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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3.26 [03:01]
[김준곤 설교] 내적 자유의 원천은 영적인 것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요한복음 8:44

자유의 두 가지 개념
  자유의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밖으로부터의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안에서부터의 속박과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전자는 정치적, 경제적인 사회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곧 평등을 생각하게 하는데 반하여, 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윤리적, 정신적, 영적, 내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자유와 해방 운동
  인간은 역사의 첫 장에서부터 그를 억누르고 위협하고 해치는 적과 부단히 싸워 왔습니다. 그래서 인류사를 자유와 해방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고대에는 많은 국가의 국민들이 전제 국가의 군주 밑에서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군주 한 사람만 자유스러웠을 뿐 수하의 사람은 종의 신분을 면치 못했습니다. 또한 봉건 사회에서는 여자는 남자에게 예속된 소유물처럼 취급당하던 일이 허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특수 귀족 계금이나 돈 많은 자들에게 부당하게 착취만 당해 온 고르지 못한 현상이 아직도 지상에는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근대 시민 사회는 이러한 고르지 못한 현상과 대적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근대 민주적, 자유주의적인 모든 국가에서는 헌법으로 이 인간의 기본 권리가 보장되어 있어 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 강제 노역 등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체의 자유라고 하는 인간 자유의 근본적 인 것 입니다. 그밖에도 통신의 자유, 주거 침입을 받지 않는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출판과 집회, 결사의 자유, 국민의 의사에 따라 원하는 정부를 세울 수 있는 정치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가장 기본적인 자유에 속하는 사유 재산권의 자유와 양심대로 행동하는 자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자유 등이 기본법으로 강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 국가나 공산국가에서는 이러한 기본 자유가 극도로 위협을 받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완전히 박탈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개인의 자유란 신성불가침의 것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법칙이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타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만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한 결과 인간은 자유로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자유와 인격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로써 영원히 머물고 돼지는 자기 결정에 의하여 돼지 아닌 것으로 탈피할 수가 없으나, 인간만은 타락해서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천사보다 거룩한 성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즉 인간만은 자유로 선택할 영역이 크고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성한 자유가 그 무엇에 의하여 제한, 압박, 구속받았을 때 자유의 투사들은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인간이 싸워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해방과 자유의 대상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아직도 사람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아 가고 있는 암과 같은 질병과 무지에서도 해방 받아야 하겠습니다. 자연의 횡포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진이나 해일이나 폭풍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미신에서도 벗어나야겠습니다. 점쟁이의 권유로 사랑하는 애인을 버리고, 심지어는 무당의 말을 믿고 동리 어린 아이를 살해한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3만 명의 미신업자가 간판을 걸고 있고 미신과 운명과 귀신(鬼神) 의식이 우리의 생활 속에 놀랄 만큼 넓고 깊이 파고 들어와 있습니다.

▲ 김준곤 목사 흑백사진     ©뉴스파워

보다 큰 보이지 않는 자유의 적
  인간의 자유의 적은 보다 깊은 곳에 존재합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무한히 자유롭고 풍요한 사회에서 최고의 학문을 닦는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정신 분열증에 결리며 귀신 들린 사람처럼 무엇에겐가 쫓기고 미움과 불안과 절망과 피와 허무와 죽음 속에서 서서히 정신적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이 운명처럼, 악령처럼, 사람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독일 민족은 2차 대전 때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했고, 핵무기를 발견한 인류는 아직도 전쟁을 방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선을 원하는 마음은 있으나 내 속의 다른 죄의 법이 악을 행하게 하는도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롬 7:4)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죄의 멍에를 벗은 것입 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노예이며’(요 8:3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니라’ (요 8:44),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6)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라고 부활과 영생의 예수 안에서 죽음을 극복한 개가를 부릅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망령처럼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살당할 밧줄이 이미 목에 결려 있는 사형수와 마찬가지로 일생 의 길고도 고달픈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정신적 허무가 안개처럼 우리네의 정신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외적 구속에서 벗어났을 때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더 큰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공(架空)의 세력 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류의 체험 가운데 소중한 것 하나는, 참 자유는 예수 안에 있다는 성자들의 증언입니다. 이것은 통계학적 사실이며 그 증인과 증거는 너무도 참되고 많습니다. 기차는 레일 위에서만 자유로이 달리고, 어린 아이는 엄마 품에서만 자유로우며, 여인들의 사랑은 남자의 품에서만 생생할 수 있듯이,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자유
  현대인이 인류 실존의 전 영역에서 체험하는 것은 그 정체불명의 구속과 억압에서 그 무엇에로의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 고로 성실한 인간이라면 정치, 경제, 사회적, 외적 구속에서의 해방뿐 아니라 실존적 이고 내적인 자유의 과제를 3·1 운동이나 4·19 운동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의 지옥이며 흑과 백의 비극을 빚고 있음은 물론 자신 속에 자신의 주소가 없는 이방인이며 부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하나님과 허무 사이에서 발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덕과 법률과 권위와 관습과 부모와 가정과 질서에서 일체 해방 받고자 탈출하여 항쟁해 보았으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무주의적 발광, 공산주의적 발광(러시아 공산주의 도래를 예언) 아니면 〈악령〉(그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유라는 모(某) 노래 주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허무와 하나님 이라는 양극에 놓인 자유의 길입니다. 그렇게 고찰할 때, 참 자유란 자유의 주인을 찾을 때만 소유가 가능한 것입니다. 도덕법이라도 법이란 것은 인격을 구속하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의 최대의 실재 경험은 ‘율법은 사망의 법’(롬 7장)이라는 것이며, 그 법에서의 자유와 해방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롬8:2)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의 거라사인은 더럽고 사나운 귀신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살고 밤낮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기 몸을 돌로 상하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현대 자유인의 모습 입니다. 히피와 섹스 귀신은 더러운 귀신이고 사나운 귀신은 공산당 귀신입니다. 지심 지수, 풍요 지수, 문명 지수, 쾌락 지수, 과학 지수, 권력 지수, 자유 지수가 높을수록 허무 지수, 자살 지수, 중독 지수, 발광 지수가 높아집니다. 현대인의 반항과 고발은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된 후에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나아 갈 길은 자살하든가 미치든가”라고 지적한 라스코리니코프의 말은 현대 지성인의 심각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원천은 영적인 것입니다. 악령이냐 성령 충만이냐의 양자 택일이 우리 모두가 처한 운명이라는 점을 순교라도 하면서 증언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72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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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9 [06:2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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