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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4.01 [16:52]
【영*한 설교】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정준모목사 역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정준모

*한 복음설교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Why Must I Suffer?)

 

정준모목사 역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  필자와 함께 믿음의 동역자로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전도인의 삶을 사는 믿음이 친구들이다. 오른 쪽에는 토니라는 친구는 늘 섬김을 통한 전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동전도에 힘쓰고 있다. 왼쪽 쪽에는 프랑크라는 메시아닉 유대인이다. 성경을 통달하고, 열정으로 매일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Corolado Springs 교회의 전도 사역자이다. 한 주일에 한번씩 만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교재하고 있다    © 정준모


 

*미국 전도지에 나타난 복음 소개를 한글로 번역하고 소개합니다. 영어로 설교하거나 전도할 때, 유익하다. 특별히 선교지에서 복음 소개와 설교 자료로 활용하기 바랍니다-번역자*

 

고통당하고 있는 세상이 아닙니까?

 

Suffering is a part of our lives. Most people at one time or another experience physical illness.

고통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 또는 그 이상의 육체적 질병을 경험합니다.

 

Hunger is requently endured by a large per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Poverty is widespread.

굶주림은 세계 인구의 많은 사람들이 종종 참고 견디어야 문제들입니다. 빈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Still others suffer at the hands of people, either in difficult marriages, or with abusive parents, or oppressive masters.

또 다른 사람들은 어려운 결혼 생활이나 학대하는 부모 또는 강압적인 상사 등의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고통을 받습니다.

 

As a result of greed and corruption, the political climate in some countries produces much bloodshed and war.

탐욕과 부패의 결과로 일부 국가의 정치 상황은 많은 유혈 사태와 전쟁을 낳습니다.

 

Those with deep spiritual convictions have to suffer persecution because of their obedience to their beliefs.

깊은 영적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에 순종함으로 박해를 당해야 합니다.

 

고통당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Millions of people around the world suffer daily. Why? What is the reason?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매일 고통 받고 있습니다. ? 이유가 무엇입니까?

 

Suffering came into this world in the beginning because of sin. It Pain, trouble, and sorrow became an everyday part of man’s existence, because of his disobedience.is a continual reminder of man’s sinful condition (Genesis 3:16-19; Romans 5:12).

처음에는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 고통이 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죄의 전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3 : 16-19 ; 로마서 5:12).불순종으로 인한 죄 때문에 고통과 고난과 슬픔은 인간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Since sin is in this world, suffering is a part of life. We cannot, in this earthly life, expect to see the complete eradication of disease or the end of suffering. We are all subject to it regardless of status or nationality.

죄가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고통은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 생활에서 질병의 완전한 근절이나 고통의 끝을 볼 것에 대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위나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가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Many people suffer unnecessarily because they abuse their bodies, or do not take proper care of them.

많은 사람들이 신체를 학대하거나 적절하게 돌보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고통을 받습니다.

 

If we indulge in smoking, drinking, taking drugs, and intemperate living, we are making excessive demands on our bodies.

우리가 흡연, 음주, 약물 복용 및 부절제에 빠지면 우리 몸에 과도한 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Consequently, our bodies, and even our minds, may break down under these stresses. It is sin to abuse our bodies (1 Corinthians 3:16-17, 6

결과적으로, 우리의 몸과 심지어 우리의 마음조차도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학대하는 것은 죄입니다(고전 3 : 16-17, 6 : 18-20).

 

There is much suffering, however, that comes upon the human race over which we have no control, and it comes unbidden to the rich and poor alike.

그러나 우리가 통제 할 수 없는 인류에게는 많은 고통이 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이러한 문제가 따라고 있습니다.

 

No one, no matter how good a person he is, can be assured that he will be exempted.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면제 될 것이라고 확신 할 수는 없습니다.

 

Job, the great example of suffering, was commended of God as a perfect and upright man. Consider the misery he suffered, losing his health, wealth, and family, and even his wife turned against him!

고통의 위대한 모범인 욥은 하느님을 완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칭찬 받았습니다. 그가 겪은 고난의 불가사의 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건강, , 가족을 잃어 버렸으며 아내조차도 그를 대적하여 돌아섰지 않았습니까?

 

고통 속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무엇입니까?

 

God was glorified through his suffering, and He would like to be through yours. Read Job, chapter 1.

그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그는 기꺼히 자신이 당면한 고난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욥기 1 장을 읽으십시오.

A person is not necessarily sick, blind, maimed, deaf, deformed, barren, etc., because he or his parents have sinned.

자신 혹은 그의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질병, 소경, 벙어리, 귀머거리, 기형, 불모 등의 고통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

At one time the disciples asked Jesus after meeting a blind man: “Master, who did sin,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John 9:2).

한번은 제자들이 눈먼 사람은 만났을 때,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자신 죄 혹은 부모의 죄 중에서 누구의 죄로 눈먼 사람이 되셨습니까?(요한복음 9 : 2).

 

Jesus replied, “Neither hath this man sinned, n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should be made manifest in him” (v.3). Later, Jesus healed the man.

예수님은 이것은 그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하시고자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께서 그 소경을 고쳐주셨습니다.

 

In some cases the barren woman suffers unjustly. She is despised and rejected because of superstitions and cultural stigma.

어떤 경우에는 불모의 여자가 부당하게 고통 받았습니다. 그녀는 미신과 문화적 낙인 때문에 멸시 당하고 거부당했습니다.

 

Her condition does not indicate a curse from God, and she need not despair. In this case, as well as in all requests to God, let us always remember that He knows what is best for us.

그녀의 상태가 하나님의 저주로 나타난 것이 아니므로 절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께 대한 모든 요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아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속에 담긴 신령한 유익성은 무엇입니까?

 

God does not intend to punish, but would rather like to refine us through this type of suffering.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벌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여 고통의 유형들을 통하여 우리를 정련시키고자 하십니다.

 

Actually, we can gain spiritual enrichment through such experiences. Suffering brings out the “real” or inner man and reveals our makeup. Many have found that by accepting difficulties and troubles their hearts have become softened.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영적인 풍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난은 진정한또는 내면의 속사람을 보여주고, 우리의 숨겨진 모습을 드러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과 어려움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부드러워 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집니다.

 

The humility this brings opens our mind to our dependency on God and His purpose for us. Then we can understand that, through suffering and difficulties, He intends to draw us closer to Him.

이러한 겸손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통해 그분이 우리를 그 분께 더 가까이 가게 하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Joseph was sold as a slave by his own brothers. Rather than being bitter about this, he let God work in him. He filled a great place in God’s plan.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는 이것에 대해 쓰라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Later he told his repentant brothers, “But as for you, ye thought evil against me; but God meant it unto good, to bring to pass, as it is this day, to save much people alive” (Genesis 50:20). He was blessed in his submission.

나중에 그는 회개한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창세기 50:20). 그는 그의 순종에 복을 주셨습니다.

 

The suffering we experience tends to make us think about ourselves. We may feel alone in our problems and think no one understands.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 홀로 외로이 느끼며 그 누구도 자신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The burdens we have may seem greater than what others have to bear. It is easy to indulge in self-pity and become bitter, but the example of Joseph shows us how God can bless us as we submit to Him. Rather than despairing, we can allow our suffering to be turned to the glory of God.

우리가 겪는 짐이 다른 사람들이 겪어야 할 것보다 더 커 보일 수 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고 쓰라린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우리가 요셉의 모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가 그 분께 복종할 때 ,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고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Once we are resigned to our lot and can humbly say, “Lord, Thy will be done,” God can speak to us.

우리가 우리의 운명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께서 모든 것 다 하셨읍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There are many instances where people have thanked God for taking them through the valley of suffering. They then realize there is more to life than to fulfill their own desires, pleasures, and pursuits.

사람들이 고통의 계곡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표한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욕구, 즐거움 및 추구를 성취하는 것보다 인생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통 속에서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Many testify that they have found the Lord through suffering. Then, when they must face death, they can joyfully say with Paul, “Death is swallowed up in victory. The sting of death is sin; and the strength of sin is the law. But thanks be to God, which giveth us the victory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1 Corinthians 15:54-57).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통해 주님을 찾았음을 간증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죽음에 직면해야 할 때 바울과 함께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 전서 15:54-57).

 

Suffering will be the eternal lot of all those who reject Jesus (John 12:48). However, those who are willing to suffer for Jesus in this life will enjoy the rewards of eternity with no suffering at all (Revelation 21:4).

예수님을 거절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영원한 고통이 될 것입니다(요한복음 12:48). 그러나 이생에서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전혀 고통없이 영원의 상을 누릴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 : 4).

 

By humbling ourselves to accept God’s way for us and repenting of our sins, our robes can be washed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Those who are redeemed in this way can obtain the heavenly reward (Revelation 7:13-14).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길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도록 겸손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옷은 어린 양의 피에 희게 씻겨 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구속받은 자들은 하늘의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한계시록7 : 13-14).

 

Suffering would teach us to be more sympathetic to others. We may make little effort to visit or pray for the afflicted, until we have experienced suffering ourselves. “That we may be able to comfort them which are in any trouble, by the comfort wherewith we ourselves are comforted of God” (2 Corinthians 1:4).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더 동정심을 갖도록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고난을 겪을 때까지 고통받는 사람들을 방문하거나 기도하는 것 등을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를 받는 그 위안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위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린도전서1 : 4).

 

Jesus, who once lived on this earth in a body like ours, understands us and our sufferings well. He can sympathize with us beyond the capacity of any human being.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와 같은 몸으로 살아보셨기에 우리와 우리의 고통을 잘 이해하십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 우리와 동정 할 수 있습니다.

 

He knows our pain and our troubled heart. When Jesus witnessed the grief of His friends at the death of Lazarus, He was so touched in His heart that He groaned within Himself and wept (John 11:33-35).

그분은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으 실 때 친구들의 슬픔을 목격 하셨을 때 마음속으로 감동을 받으시고 자신 안에서 울분을 내셨습니다(요한 복음11: 33-35)

 

He gave Himself to suffering for the eternal salvation of humanity. If He, being the perfect Son of God, accepted this, then we should be willing to also endure affliction.

그는 인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이신 그분이 이것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도 기꺼이 고난을 인내해야 합니다.

 

True followers of God willingly accept adversity since they are servants of Him, who is their example. A vision of Jesus, His love, and His sacrifice, causes them to consider, “Why should we be spared suffering?”

참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모범이신 그분의 종이기 때문에 역경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에 대한 비전과 그분의 사랑과 희생은 왜 우리가 고통을 아끼지 않아야합니까?”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Even though we may have to suffer extensively, we can find a rest in accepting what God has allowed to us. God is the Master Planner-with every trial. He has promised to provide for our keeping.

비록 우리가 광범위하게 고통을 당해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련의 계획자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시련과 함께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When the apostle Paul was able to accept his difficulty or handicap, he was able to be a happy and useful person. He prayed three times, asking God to remove the thorn from his flesh, but God answered, “My grace is sufficient for thee: for my strength is made perfect in weakness” (2 Corinthians 12:9).

사도 바울은 어려움이나 장애를 받아들일 때 행복하고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육체에서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다 : 내 힘을 약한 데서 온전하여 이루진다"(고후12 : 9 ).

 

Similarly, as we completely surrender to God and accept our suffering, God’s strength sustains us. When we accept God’s plan for us in suffering, it brings forth an expression of thankfulness that blesses our hearts and witnesses to those around us.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고 고통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떠받쳐 줄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축복해 주며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소재한 "가든 오브 갓"(신들의 정원)의 일부 모습이다. 오늘처럼 따스한 봄볕에 수많은 사람들이 봄의 향기를 즐기고 있다. 필자가 이곳에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정원을 거닐면서 찬양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노라면 하나님, 자연, 나의 혼연일체가 된다.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의 찬양이 이곳에 부를 때 더 정감이 넘치게 된다.  © 정준모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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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10 [09:58]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연재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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