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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8.25 [07:01]
[예수칼럼] 예수님의 전도법
다시 읽는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김준곤


현대에는 브로커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 짓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에서 요령껏 재주 있게 돈을 착취해 먹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도박하는 것처럼 취급합니다. 물론 브로커라는 직업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광의로 해석하자면 브로커는 아주 범위가 넓습니다. 정치 브로커, 경제 브로커, 부동산 브로커 등등 아주 넓습니다. 별 것이 다 있습니다. 밤거리에 가보면 창녀들과 탕아들을 붙여 주는 그런 브로커도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령 약소국가들이 프랑스나 영국이나 미국에다가 정치 흥정을 하러 가려고 하면 그 중간에 정치 브로커, 국제 브로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브로커는 이해할 수 있지만 기독교에도 브로커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브로커냐 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서 부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서 성공을 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서 공부도 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서 높은 자리에 앉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서 부당한 수입을 얻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신적으로 존경을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남을 억압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를 방어하고,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 숨고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서 안전을 누리고 그리스도에게 피해서 자기를 방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남에게 총 뿌리를 들이대는 브로커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브로커가 있습니다.


구변이라든가 어리석은 비교 문학이라든가 세상적으로 볼 때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가지고 피 흘려 죽은 예수님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수단과 기만한 태도를 가지고 기독교를 과시하고 기독교를 위세 당당하게 선전하는 것도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이상한 감정과 흥분을 일으키게 하고 눈물이나 짜내게 해서 예수님을 전하게 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살리기 위해서 그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으나 자기를 위해서는 기적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굶주려야 했습니다. 그는 모든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깊고 큰 죽음을 맛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간단하지만 주님의 죽음이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 죽음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위에서 맛보셨습니다.

그는 학문의 학위라든가 웅변이나 종교의 외모나 누구의 인정을 받을 증명서나 교파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무능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진리를 전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일부러 무능했어야 했습니다. 일부러 약한 자의 입장을 취했어야 했습니다. 한없이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외로운 사람이 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 선교를 실천한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한국 기독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된 신앙인인 저자의 선지자적 영감과 시적 감성으로 쓰인 잠언록이다. 민족과 역사,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외침을 담아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우리 영혼을 전율시킨다. 출간 이후 최장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써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칼럼>은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되며, 특히 문체의 간결성과 심오한 기독교 사상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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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2 [07:1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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