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2.15 [22:25]
나그네 영성으로 살았는가?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정준모
▲ 2018년도를 보내고 2019년도 새해를 바라보면서 © 뉴스파워 정준모

2018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나그네 영성으로 살았는가?

 

정준모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벧전 2: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NIV) [11] Dear friends, I urge you, as aliens and strangers in the world, to abstain from sinful desires, which war against your soul. [12] Live such good lives among the pagans that, though they accuse you of doing wrong,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glorify God on the day he visits us. [13] Submit yourselves for the Lord's sake to every authority instituted among men: whether to the king, as the supreme authority, [14] or to governors, who are sent by him to punish those who do wrong and to commend those who do right. [15] For it is God's will that by doing good you should silence the ignorant talk of foolish men. [16] Live as free men, but do not use your freedom as a cover-up for evil; live as servants of God. [17] Show proper respect to everyone: Love the brotherhood of believers, fear God, honor the king. [18] Slaves, submit yourselves to your masters with all respect, not only to those who are good and considerate, but also to those who are harsh.[19] For it is commendable if a man bears up under the pain of unjust suffering because he is conscious of God. [20] But how is it to your credit if you receive a beating for doing wrong and endure it? But if you suffer for doing good and you endure it, this is commendable before God. [21] To this you were called, because Christ suffered for you, leaving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follow in his steps. [22] "He committed no sin, and no deceit was found in his mouth." [23] When they hurled their insults at him, he did not retaliate; when he suffered, he made no threats. Instead, he entrusted himself to him who judges justly. [24] He himself bore our sins in his body on the tree, so that we might die to sins and live for righteousness; 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25] For you were like sheep going astray, but now you have returned to the Shepherd and Overseer of your souls.

  

시작하는 말) 다사다난했던 2018년도 마지막 주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처음이나 영원히 마지막 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2018년도는 이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 흘러간 세월, 영원한 과거가 될 것입니다. 옛 말에 세월의 무상함을 세 가지에 비유하였습니다. 내어 밷은 말, 쏘아놓은 화살, 흘러간 세월을 돌이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흘러가는 속도도 참으로 시속 20킬로미터로 달렸던 청년기 시절을 지나, 이제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려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가 갈 시간이 훨씬 적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주의 말씀이 단순히 시간절약 차원이 아닌 시간가치를 생각할 때, 부끄럽고 아쉽기만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맡겨주신 기회를 평가하실 때가 점점 더 가까이 임함을 실감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종말과 우주적 종말의 때를 깊히 묵상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남긴 유일한 서신서입니다. 사도 베드로 그는 어떤 인물입니까? 비린 내 나는 고기로 생활을 연명해 갔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낚는 어부로 고귀한 부르심을 받고, 3년간 주님과 가까이 동거동락하며 일대일 제자훈련을 받고, 수제자로 영예를 얻는 자가 아닙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만큼, 주님에 대한 바른 믿음과 바른 고백을 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 닭이 울기전에, 자신의 생명이 두려운 나머지 3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연약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나셔서, 애환의 장소, 주님을 처음 만났던 첫 부르심의 바닷가에서, 지친 베드로에게 따뜻한 조반을 먹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사랑의 메아리로 새 사명, 새 능력, 새 비전을 얻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가 네로의 대 박해의 순교를 앞두고 주님의 영감을 받아 본 서신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대 박해 가운데 믿음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이방 땅으로 흩어진 성도, 디아스포라에게 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오늘 2장에 나타난 몇 가지 단어에 포커스를 맞추어 말씀을 증거하려 합니다. 11절에 거류민”, “나그네와 행인”, “육체의 정욕”, 12행실”, 16하나님 종”, 21고난중심으로 말씀을 증거하려 합니다.

 

1. 2018년도 한 해를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갔는가를 자성해봅시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을 통하여, 성도들, 우리 자신들에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밝히고 있습니까?우리 자신에 대하여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린다면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11절에 우리는 거류민나그네입니다. 어떤 번역본에는 나그네행인입니다. “길손이라는 뜻입니다. NIV 성경에는 “stranger”라고 했습니다. “낯선 사람”, “이상한 사람”, “본토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차별된 사람, strangers, temporary Residents, foreiners, aliens, pilgrims들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삶의 가치, 삶의 원리, 삶의 목적이 전혀 다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몬타나 주에 여행을 간적이 있습니다. 큰 호수가에 위치한 어떤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데, 분위기가 매우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식당에 앉아있는 손님들 뿐만 아니라, 거기서 일하는 종업원들까지 우리 가족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직 백인 중심으로 사는 시골 마을에서는 동양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가족들은 여행객이었고, 지나가는 나그네로서 그들과 전혀 다른 인종이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그들의 목적, 그들의 가치, 그들의 행동방식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람, 수군수군 거림을 받는 사람, 예수에 미친 사람, 선교에 혼이 빠진 사람들, 기도밖에 모르는 사람, 세상 재미도 모르는 사람, 교회밖에 모르는 사람, 바보같이 살아가는 사람 등 등 그들에게는 이상한 사람들, 스트렌져들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의 풍조를 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의 행보에 맞추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기꺼히 죽는 복음 나그네, 선교 나구네, 십자가와 부활의 나그네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를 본향 삼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령한 것에 생명을 바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거룩한 순례자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성도는 나그네 영성, 나그네 인생철학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명, 우리의 물질,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시간 그 모두가 이 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에 있습니다.

 

어떤 지혜자의 말처럼 인생은 먼 다리를 건너가는 것입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먼 다리는 건너는 나그네 성도, 나그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다리 위해 집을 짓지 않고, 다리를 건너갈 뿐입니다. 건너가면 그만인 다리 위에 인생의 집을 짓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무너질 다리, 무너지는 모래 위에 우리의 인생을 건축하고 인생의 깃대를 꽂지 않을 겁니다.

 

저는 지난 날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저의 남은 인생 후반기를 생각하면서 많은 고뇌와 번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아하, 내 계획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분명한 사실이 있구나”. 결국은 하나님 앞에 서는 종말의 그 날이 나의 최종 정착지, 최종 목표이구나, 매우 당연한 생각이지만, 늘 착각하고 늘 망각하고, 늘 놓치고 살아가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 나그네 인생길의 마지막 종착역이라 종말의식”, “신전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의 가치, 삶의 자세, 삶의 목표가 확연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나그네 영성을 가질 때, 우리의 삶은 매우 단순해 질 것입니다. 세상일에 욕심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염려가 살아질 것입니다. 세상의 희비애락에 초연해 질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의 있음과 없음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몰두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올인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것입니다.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려놓고 더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2018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는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인식할 때입니다. 그 정체성에 따른 나의 삶을 재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한 해를 보내고, 2019년 새해를 앞두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 우리는 나그네”, “행인”, “길손”, “스트랜져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길 살아가는 우리가 올해 한 해 동안도 결코 짓지 않았어야할 이 땅의 다리위에 인생의 집을 짓지 않았는가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2. 2018년 한 해 동안 얼마나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는가를 점검해 봅시다.

 

성도는 주의 보다, 선행보다, 훌륭한 일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자기와 싸움입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Dear friends, I urge you, as aliens and strangers in the world, to abstain from sinful desires, which war against your soul)

 

베드로 사도는 나그네는 먼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거리려 싸우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방해하고, 영적인 큰 방해가되고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육체의 정욕은 여러 영어번역본 성경을 보면 worldly desires, fleshly lusts, sinful desire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나그네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순위의 질서를 생명같이 지켜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무너지거나 혼란이 오면 영적 생활에 실패자가 됩니다.

 

나그네 인생길을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우선순위 설정, 우선순위 삶이 중요합니다. 어떤 우선순위를 말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자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는 큰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모범적 교회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성도가 되었느냐가 본질입니다. 선교를 얼마나 많이, 크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으로 선교를 하느냐가 더 중시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world christian이 되어야지 worldly christian이 되지 말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목회, 선교한다고 하면서 worldly desires, fleshly lusts, sinful desires를 철저히 버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난 날 목회생활을 돌이켜 볼 때, 주님의 말씀 앞에 부끄럽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기 양심적 가책도 느낍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회복을 주셨습니다.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야할 성도들, 교회의 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훌륭한 목회, 선교 업적, 뉴스거리가 되는 놀라운 사역, 자랑하고 싶은 목회, 선교 스팩들인가요? 물론 그런 놀라운 열매, 놀라운 현장, 놀라운 헌신도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은 본질을 보십니다. 주님은 거룩을 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느냐 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십니다. 주님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 어떤 사역을 하는 것보다 우선 순위요, 본질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육신의 정욕이란 무엇입니까? 육체의 악한 소욕에 일어나는 육욕, 식욕, 물욕, 명예욕, 권세욕 등등입니다. 이러한 소욕은 영혼을 거스립니다. 이러한 소욕은 성령을 거스립니다. 이러한 소욕은 성령을 근심케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보다 거룩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을 깨끗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거룩한 자를 귀하시 사용하시고 유용하게 사용하시고 오래도록 사용하십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 선교사도, 성도도, 사역자도 금그룻, 은그릇, 흙그릇 처럼, 위치, 은사, 능력, 분량, 역량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러운 금수저보더 깨끗한 흙수저를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3가지에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의 위치, 소유, 환경에 대하여 주님의 주권 앞에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과 비교해서 우월의식도 열등의식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다만 우리 위치, 소유, 환경에서 감사하고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거룩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더욱 귀한 사역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눈에 보이게 크게 보이는 놀라운 목회, 선교의 결과가 육체의 욕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목회, 선교라는 거룩한 목적에 우리의 육체적 소욕, 세상적 욕망, 인간적이 명예에 오염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큰 건물, 큰 성도수, 박사학위, 물질욕망, 이성유혹, 자기 기업화, 자신 명예화 등으로부터 초연해지길 앙망합니다. 날마다 자신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밖은 자기 죽음으로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3. 2018년도 한 해 동안 선한 행실로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았는지 돌이켜 봅시다,

 

성도의 삶, 목회와 선교의 중심은 선한 행실입니다. 성도들의 선한 행실로 선교의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의 일을 위해 복음전도와 세계 선교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의 사역에 돈, 물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선한 행실입니다. 선한 행실이 빠진 목회와 선교는 결국 무익하고 무실,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사역이 됩니다. 선한 행실이 빠진 어떤 사역도 벌레먹은 과일처럼 무익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은 성도들과 교회는 세상에서, 선교사들는 선교지에서 선한 행실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들의 선한 행실은 이방인들, 불신자들, 전도 및 선교대상자들을 주님께로 이끌어줄 강력한 힘이며 무기입니다.

 

사역에 있어서 말이 중요합니다. 말의 능력은 대단한 합니다. 그러나 립서비스로 끝날 수 있습니다. 사역에 돈도 더욱 중요합니다. 돈으로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할 수 없는 한계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 나라 확장 사역에 있어서 말보다, 돈보다 더 놀랍고,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역자의 행실, 선한 행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불신자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말보다, 돈보다 더 놀라운 감동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그리스도인들의, 선교사들의 선한 행실입니다. 사역자들의 선한 행실이 그들의 마음속에 진한 감동, 잊을 수 없은 감화력으로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역지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선한 행실 없는 복음전도와 메시지와 선교지에 투자되는 물질은 영혼구령의 열매보다 손가락질을 받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선한 행실은 바로 사역지를 밝히는 빛이요,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힘이 될 것입니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2017-2018년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의 자화상은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의 정신을 더욱 계승하고 빛을 밝혀야할 그 엄청난 기념해에 한국교회 100년사에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자태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세속 메스콤에서 조차 검색 1위가 되어 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봅니다. 사회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이 걱정하고 염려하고 판단하는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회가, 세상 법정이 교회를 간섭하지 말라고 정교분리 원칙을 말합니다. 기본적 원리는 전적 동의합니다. 그러나 교회내 에서 서로가 첨예한 주장을 하고, 교회 내에서 서로가 자신의 모순과 불법을 인식하고 결과에 순복하지 못하니, 세상 법정의 판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법정이 교회를 간접하고 교회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 객관적 올바른 판단하지 못하니 세상 재판관이 어떤 쪽에서 주장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판단을 받게 되는 수치를 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 그 피눈물나는 헌금이 하나님도 모르는 세상 법조인들의 중요한 수입 근거가 되는 수치수런 비극,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이가봇을 보게 됩니다. 선지학교라고 일컫는 거룩한 복음의 전당의 콘드롤 타워에 세상에서 파송되는 이사들로 총장을 파면하거나 임명을 하고, 교수들을 징계하고, 교수들과 학생들이 교단 신학교을 이끌어갈 함장 자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모습 볼 때, 마음이 찢어지고 통탄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그 중심에 나그네 영성보다, 부자 영성, 물질 영성, 세속화 영성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높이기보다 인간 목사가 영광을 받습니다. 예수님 보다 강단에 서있는 교회 지도자가 다 영광을 받습니다. 교회 예산이 목사 이름 내고, 세상에서 트로피 받은 일에 다 소비되어집니다. 여기에 기독언론이라고 자부하는 언론사까지 합세하여 무엇이 바른 정보이고 판단인지 혼미케 만들고, 하나님의 질서와 공의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교계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수많은 모임, 연대,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맘모니즘의 교권에 시녀 노릇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마치 이 시대가 아모스 시대처럼 하나님의 공의가 흐리지 않고 있습니다. 맘몬의 큰 우상 앞에 절하는 서글픈 현상을 보게 됩니다. 재정능력이 있는 교회, 목회자들의 큰 바벨탑 아래 들러리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4. 2018년도 한 해 동안 복음을 위한 종의 삶을 살았는지 각성해 봅시다.

 

16절에 말씀하시길,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하고, 영혼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나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 만나기 전, 우리의 지난 BC는 죄와 율법과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자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악을 행하는 것에는 자유하지 않으나 선을 행하는 데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복음의 종으로, 선교의 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위해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사역자들의 마음 중심에는 항상 주인의식을 버리고 청지지기 의식, 하나님께서 맡긴 영혼을 섬기는 종의식을 가져야 거룩한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고 김정준 목사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불쌍한 영혼을 돌보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가 남긴 한 편의 시를 보면 그의 고귀한 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죽는 날>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 이르리니 찬송을 불러주오

또 요한계시록 20장이하 끝까지 읽어주오

그리고 나의 묘패에 이것을 새겨주오

임마누엘 단 한 마디만을!

 

내가 죽는 날에는 비가와도 좋다.

그것은 나의 죽음을 상징하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맞는 감격의 눈물인 까닭이다.

 

내가 죽는 날에는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은 나의 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없이 하고

하늘 나라로 올라가는 내길을 준비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는 날에는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치어도 좋다.

그것은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긴 얼굴 광채를 보여줌이라.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 되어도 좋다.

캄캄한 하늘이 나의 죽음이라면

저기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나의 눈동자이어라.

 

내가 죽는날

나를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부르시는 날

나는 이날이 오기를 기다리노라.

다만 주님의 뜻이라면

이 순간에라도 닥쳐오기를 번개와 같이 닥쳐와

번개와 함께 사라지기를....

 

그 다음은 내게 묻지 말아다오

내가 옮겨진 그 나라에서만

내 소식 알 수 있을 터이니

내 얼굴 볼 수 있을 터이니!

 

우리 자신의 생명을 붙잡고 계신 주님 앞에서,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약속을 붙잡고, 하루하루 나그네 영성을 가지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으로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5. 2018년 한 해 동안의 고난과 헌신은 장차 영원히 빛날 상급임을 확신합시다.

 

본문은 로마 시대의 제도적 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에서 있어서 우리는 모두 종입니다. 복음안에서 종의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품삯정도의 종이 아니라 몸종, 철저한 종이 되었습니다. 종은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몸값은 산 주인을 위해 분신처럼 사는 자입니다. 19절 말씀처럼 종은 때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습니다. 인격적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20절 말씀처럼 종은 선을 행하였지만 고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종, 선교의 종으로 살면서 부당하게, 애매하게, 억울하게, 선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작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억울함을 당하고, 인격적 모욕과 물질적 손상을 입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교를 포기해야 합니까? 등을 돌려야 합니까? 앙심을 품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까?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주의 사역에로 부르심은 고난에로의 부름입니다. 주님 제자의 부름은 스승 주님의 본을 따라 가는 부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름은 그분의 자취를 따라 가는 부름입니다. 23절 우리 주님처럼 욕을 당하되 맞대어 욕하지 않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23절에 우리가 주님처럼 고난을 당하되 상대를 위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4절에 주님이 친히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해 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24절 이미 우리는 그분의 채찍 맞음으로 나음을 영광을 얻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죽음에로의 부르심이다는 말을 남긴 독일 고백 교회 순교자, 본훼퍼 목사님 명언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CCC 한국대학생 선교회의 아버지이신 고 김준곤 목사님은 항상 두 얼굴을 가지고 사신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가정, 삶의 연약함을 보실 때는 어두운 모습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복음의 열정 앞에서는 뜨거운 태양 빛 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2의 이스라엘', '예수한국', '선교한국'을 부르짖으시면서 캠퍼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삼각산 기도원에서 울부짖으셨던 그분의 기도는 복음의 종으로써 몸부림이었습니다.

 

민족 복음화를 위한 환상과 기도 /김준곤 목사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나라가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레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직공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나게 하시고, 각급 학교교실에서 성경이 필수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의가 모일 때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게 하시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민족이 되게 하시옵소서.

 

공산혁명이 휩쓸고 간 폐허의 땅 북한에도 죄악과 비리와 불의가 난무하는 남한 땅에도 혁명의 개념을 혁명한 예수의 혁명으로, 이 수년 내에 민족적 대부흥이 일어나(3:2) 니느웨성처럼 회개한 민족, 해골떼가 생명의 군대로 부활한(37) 민족 되게 하시옵소서."

 

결론입니다. 2018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우리 인생도 저물어 갑니다. 인류 역사도 황혼녘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권면처럼 나그네 인생이란 철저한 자기 정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선한 행실로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기꺼이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놀라운 상급과 빛난 면류관 바라보고 복음적 나그네로 힘찬 발거움을 내딛는 2019년 새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2018년 뉴스파워 독자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광명한 새해에 임마누엘 주님의 사랑, , 생명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8/12/26 [13:00]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정준모 목사] 올바른 예배 신앙을 회복합시다 정준모 2019/12/13/
[정준모 목사] 『성탄설교3』성탄은 생명의 계절입니다 정준모 2019/12/10/
[정준모 목사] 〚성탄 메시지〛 성탄절은 “빛”의 계절입니다 정준모 2019/12/07/
[정준모 목사] <설교> 성탄절은 사랑의 계절입니다 정준모 2019/12/06/
[정준모 목사] 칼빈의 교리교육론에 대한 이해 정준모 2019/12/03/
[정준모 목사] 인생의 풍랑에도 두려워 마라(막4:35-41) 정준모 2019/11/29/
[정준모 목사] 믿음으로 시험을 이깁시다 정준모 2019/11/27/
[정준모 목사] 온전한 언어생활을 하라 정준모 2019/11/26/
[정준모 목사] 2020년 목회 계획 세우기 원리와 지침(1) 정준모 2019/11/25/
[정준모 목사] 〚최후 승리 찬양〛의 분석과 신학적 해석 정준모 2019/11/24/
[정준모 목사] 국가관을 굳게 세우라 정준모 2019/11/22/
[정준모 목사] 화(禍)를 당할 20가지 지도자 유형들 정준모 2019/11/22/
[정준모 목사]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정준모 2019/11/22/
[정준모 목사] 가정불화, 이렇게 극복하라 정준모 2019/11/21/
[정준모 목사] 추수감사절에 꼭 알아야할 이야기와 음식 정준모 2019/11/19/
[정준모 목사] 【평신도 교리 200 문답(4)】성육신 교리의 성경의 증거 정준모 2019/11/18/
[정준모 목사] 불임을 극복한 믿음【히11장 믿음장 강해 (6)】 정준모 2019/11/15/
[정준모 목사] 감사하기 거리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정준모 2019/11/14/
[정준모 목사] 【평신도 교리 200 문답(3)】 그리스도의 양성(兩性) 교리를 거부하는 이단들 정준모 2019/11/14/
[정준모 목사] 『기쁨으로 히브리어』 출판 기념식 열어 콜로라도=정준모 2019/11/12/
뉴스
연재소개
정준모 목사의 회복 치유 부흥 설교 전문
연재이미지1
올바른 예배 신앙을 회복합시다
『성탄설교3』성탄은 생명의 계절입니다
〚성탄 메시지〛 성탄절은 “빛”의 계절입니다
<설교> 성탄절은 사랑의 계절입니다
인생의 풍랑에도 두려워 마라(막4:35-41)
국가관을 굳게 세우라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가정불화, 이렇게 극복하라
불임을 극복한 믿음【히11장 믿음장 강해 (6)】
진정한 찬양과 감사(엡1:3-15)
도전받아야할 아브라함의 믿음
온 땅이여 감사하라(시100:1~5)
오히려 은혜인 가시(고후12:7-10)
이유를 깨닫고 여호와께 감사하라
심판을 철저히 준비한 노아
예배 갱신 설교: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
【히브리서 11장 믿음장 강해(3)】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믿음장 강해 (2)]더 나은 예배를 드리는 삶
[믿음장 강해(1)】믿음의 바른 정의와 바른 증거
[설교] 나라 사랑, 민족 사랑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9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