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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24 [09:02]
[예수칼럼] 미래 상실병을 치유하자
다시 읽는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김준곤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가장 큰 질병은 미래를 상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죽음으로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실존주의들인데 이들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르트르 무드와 암흑 무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샤르트르가 파리에서 강의를 할 때면 몰려드는 사람들을 정리하기 위해 경찰이 동원되었습니다. 어떻게나 사람이 모여들었는지 장서 정리를 위해 경찰을 동원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사르트르의 무드가 조성되고 많은 사람아 모여들었을까요? 사르트르가 살던 시대에는 실증주의가 정신적 풍토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토에서 두 번의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인간의 실존이 소외가 되고 부자유를 느끼게 되었으며 인간의 자유가 과학 속에 삼켜지고 물건 화가 되었을 때에 사르트르는 실존의 자유, 인간의 해방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인간의 해빙을 갈망하면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콩트가 주장하는 실증주의에서는 모든 지식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신학적인 단계와 과학적인 단계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것만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이고 객체적인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은 과학의 대용품 노릇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컴퓨터로 인간 감정의 도수까지도 다 계산해 낼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사람의 종교성도 측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에 넣으면 인간의 가치가 숫자로 계산되어 모든 것이 점수로 객관화되어 버릴 것입니다. 실증주의는 이와 같이 마지막에 가서는 인간의 가치를 객체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살고 있었던 시대의 배경을 생각해 보면, 첫째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 사건이 일어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일어났고, 둘째로는 역사상 최대의 전체주의적 국가인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국가가 생겨 파리를 유린했으며, 셋째로는 최대의 살인 무기인 원자 폭탄이 등장해 히로시마에서 인류를 대량 학살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유럽은 세상 점점 좋아진다고 하는 진화론의 산물인 역사의 진보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세상은 진화 법칙에 따라서 점점 진화되고 진보되고 좋아질 것이므로 인간을 교육시키고 계몽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면 얼마든지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철퇴(鐵槌)를 가한 것이 사르트르였습니다. 인간은 나갈 길이 없다, 무덤이 마지막이다, 허무이다, 절망이다, 인간 자신을 잃어 버렸다, 이 거대한 기계화 속에서 인간은 실격되고 소외가 되었다, 차라리 자살해 죽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낙관론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유럽 사람들이 공감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속았다고 하는 회의와 불신의 무드가 휩쓸게 되었습니다. 유럽 방방곡곡의 사람들의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불신 무드가 팽배해졌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불신하게 되었고 국가와 문화와 사회적인 불신이 높아졌으며 인간의 실존적인 신뢰감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신뢰감이 사라졌습니다.

신뢰감은 소망을 가지는 데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성장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신뢰감입니다. 이 신뢰감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는 결정적으로 불행해집니다. 사랑의 분위기를 모릅니다. 희망적으로 생각할 줄을 모릅니다. 정상적인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의 신뢰감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가져야 할 신뢰감의 원형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머니에게 가졌던 이 신뢰감을 하나님께로 전이해야 합니다. 인간이 어른이 되어 실존적인 자아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신앙을 상실해 버리면 어머니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와 같이 불행하게 되어 버립니다. 인간이 가진 성품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신뢰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신뢰성은 미래를 향하는 것인데 이것은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처럼, 봄의 화신이 오는 것처럼, 태양 빛이 지구를 감싸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만드는 아니라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처리할 자유가 없습니다. 미래는 우리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인간의 신념이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미래라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운명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허무에게 맡깁니다. 우연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앉습니다. 노력이나 신념으로, 자기의 계획대로 창조해 간다고 하지만 미래는 내 손에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생각할 때 신앙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생기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생깁니다. 신앙 속에서만 미래를 확실히 살게 되고 신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신뢰는 떡을 먹는 것처럼 중요한 것인데,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은 식량으로 먹는 떡처럼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잃어 버린 사람은 확실성이 없어집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부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과거를 가졌고 현재를 가졌고 미래를 가졌습니다. 내 추악한 과거는 그리스도화 되었습니다. 아무도 과거를 탓하지 못합니다. 경제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대시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 시민권을 가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왕권을 소유합니다. 이것은 가장 자발작고 인격적인 영적 왕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우주적으로 모든 만물과 모든 문들이 열리게 할 것이고 모든 권세가 그 앞에 머리 숙이게 할 것입니다. 우주의 왕권을 회복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최후의 실현입니다.


*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2004년 1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 선교를 실천한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한국 기독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된 신앙인인 저자의 선지자적 영감과 시적 감성으로 쓰인 잠언록이다. 민족과 역사,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외침을 담아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우리 영혼을 전율시킨다. 출간 이후 최장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써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칼럼>은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되며, 특히 문체의 간결성과 심오한 기독교 사상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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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10 [07: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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