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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5.27 [20:04]
[로마 한평우 칼럼]바울을 그리며(7)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한평우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 중에서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을 가리켜 친구라고 말합니다. 친구라는 명사는 아주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친구라고 할 때, 한두 번 만난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라새아 앞 바다(행27:8)     © 한평우 목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리켜 내 벗(친구, 4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을 친구(15;15)라고 칭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하신 것은 아주 가까운 관계,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아낌없이 주시기 까지 사랑하는 관계임을 십자가를 통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게 된 바울은 주님에 대해 훼방자로 살던 중 즉시 돌아섰습니다.그리고 목숨 바쳐 주님을 증거하는 자의 길을 걷다가 체포되어 지금 옥중에서 순교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친구라고 명명하여 주셨습니다.이것은 허무하고 연약한 인생이 이 땅에서 받게 된 가장 큰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올림픽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거머쥔 승리자는 날아갈 것 같은 기쁨을 향유할 것입니다.특히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지 못했는데 금메달을 땄으니 그 기쁨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요,

 

가문의 기쁨입니다. 너무 기뻐 눈물까지 쏟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귀한 기쁨도 얼마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정의 만족은 잠깐이고, 곧 평범하게 되고 더 큰 것을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를 향하여 친구라고 선언하신 사건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 관계는 영원한 관계요,결코 끝날 수 없는 관계

입니다.이런 축복을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 없이 우리는 받았습니다.

 

올림픽에서 자랑스런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수년 동안을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고서야 아주 드물게 받게 되는데, 우리는 노력 없이 세상의 금메달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면류관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나를 친구 삼아주신 것만도 한 없이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인데 말입니다. 대통령이 사석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분은 나의 진정한 치구입니다 했다면 그 당사자의 기쁨은 클 것입니다. 지체 높으신 분이 나를 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친구로 인정하여 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얘기를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었던 분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 그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하나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내 친구 XXX 하신다면 그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울까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 우리를 향하여 친구라고 파격적으로 호칭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가장 귀한 호칭입니다. 그렇다면 친구라는 정의를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친구라는 어떤 관계여야 합니까? 친구란 끝까지 변치 말아야 할 관계입니다.

 

마치도 사도 바울 곁을 끝까지 지켰던 의원 누가처럼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그로 인해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해도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그의 곁을 지켜주고 그를 변호할 수 있는 사람이 친구입니다.

 

영국의 한 신문사가 현상금을 걸고 친구에 대한 정의를 모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응모했는데, 그 중에서 당선작은, “친구란 온 세상이 모두 등을 돌린 후에 찾아오는 사람이다”(A Friend is the one who comes in when the whole world has gone out)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친구로 여김처럼 당신도 예수님을 진정 세상에 둘도 없는 참 친구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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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21 [08:1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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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미지1
한평우 목사는 1982년 로마한인교회를 부임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으며, 1993년 유럽목회연구원을 설립하여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영적 재충전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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