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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3 [18:01]
인생의 풍랑에도 두려워 마라(막4:35-41)
정준모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정준모

 

 

 

▲  인생의 폭풍 속에 주님을 바라보고 승리하라-뉴스파워-

 

서론: 인생은 바다, 폭풍은 고난

 

인생의 길은 바다 길과 같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 드는 고난의 비바람과 풍랑이 있기 마련이다. 마가복음 43541절에는 갈릴리 바다에 갑자기 밀어닥친 풍랑으로 죽음의 위기를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기적을 통하여 무사히 바다 건너편으로 항해를 마친 사건의 기록이 있다. 이 사건의 기록은 구원의 삶 속에서도 각종 폭풍을 만나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 여정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본문은 왜 우리의 인생의 바다에 풍랑이 일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인생의 바다에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사건 기록이다. 이 기적이 단순히 예수님께서 배 밑창에서 주무시다가 일어 나셔서 불쌍한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엉겁결에 행하신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모든 일을 섭리하시고 계획하시므로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적 속에는 깊으신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이 감추어져 있다.

 

1. 기적에 대한 다양한 입장

 

기적에 대한 몇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데이빗 흄 같은 사람은 기적을 믿지 못한 나머지 기적은 자연법의 반대라고 했다. 현대 과학자들은 기적이 일종의 무지의 소산이라고 단정하고 기적을 거절한다.

 

어거스틴은 "더 높은 자연법(Hidher natural law)“ 이라고 했다. 찰스 핫지는 초자연적인 법(super nature law)“ 라고 했다. 개혁주의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 헬만 바빙크, 요한 칼빈은 기적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시켜 나가시는 표적(sign)“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이 보여 주는 기적은 우연한 사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갑자기 무언가를 일으키시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 사역과 연결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광대 하신가를 기적이라는 사건을 통해 드러내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생들에게 계시하셔서 하나님께 돌아와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적 표적을 기적이라 일컫는다.

 

2. 풍랑이 주는 영적 유익들

 

풍랑 일어나는 바다를 고요하게 하신 주님의 기적을 통해 계시해 주신 주님의 진리와 교훈을 깨닫고자 한다.

 

1) 풍랑은 믿음의 진정성을 측량한다.

 

풍랑은 주님의 제자로 따르겠다고 나선 자들의 진정한 믿음을 판가름할 수 있는 실제 현장이다. 믿음을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의 동기와 비중을 달아 볼 수 있는 영적 저울이 되었다.

 

옛말에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을 알 수 있고 가정이 어려울 때 열녀와 효자를 알 수 있다고 했듯이 풍랑을 당할 때 그들의 믿음의 진실성을 알 수 있다. 광풍 속에서 그들의 믿음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낮 시간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여러 교훈을 들었다. 특히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었다. 예수님의 그 비유의 해석까지도 별도로 듣는 특권까지 누리게 되었다. 그들은 믿음의 위대성과 중요성과 효능성도 알았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바로 "그날 저물 때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 시작한다. 이것은 바로 얼마 전 낮 시간에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잘 배웠다. 그들은 지적으로 진리의 말씀에 충분히 동감을 하고 은혜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것도 아닌 바로 그 날 그것도 겨우 몇 시간 후에 제자들이 받은 바 교훈과 그들이 소유한 믿음을 적용하고 활용해야 되는 실제적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시간 예수님의 탁월하고 은혜로운 말씀의 감동이 머리속과 마음속에 아직도 맴돌고 있는 그 때 바로 그날 황혼녘에 그들이 과연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적 삶의 정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믿음으로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의 광풍을 만났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한발 앞으로의 전진을 위한 테스트 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믿음을 저울질 시는 시험 말이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주님이신가? 우리가 늘 부르짖어 온 참된 교육은 이론과 실제가 병행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주님은 낮에 가르치시고 저녁에 실전을 경험케 하신 분이시다.

 

인생들의 기억의 한계가 고작 3일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인간의 연약을 아시는 주님의 신속한 대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심 3일 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진리를 배울 수 있는데, 그날 거기엔 특별히 풍랑 속에서 주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거센 풍랑 속 침몰의 위기에 있는 배속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는 주님, 날마다 동고동락을 같이하는 제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그 상황에는 조금도 아랑곳없이 주무시고 있는 주님께 참다 못한 제자들은 분노와 경악의 외마디를 지른다.

 

38절에 보면,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니까라고 소리친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겐 예수님이 함께 하신 곳이 바로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삼키려고 달려드는 풍랑은 잘 보였지만 그들을 지극한 평안으로 인도하는 안전이 되시는 주님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풍랑 속에서도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이 누구신줄 알았다면 그들이 아우성을 칠 필요도 주님을 깨울리도 없다. 그들이 마구 소리쳐 주님을 깨웠다는 것은 풍랑만 크게 보이고 주님은 너무나 작고 무능하게 보았다는 불신의 소치이다.

 

그들은 아직도 주님의 주되심을 모른다. 자연까지도 다스리시고 지배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도 믿지 못하고 주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삶 속에서 체험하지도 못한 설익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시다. 주님은 전능자이시다. 어찌 구원자와 전능자 되신 분을 태우고 가면서 두려워 떨고 있다는 말인가? 이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주님은 광풍 속에서도 편히 잠자는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을 의뢰하고 신뢰하도록 실제 상황을 통해 보여 주셨건만 그들은 도리어 무서워하고 믿음 없는 자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고 만 것이다.

 

그 날의 광풍은 다만 제자들의 인생사에 있어서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고 매어 달리는가를 달아보는 저울이었으며, 과연 주님은 어떠하신 분인가를 알게 하기 위한 시청각 매체였을 뿐이다. 오늘도 주님은 제자된 우리들을 광풍을 통하여 달아보고 계신다. 풍랑은 그동안 우리가 배우고 깨달은 말씀을 지금 이 시간 나의 삶에 얼마나 잘 적용하는가를 달아보는 저울이다.

 

광풍은 우리의 얄팍한 신앙의 연약함을 노출시키는 투시경 이다. 요동하는 배 안에서, 풍랑이는 바닷 속에서는 배 안에서 바로 우리의 쥐꼬리 만한 믿음이 얼마나 부끄러운가를 깨닫게 해 주셨다. 광풍의 배 위에 설 때 자신의 믿음이 저울에 달리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 고난의 풍랑에서 제외된 제자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이 곧 고난에서 제외되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를 본다.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사라지고 고난의 언저리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다 불행했던 시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늘 행복만 가득 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다 건강해지고 무조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믿음이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을 놓치고 마는 말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곧 우리 인생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아니다. 모순된 말처럼 들릴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서 믿음이 주는 의미가 더 막중하고, 오묘하며, 신비한 뜻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믿음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 아래 내가 지금의 나 되었다는 말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실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주님을 모신 제자들의 배에도 무서운 풍랑이 밀어 닥쳤듯이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고난의 폭풍이 불현듯 밀어닥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거센 풍랑이 불어도 결국 주님을 모신 배를 뒤집어 놓지 못하고 끝내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의 인생 항로에 늘 맑은 날만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인생 항해의 분명한 일기예보는 예측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분명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 할 것이다는 사실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지 않는가!

 

고난을 당하는 그 자체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성도들에게 때 아닌 폭풍이 불어와 인생의 수고를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을 내놓고 잿더미로 만들어 놓는 이런 엄청난 사실 앞에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 경건하고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욥 같은 자에게 그와 같은 청천벽력의 사건을 허락하시는가? 어찌 하나님을 향한 섬김의 절대 표본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게 불 시험을 주셨던가?

 

한 때 미국의 베스트 셀러가 된 랍비 헤롤드 쿠쉬너(Harlod Kushner)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 때(When bad happen to God people)라는 책제목처럼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런 죽음의 폭풍과 풍랑 속에 선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까지 몰아 넣으시고 건지시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많은 신앙적 회의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생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방관할 만큼 큰 분이 못되시는가? 그러나 이는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인생사가 인간의 말과 지혜로 이해시키고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엄연히 존재하며, 또한 그런 부분을 우리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 해주고 있다.

 

삶에 관한 중대한 질문은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 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무엇이 삶의 목적이 되는가가 중요하다. 사람은 약속으로 사는 것이지 설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의지의 사람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세계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지만 또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역시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고통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지만 우리 또한 고통을 다룰 수가 있는 것이다. 한 위기가 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결국 위기 가운데 한 사람의 내적 자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는 말이다. 그 때 드러나는 내적 자원, 곧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참되게 만드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상에서의 고난이 바로 고통과 기쁨의 상관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예가 될 수 있다. 그렇다. 진정한 고통의 의미는 십자가 의미에서만 분명히 전달된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 후 부활의 영광, 그 고통 후에야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3) 풍랑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주님뿐이다.

 

병들었던 사람을 치유하시는 기적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생명의 주인 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시고 또한 만물의 주가 되신다는 계시들은 그의 기적속에 잘 드러난다.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의 생명이 주께 달려 있고 우리의 환경 까지도 주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좌절을 표현하는 성도들을 쉽게 만난다. “목사님 우리 집이 요즈음 말이 아니에요. 우리 사업이 너무 사양길로 치닫고 있어요. 막힐 대로 막히고 이제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까지 폭풍이 밀어 닥쳤어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그 풍랑 속에서 평온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보아야 한다. 그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성난 파도를 고요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에 그대의 삶을 맡기라.

 

야고보 513절에 너희 중에 고난당한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다시 말하면 고난을 당한 당사자는 누구보다도 먼저 기도해야 한다. 고난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속히 엎드리기 바란다.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14절에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의 이름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이다. 주님의 이름은 우리를 대신하여 역사하는 능력의 근원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타당하기나 한 소리였던가? 말도 안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 다윗과 인간 골리앗의 싸움은 바로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기에 더욱 말도 안되는 싸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골리앗과 같은 불가능한 장벽과 곤경,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와 같은 고난의 인생을 주님의 능력으로 역사를 일으켜 단번에 승리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 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15). 믿음은 풍랑을 멈추게 할 실제적 능력일 뿐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참 평온을 찾을 수 있는 힘이다. 믿음은 풍랑속에 있는 인간이 가장 은혜롭게 그리고 가장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의 기도는 풍랑을 멈추고 안전 항해의 기적을 일으킨다.

 

풍랑을 만난 성도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간절한 기도는 의심치 않고 믿는 마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것이다. 살고 싶은 생명의 애착심 때문에 주님께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는 것은 불신앙의 소치이지만 주님께 믿음으로 간청할 때 하나님이 그 믿음을 칭찬 하시고 역사를 일으키신다.

 

결론) 풍랑에 예외 된 인생은 없다. 고난은 오히려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고난의 풍랑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암호이다. 고난의 풍랑은 예수님이 바다까지 잠잠케 하시는 자연의 주, 만유의 주되심을 보여 준다.

 

고난의 풍랑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살아 있는가를 재어 보는 하나님의 측정계 이다. 인생의 바다로 항해하는 여러분의 작은 배에 우리들의 공동체의 배에 누구를 사공으로 모시려고 합니까? 누구에게 여분의 인생의 노를 맡기시렵니까? 우리의 사공 되시는 주님이 우리 인생의 배를 우리 교회를 운전하시도록 믿음으로 모두 맡기고 인생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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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9 [22:4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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