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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6 [01:01]
[강민수 목사 칼럼] 사랑과 용서는 여인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광주 번성교회 강민수 목사
 
강민수

공격받을 때 직접 부딪치지 않으시고 양심에 호소하셨다.

여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위험까지도 감수하셨습니다.

이웃을 위해 내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실천이 필요하다.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5-11)

 

▲ 강민수 목사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의 흠을 잡기 위해 예수님께 판결을 구합니다. 만일 그 여인을 놓아주라고 하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긴 죄로 고발당할 것이고,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사랑을 외치시던 예수님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백성들의 외면을 받으실 처지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의 인격과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먼저 양심에 호소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대답을 재촉하자 예수님은 두 차례나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6, 8). 무엇을 쓰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기세등등한 그들의 죄목을 적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일어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 그러자 젊은이와 어른들까지 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물러갔습니다. 우리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논리적으로 대응하거나 감정적으로 받아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직접 부딪치지 않으시고 양심에 호소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신 부분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행이 죄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죄가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게 됩니다. 상대의 행동만 가지고 말해야 하는데 상대방의 인격이나 존재 자체까지 공격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은 사랑하되 죄만 미워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과거보다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남을 용서할 줄 모릅니까? 그 사람의 과거만 보고 미래를 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그 여인의 과거만 보고 정죄했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미래를 보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

 

독자 여러분! 우리에게는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당장 돌로 쳐 죽이는 것보다 회개하고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과거나 정죄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십니까? 아니면 그의 회개와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한번쯤 깊이 있는 생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이 여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위험까지도 감수하셨습니다. 용서 없이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는 여인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주님의 귀한 사랑에 감동되어 그녀의 가슴이 뜨거워졌을 때, 비로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고 힘차게 전진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다시한번 기도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로마서 8:29, 골로세서 1:15),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빌립보서 2:5)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생각하며 이웃을 대할 때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없는가? 그리고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은 없는가? 또한 이웃을 위해 내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순종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뉴스파워 광주전남 주재기자/ 전)전남도민일보 기자/ 전)전남매일신문 도시재생 칼럼니스트/ 의학박사(수료), 대체의학석사, 경영학석사/시인(광주문협/문학춘추)/ 현)조선간호대학교 겸임교수/ 전)조선대학교 초빙교수/ 현)광주복지재단 강사/ 2013 농촌봉사대상 개인 국무총리상/ 2017 자원봉사부분 단체 대통령상/ 2018 농촌봉사 단체 농축산식품부장관상 / 2013, 2014, 2015 전라남도 도지사 표창 /2014,2017 담양군 표창/ 2014 광주 동구 표창/ 2015 화순군 표창/ 2016 장흥군 표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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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06 [21:2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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