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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5 [13:01]
낙도에 보내진 ‘희망’이라는 병원선(1)
성서 도자기 서예가 정문철 목사
 
정문철
▲ 정문철 목사     ©

성서 도자기로 이룬 복음화의 꿈

낙도, 그곳은 내가 난 땅이다. 나의 뿌리다. 나의 부모요, 나의 형제 자매다. 하나님은 나를 낙도(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에 불러주셨다. 낙도는 한 섬의 이름이 아니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38년전의 일이다. 지난 19811월 미국의 베델대학의 초청으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조용기 목사의 부흥집회 중 나에게 간증을 하라는 요청에 쩔쩔 맸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나는 이렇게 고백했었다.

 

저는 세계지도에는 나타나 있지도 않는 한국의 남단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 주셨는데, 그 부르심에 대한 배후에는 여러분들이 100년 전 한국 땅에 전해준 복음(福音)이 단초가 됐다. 나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구원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도자기 항아리에 담아서 이렇게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라고 고백 했었다. 그 감동적인 간증 이후 38년이 흐른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도자기 순회 전시회를 통해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익금의 대부분을 낙도선교와 농어산촌 선교비로 지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낙도선교 그 생생한 사역 현장

낙도선교는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야 했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던 외딴 섬에는 발전기를 보내서 예배 처소에 전기를 켜야 했고, 우물이 없는 곳에는 주저함 없이 우물을 파야 했다. 사실이지 섬에 우물을 파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가뭄이 심할 때는 우물의 근원이 거의 다 말라버린다. 그런 참담한 상황가운데 망연자실해 할 때 뜻밖에도 낙도 같은 섬까지 물을 싣고 가서 물 배급을 해주는 고마운 대한민국 해군들을 만날 때의 감동과 감격은 언제 생각해도 새롭다. 결국 그 물에 힘을 얻어서 다시 우물을 팠고, 준비해간 전문설비들을 동원해 땅을 파고 들어가면 노다지 같은 물길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때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큰소리로 기도를 하고 우물을 팠을 때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듯 기적의 샘물이 쏟아져 올라올 때도 있었다.

신안군 도초도에서 우물을 팠을 때의 일이다. 교회 부근에서는 도저히 물길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실패한 끝에 목포로 나가 특수 장비를 동원해야 했고, 땅속 깊은 곳의 바위를 뚫었을 때에 우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때 그 순간의 감동은 뭐라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반석을 뚫고 나온 우물은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흥분과 감동은 아직도 나를 움직이는 힘이다.

 

모세의 기적, 기적의 샘에서 흘렸던 눈물

전남 신안군 안좌도 박지라는 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섬에는 원한에 사무친 노드가 있었다. 그 섬을 방문했을 때 한 중년 부인이 일행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섬에 놓여있는 노드(건널목-돌다리)를 가리키며 자신의 아들 얘기를 꺼냈다. 자기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을 다녔는데 작년 겨울(1980) 학교에서 돌아오다 그 노드에 물이 차있는 밤에 돌다리를 찾지를 못해 그만 빠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 돌다리만 보면 가슴에 숨이 차서 끊어질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곳에 돌다리 대신 둑을 쌓아달라고 했다. 참으로 원한에 사무친 돌다리였기에 우리는 그곳에 돌다리 대신 둑을 쌓기 시작했다. 공사를 하는 내내 아들의 엄마는 우리와 함께 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죽은 소년의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둑길을 밟지도 못하고 가버렸네요...” 한참 후 그래도 지금쯤 하늘에서 이 곳을 보고 있을 것이에요....” 기다란 둑길 가득 바닷물이 차올랐다. 오래도록 바다를 주시하던 그 엄마의 시선 끝에 아들은 웃고 있었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 전)전남도민일보 기자/ 전)전남매일신문 도시재생 칼럼니스트/ 의학박사(수료), 대체의학석사, 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 현)조선간호대학교 겸임교수/ 전)조선대학교 초빙교수/ 현)광주복지재단 강사/ 2013 농촌봉사대상 개인 국무총리상/ 2017 자원봉사부분 단체 대통령상/ 2018 농촌봉사 단체 농축산식품부장관상 / 2013, 2014, 2015 전라남도 도지사 표창 /2014,2017 담양군 표창/ 2014 광주 동구 표창/ 2015 화순군 표창/ 2016 장흥군 표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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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8 [23:4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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