말을 겨냥하여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히도벨이 이끈 압살롬의 군대가 왔을 때에 다윗의 신복들이 매복하여 있다가 만약 소수의 무리라도 칼에 엎으려 지면 그 패함의 소문 때문에 사자 같은 자라도 사기가 떨어져 전세가 역전될 수 있음도 강조한다.

그리고 다윗이 용사였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시 한번 다윗이 전쟁의 영웅이며 그의 신복들도 용사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일단 아히도벨의 계획 속에 감안되지 않은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아히도벨의 계획이 성공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abc), 그 계획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가져 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a'b'c'). 그 이유는 아히도벨이 노리는 다윗의 목숨은 그가 굴이나 어느 곳이나 숨어 버리면 찾을 수 없기 때문이며(x) 다윗은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병법이 있는 자임을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득과정 속에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후새의 놀라운 언변은 은근히 다윗을 높이고 압살롬을 비하시키고 있다.

두 번째, 후새는 아히도벨의 간단한 계획에 비해, 장황하고 스케일이 크면서도 비전이 있고 승리가 확실시되는 자신의 계획을 밝힌다(11∼13절). 그것은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모래같이 모으고 왕이 친히 이끌고 전장에 나가라는 것이다. “단부터 브엘세바”라는 표현은 우리에게는 “백두에서 한라까지”와 비슷한 표현으로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가리킨다(de). 군대를 모으는 동안 다윗에게 도망갈 시간을 벌게 해 주며 또한 압살롬을 전장에 직접 내 보냄으로 그에게 위험부담과 사살 가능성을 높이려는 의도이다. 심리적으로 사람들은 대개 전장에서 대규모의 군대를 원하며 압살롬의 직접 출정은 그의 명예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렇듯 후새는 심리적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여 설득을 다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대규모의 군대로 다윗이 어디에 숨어있든지 그에게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엄습하여(x') 다윗뿐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전멸시키자는 것이다. 통쾌한 승리의 쾌재는 모든 군대의 리더가 바라는 바이다. 거기에 더하여 후새는 아예 환상적인 스토리를 더한다. 만약 다윗이 어느 성에 들어가 있으면 온 이스라엘이 줄을 가져다가 아예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 성 자체를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국적인 힘을 합치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과장되고 환상적인 시나리오는 압살롬의 자존심과 영웅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의 모략이 대조되어 있다. 세속적으로 표현하면 “승리의 여신은 후새의 편이였다”라고 해야겠지만 성경 본문은 분명하게 아히도벨의 계획이 무산된 이유를 밝힘으로 본문 스토리의 전체 핵심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14절)하셨기 때문이다. 후새의 승리는 그의 언변과 설득력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ㄷ. 아히도벨의 결국(17:23)

이 사건의 결말은 비참하게 끝난다. 아히도벨은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인간 지혜의 한계를 보여 준다. 아히도벨의 지혜의 극치는 “그의 모략이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삼하 16:23)는 평가 속에서 드러난다.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와 동일시 될 만큼 그의 지혜가 뛰어났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의 평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그만큼 왕국에서 그의 역할도 컸다. 그러나 그가 압살롬에게 베푼 첫 번째 계획은 위에서도 지적되었듯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 말씀의 지혜에 도전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지혜를 다해 생각한 가장 지혜로운 일을 결행한 것이다. 결국 자살이라는 행동을 통하여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는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는 잠언의 말씀(잠 21:30)을 모르는 어리석은 지혜자였다.
 
둘째, 말씀을 의지하는 자와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자의 대조를 보여 준다. 본문에서 주목해 볼 것은 압살롬이 자신의 미래와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그는 모략가인 아히도벨과 후새의 인간적인 지혜에 의존하여 자신의 권력과 미래를 보장받으려 했다. 그가 간과한 것은 그들은 한계를 가진 인간들이란 점이다. 더군다나 후새는 압살롬을 무너뜨리려 왔음에도 그는 그것도 간파하지 못했다. 저자는 압살롬 왕권의 실패를 통하여 인간을 의지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반면에 다윗은 항상 여호와를 의지했다. 그는 망명 중에도 기도함으로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삼하 16:23)고 간구하며 여호와를 의지했다.

결국 본문은 아히도벨의 계획이 그토록 무참히 무너진 것은 여호와의 다윗에 대한 기도의 응답임을 보여 주고 있다. 다윗은 비록 자신의 죄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지만 끝까지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왕위에 복귀되며 여호와의 복을 받은 왕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우리도 과연 누구의 지혜를 쫓아 사는지, 어디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것인지 본문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믿고 그 분의 섭리를 신뢰하되 인간적인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이다. 본문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와 인간의 행동이 만나 이룬 작품이다. 다윗의 믿음은 그를 능동적인 행동주의자로 만들었고 후새를 압살롬의 궁으로 침투시키는 지략을 보여 주었다. 후새의 다윗에 대한 충성심은 목숨을 걸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필사적으로 막는 용기와 지혜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본문은 이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삼하 17:14)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국 다윗의 믿음과 후새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섭리에 우리 삶의 목적을 두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능동적으로 최선과 충성을 다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발휘하며 행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그럴 때 본문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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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21 [10:5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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