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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5 [21:01]
[설교]네 행위를 살펴보라
정준모(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
 
정준모

 

   

 

▲ 날마다 십자가  바라보며 자신의 행위를 살피는 겸허한 영성을 주옵소서  ©뉴스 파워 정준모

 

서론) 필자가 교직 생활 6년을 마감하고 총신 신학대학원 입학 후,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고 인격적 감동을 준 교수님은 바로 구약을 가르치신 김희보 박사님이시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 강의로 구약 전체의 기초 맥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선지서 강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역사에 대한 눈이 띄게 되었다.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강이 중 강의는 바로 학개서에 대한 해석이었다.

 

네 행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이 2장으로 쓰여진 짧은 학개서에 4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1:5,7;2:15;2:18). 반복은 강조를 뜻한다.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개정성경에는 소위”)자기가 걸어온 일련의 생의 과정과 길을 뜻한다. 이것은 지난 날 살아온 삶의 발자취와 도덕적 모든 행위를 뜻한다. 이 말씀은 너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살아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이처럼 어려운 일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는지 철저히 지난 날 자신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오늘에 당면한 나의 인생 문제를 두고 지난 날 나의 삶이 어떠했는지 냉철하게 살펴볼 때, 살 길, 회생의 길,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자신의 생전에 꿈을 성취한 선지자 학개

 

학개”(Haggai)라는 이름의 뜻은 나의 절기”, “나의 잔치”(my feast)라는 뜻이다.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된 이유와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로된 날에서 해방된 기쁨과 감격을 잊지 못하고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둘째, 포로된 현재의 상황에서 자유롭게 될 내일의 기쁜 날을 기대하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일 수도 있다. 세 번째, 학개의 설교가 주로 히브리인들의 기쁨의 절기 때에 선포되었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면 학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성경에는 보통 선지자에 대해 소개할 때 그의 부모나 가문에 대해 언급되어 있으나 학개의 경우에는 아무런 소개가 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학개서 23절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영광스러웠던 예루살렘의 첫 성전을 보았던 자였고 그 후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잡혀갔다가 다시 고국 땅에 돌아와 황폐 되어 버린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해 앞장섰던 약 80세 전후의 인물로 추측된다.

 

학개 선지자는 성전 건축 운동 즉, 이스라엘 민족의 영성 회복 운동을 위하여 전심을 기울였다. 학개는 진정한 지도자가 없는 어두운 시대에, 그 시대가 기다라고 앙망하던 시대의 소명을 받은 자, 하나님이 사용하신 민족의 지도자였다. 학개는 수많은 시대적 아픔과 역경, 감당하기 힘든 온갖 고통과 번민 그리고 불운의 시대에 80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을 통한 이스라엘 영적 부흥운동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마치 오늘날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 세속 신문에 특종 기사로 떠오는 시대적 현상을 바라볼 때, 풍전등화의 한국교회는 또 다른 학개 시대요, 학개가 요청되는 시대라고 빗대어 말할 수 있다. 이 혼란스런 영적 위기 시대를 다시 세우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똑똑하고 패기가 넘치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목회적 연륜과 삶의 지혜가 풍성하고 덕과 인격이 겸비된 노장 학개가 필요한 시대이다. 감정적 용어, 감각에 호소하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말씀과 삶, 설교와 인격이 겸비된 지도자가 절실히 요청된다. 학식과 학위도 필요하지만, 경륜과 덕목을 갖춘 성숙한 인격자로서 지도자가 요망된다. 학개 선지자는 자기의 생애동안 외쳤던 말씀과 자신이 꿈꾸었던 소망들이 생전에 이루어지는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는 복을 누린 자이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에도 그 언약의 말씀대로 살지 않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빼앗기고 말았다. 더욱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도 훼파되고 성전의 영광은 사라지고 더더욱 수많은 백성이 이방의 포로가 되는 비극의 역사를 맞았다. 그러나 비록 그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져 버리고 말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자비와 긍휼을 베푸셨다. 그 결과 에스라 264절에 따르면, 포로 전체는 아니지만 포로 중 약 5만 여명이 다시 고국 땅을 밟는 복을 누리게 된다. 그때서야 그들은 고국 땅에 돌아가면 옛날처럼 하나님 성전에서 예배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이키실 이유가 없지만 다만 그들이 다시 돌아가 하나님께 예배 하고자 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셨다.

 

학개와 포로된 백성들이 긴 바벨론 유수 생활을 청산하고 그처럼 열망하던 조국 땅을 밟으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은 무너져 버렸고 성전도 다 훼파되어 버렸다. 그들은 황폐화 된 예루살렘과 성을 바라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고 한심스럽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처럼 찬란했던 예루살렘 성이 아니었던가! 그처럼 영광스럽던 성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꼴이 되었는가? 고국 땅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지난 날 고생했던 70년 포로 생활의 한을 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고국 땅에 와보니 예배할 성전이 무너지고 황폐화 되어버린 상태를 바라보고 그들은 탄식하며 깊은 좌절에 빠졌다. 그들은 무너진 성터가 바라보이는 곳에 천막을 치고 거하게 되었을 것이다.

 

주전 536, B.C 6세기에 바벨론에 볼모가 되어 잡혀가도록 내버려두신 하나님은 애굽에서 야곱의 자손들을 건지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포로 되어 가기 전에 이미 구출 계획을 알리셨던 그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바사 왕 고레스의 손을 펼쳐 해방시키게 하셨다.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스스로 백성들의 여호와 되심이라는 영광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을 아시고 백성들을 다시 찾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의 마음을 녹여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바벨론으로 부터 해방시키셨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조국 땅 이스라엘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파괴되어 버린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셨다. 바야흐로 조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그들의 귀환 목적처럼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잘 알다시피 그들의 성전 재건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실로 여러 형태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명하실 때에 언제나 순탄한 길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는 시시 때때로 어려운 상황들을 직면케 하시고 그 때마다 하나님 중심으로 갈 것인가, 내 중심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깊은 생각을 한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신다. 그 때마다 우리는 자만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절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 손을 높이 들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며 거룩을 드러내야 할 때에 결코 순탄한 길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문제 중 문제는 항상 외부보다 내부 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 운동에 당면하게 된 어려운 문제들이 무엇인가? 당면한 문제는 여러 가지다. 외적인 문제는 물론 외적인 문제가 늘 기다리고 있다. 외적으로 이웃 나라의 방해 공작과 고레스 왕의 전사들이었다. 사마리아를 비롯하여 이스라엘과 인접한 주변 국가의 질투와 대항 세력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고 그처럼 성전 재건에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고레스 왕이 전쟁에 나아가 전사를 하게 된다. 설상가상이다. 그 결과 고레스 왕을 계승한 아하수에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 재건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해 오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부적 문제도 심각하지만 더더욱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내부 문제였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성전 재건 보다 우선 먹고사는 생업이 더 화급하게 되어 버렸다. 가족과 더불어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야 하고 자식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등 이런 저런 핑계로 성전의 주춧돌만 놓고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허송하고 말았다. 이처럼 항상 문제는 직면한다. 그 문제는 외부와 내부 문제이다. 그러나 항상 결정적 문제는 바로 내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세워 그들을 바벨론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너진 에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돌아온 그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열정을 가지고 주춧돌까지 놓았지만 다급한 주위 사정들이 발생하기가 무섭게 이런 이유 저런 사정을 들먹여 가며 성전 건축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의 본래의 뜻마저도 기억하기를 꺼렸다. 육신의 안일함만을 쫓아가 버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우선하지 않고는 너희에게 임한 극단의 상황을 극복할 길이 없음을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선언하신다. 그것은 바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신약의 예수님 말씀과 동일한 원리요 정신이다.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학개서 본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말씀을 살펴보자. 학개서 11절에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하셨다는 말씀이 중복되어 나온다. 이러한 말들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사용하시고 학개를 도구로 삼아서 그 분이 말씀하시고자 의도하고 나타내시고자 하는 바를 전하려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 하신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포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의 존경과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반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보잘것없는 인생임을 자각하고 자기 점검과 자기 겸손을 동반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결과,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 도구인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 포장하고 겸손과 겸허가 결여된 품격이 결여된 지도자가 한국 교계를 진흙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날 시대에도 여전히 학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지금과 같은 진퇴양난의 시기에 이 말씀들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제시임을 깨달아 그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학개서 15절에 하나님은 자신을 만군의 여호와로 계시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는 구약에 약 300회 가량 나타나며 그 중 선지서에 247번 나타난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군대를 지배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솔하시는 하나님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군대로 보셨다.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모든 대적자는 곧 하나님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와 주의 택하신 백성과의 싸움은 바로 하나님의 전쟁이요 하나님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가 되셔서 직접 싸워 주신다는 선포이다. 여호와의 휘장을 높이 들고 백성들의 앞장서 나가시겠다는 선언이다.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여호와의 군대는 반드시, 예외없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학개서 2장 중반에는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라는 구절들이 거의 한 문장에 한번 꼴로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지엄하신 명령이요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항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통솔하는 군대는 군대 자체의 규율이 있으니 그 점을 명심하여 따라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대여! 지휘관이 힘주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전진해야 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특별히 이스라엘 포로 생활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돌아보시는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원수들의 악한 세력을 물리쳐 주시고 하나님의 능하신 팔 아래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임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자기 칭호이시다. 성경에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된 칭호가 3가지가 있다. 여호와,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야훼 쯔바오스(만군의 여호와)이다. 그 중에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포로 생활로 좌절과 낙망과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군의 여호와 되신 하나님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그들에게 소망의 빛을 던져 주고 놀라운 위로를 가져다주는 하나님 스스로의 칭호가 되게 하셨다. 학개서에 14, 스가랴서에 53, 말라기서에 24회 등으로 나타 내시므로 당시 지도 체제가 무너진 포로 생활에 큰 힘과 소망을 던져 주는 여호와의 자기 계시 이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러한 경제 난국, 정치 혼란, 가치 전도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 앙망한다.

 

어서 분발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학개서에는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하여 말씀하신 4편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그 첫번째 설교는 1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이다. 이 말씀의 제목은 '어서 분발하여 다시 시작하라.' 이다. 성전 건축을 우선으로 하라. 멈추었던 성전 재건에 다시 분발하여 박차를 가하라는 말씀이다. 성전 재건 즉 하나님 중심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안녕을 도모하고 분발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돌이키기를 촉구하셨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서 분발하라는 말씀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날을 하나님의 날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자행하며 살아갔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로 통하여, 여러 말씀을 통하여, 여러 채찍을 통하여 경종을 울리고 계신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더욱 완악하고 더욱 패역 해지자 바벨론을 한층 더 강한 징계의 채찍으로 들어 쓰셨던 것이다. 하지만 인생사에서도 매를 든 아미의 심정이 더욱 가슴 아프듯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바사 왕 고레스를 들어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 있는 바벨론을 치게 하사 그들을 조국 땅 예루살렘에까지 인도하신 것이 아니었던가?

 

너희들아, 나의 사랑하는 백성들아 내가 만군의 여호와 되어 너희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너희를 이끌어 내었노라. 이제 돌아가서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여 나 여호와께 예배하고 다시는 옛적에 지은 죄로 돌아가지 말도록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자. 이렇게 놀라운 경륜으로 간섭하셨건만 그들은 성전 재건의 기초석만 놓고 중단한 후 15년을 무관심하게 흘려보내고 말았다.

 

15년 전에 그들은 포로에서 해방된 기쁨, 조국 땅을 되밟는 감격,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외적 원수의 방해와 내적인 성전 재건에 대한 비젼의 약화로 그들은 좌절하고 급기야 성전 건축의 꿈을 포기하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육적인 필요에 의한 것들에만 몰두하게 되어 하나님의 전을 새로 지어 드리는 비젼과 열망은 이제 옛 노래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등장하셨다. 학개를 선지자로 세우셨다. 비젼을 망각해 버리고 열망이 식어져 버린 백성들아, 감긴 눈을 뜨라! 그 냉랭한 가슴에 불을 붙이라! 하셨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호와 제일주의로 살지 않는다면 나 여호와는 너희와 결단코 같이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셨다.

 

성전 건축이 지닌 영적 의미

 

그러면 당시 성전 재건이 왜 그토록 중요했고 오늘날도 성전 재건 곧, 하나님 나라의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왜 그처럼 중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일까? 특별히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신약 시대에 구약 시대의 성전 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성전 건축은 바로 하나님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결집이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께로의 회복이며 하나님께 향한 헌신과 열정의 표시이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의 성전의 성전에 모시는 외적 표현이다. 성전 재건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는 신앙의 고백이다. 선전 재건은 영적 부흥의 열매요 신앙 회복의 결실과 열매였다.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벽돌 성전 자체의 의미보다 온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헌신함이라는 신앙의 고백이다. 육적 성전을 통하여 영적 성전 되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는 놀라운 의미가 동반되어 있다.

 

화려한 백성의 집과 황폐한 하나님의 집

 

성전 건축을 15년이나 중단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12절에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 하였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매우 강력한 경고의 어조이다. 당시 포로 귀환 후에 한재를 만나 생활이 궁핍해졌고 백성들 중에 성전 방해공작을 위하여 뇌물을 받고 (에스라4:5) ‘아직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선동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13, 4절에 보면 이 전이 황무 하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하나님께서 매우 격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함에 있어서는 시기상조다. 재정이 문제다 라고 말하면서 그들 자신은 판벽한 집에 살고 있는 모순된 모습을 하나님은 꾸짖으신다. 여기서 판벽이라는 말의 뜻은 '완전하게 잘 지어지고 다듬어 졌다'는 말씀이다. 히브리 원문에 보면 ', 너희들이여, 이때가 바로 너희들만을 위할 때인가! 이 성전은 황폐화되어 버렸건만 너희는 좋은 집에 거하는 구나!' 라고 강력한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15절에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 행위(소위)를 살펴볼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서론에서 밝히 바와 같이, 네 행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이 2장으로 쓰여진 짧은 학개서에 4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1:5,7;2:15;2:18). 반복은 강조를 뜻한다.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개정성경에는 소위”)자기가 걸어온 일련의 생의 과정과 길을 뜻한다.

 

육신 중심의 삶이 가져다주는 결과

 

16절에 하나님은 하나님 없이 살아온 인생들, 육신 속에 안주했던 미련한 백성들의 결국이 무엇인가를 따지고 계신다. 지난날 너희들은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많이도 뿌려 댔다.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쥐던 설움에 겨워 많이도 먹었다. 작금 한국 사회는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1위라고 할 만큼 술을 마셔 대었고, 몇 일 멀다 할 만큼, 거의 날마다 임금 인상을 위해 노동쟁의를 벌려 많은 삯을 받았지만 지금 너희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렇게 많이 뿌려서 세계적인 한국을 만들었다고 큰소리 쳤지만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 이라고 의기양양했건만 우리는 지난 날 IMF을 맞아 30년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쇠고기국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 국민의 하루 고기 소비가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을 만큼 먹어대더니 이제는 결식 아동수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모두들 많은 임금을 받아 넉넉한 아파트를 장만하고 집들이를 근사하게 했었지만 이제는 수천의 가장들이 그렇게 살뜰하게 장만한 집에서 잠들지 못하고 홈 리스족이 되어 길거리를 떠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육신 중심의 너희 삶이 가져다 준 결과가 무엇이냐? 너희는 지금 배부른가? 따뜻한가? 오히려 남은 것이 있는가?

 

110절에 너희를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라는 말씀이 있다. 이슬이 그치고 그로 인해 산물이 그치는 불경기가 찾아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너희를 인함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거할 곳이 없어서 궁색해서 하나님의 성전 역사를 계속할 수 없음이 아니라 성전 건축을 향한 진실된 열망이 없어 그저 사람 중심으로 살기 원하는 너희들의 마음 중심 때문에 산물이 그치고 결핍이 엄습했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바로 우리 때문이다. 백성이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정치보다는 정치하는 사람이, 경제보다는 경제 하는 사람이, 앞장선 사람과 따라가는 사람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적 상황을 해결하고 온갖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접근법과 해결법이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남김없이 들어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 없는 삶을 불어 버리시는 하나님

 

19내가 불어 버렸느니라11절에 내가 한재를 불러...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217절에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으로 쳤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는 인간의 노력과 애씀으로 피폐해진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적나라한 모습, 건강과, 사업이, 국가가 하나님이 세찬 입김 앞에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지금 우리는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2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물질을 원하는가? 하나님은 학개 선지를 통해 말씀하신다. 물질은 다 내 것이다. 내가 주기도 하고 거두기도 할 것이다. 물질을 축복으로 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내 뜻에 복종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줄 것이다. 또한 나 여호와를 위해 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시편 127편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 바란다.

 

오늘부터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215절에는 이제 청컨데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전이 파괴되어 예배할 수 없었던 때를 추억하라는 말씀하고 있다. 외부적 여건 때문에 그리고 내부적 여건의 중함 때문에 성전의 기초석만 놓고 더이상의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던 때를 추억하라는 말씀이다. 영적 각성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즉시로 이루어질 수도 있었음에도 16년이라는 세월을 허송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을 제발 좀 떠올려서 삶에 적용시키기 바란다는 말씀이다. 우리 한국 기독교가 선교 100년사를 가지고 있다. 애초에 우리에게 의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나? 우리야말로 기초석만 놓은 채 중지하고 덮어두고 방관만 하며 먹고 마시는 일로 기회를 상실하고 육신적 축복에만 매달려 있지 않았는가? 오늘부터 우리의 어제를 추억하여 보아야 한다.

 

218절에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고 학개 선지자는 말한다. 일의 시작, 그 처음을 추억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귀한 은사이다. 돌아온 그들은 희망과 소망에 부풀어 있었다. 구월 이십 사일 여호의 전 지대를 쌓던 날에는 제사장들이 예복을 입고 나팔을 불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렸다. 백성들은 너무 감격하여 통곡하기도 하였다(3:13) 다시 한번 그때의 흥분과 열심으로 돌아가자. 그 때 포로 되었던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로부터 건져 올리신 여호와를 기억해 내고 하나님의 의도하심에 순종하라고 학개는 호소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오늘부터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219절에는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씌여 있다. 백성들아 너희가 내게로부터 등을 돌리면 그 때부터 나도 너희에게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너희가 나 여호와 하나님께 무관심하게 되면 너희 스스로에게 무관심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전을 재건할 마음이 생겼으니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마 하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부터라 함은 그들이 15년 동안 중단했던 하나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할 때부터이다.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 간다는 말이다. 다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다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내리시는 복을 받기 위하여 오늘 우리가 결단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정리해 보자 이는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라는 구절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18절에는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행할 인생들의 사역을 말하시는 데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모두 자신의 소욕만을 위하는 백성들임을 경계하시고 정결하고 온전한 영성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땅에서 추구하던 것들의 찌꺼기가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애쓰고 힘써서 산위에 올라야만 가져올 수 있을 만큼의 정결하고 성결된 것, 시내산에서 영광 중에 임재 하시며, 거룩한 율법을 주신 바 됨같이 바로 그 거룩한 산에 올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지극한 영적 회복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리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영광을 얻겠다는 말씀이시다.

 

113절에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하시겠노라고 선언하시고 그 백성들의 의식을 고취시켜 그들이 순종하고 완전 굴복할 때에 함께하사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게 하심을 볼 때 이는 분명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라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의지 표명이 아닐 수 없다. 24절로 부터는 하나님의 격려와 축복과 약속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전하고 있다. 여호와가 말하노니 스스로 굳게 할지어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 지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 옛날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던 여호수아에게 허락하셨던 말씀으로 지금도 그 말씀과 동일하신 격려의 말씀을 두번이나 반복하심으로 내가 너희와 함께하니 염려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확고한 말씀이 있을 수 있으랴!

 

더 나아가 5절에는 지금도 모든 백성들이 기억하고 있는 애굽 에서의 대 탈출 때를 상기시키시며 그 때 그 백성을 보호하던 나 여호와의 신이 너희 중에 머물러 있다고 두려워 말라고 당부하신다. 당시 히브리 백성들을 고난과 압제 속에서도 건재하게 했던 유일한 의식이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를 앙망하는 믿음뿐이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 말씀이 가지는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포로 생활, 눈물, 고난, 핍박으로 노심초사할 때 얼마나 빌고 찾았던 엑소더스의 여호와 하나님이었던가? 이제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동행 동재의 선언이 고통 중에서도 다시금 성전 재건을 결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리 위에 임한 것을 보라!

 

또한 269절에는 과거에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자들이 지금의 열악한 환경에서 지어져 갈 새 성전이 인간적 시각으로 볼 때 모양이 없고 다소 초라하고 규모도 작았지만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는 것을 들으시고 새로이 지어지는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며 또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을 충만케 하리라하시며 이 전의 영광이 이전 영광 보다 크리라는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희망과 소망의 말씀을 주시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 속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받고 지난 날 내 소위를 살펴보아 지극한 회개와 완전한 굴복으로 엎드리되 영적 쇄신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우선되어 하나님 앞에 합한 자가 될 때 하나님의 은총의 단비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성경의 원리는 항상 똑같다. 그것이 신명기의 언약이며, 선지서의 메시지이다. 불순종은 고통, 회개는 새역사의 시작이다는 원리이다. 성도들의 축복과 저주의 원리는 단순 영적 공식이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 속에서 늘 끊임없이 방황하고 시행착오 한다. 그것이 출애굽 광야 역사이며, 바벨론 유수의 역사가 아닌가? 순종은 행복의 길, 불순종은 불행의 길이다. 이 두 길이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늘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령 충만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학개서를 통해 우리는 회복의 원리, 형통의 원리에 대하여 깨우침을 받았다. 자신의 행위를 살피면서 스스로 각성하며 오늘 복을 내리시는 원리를 따라 순종하며 살자.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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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1 [22:3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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