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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9 [23:02]
성령에 사로잡힌 부흥사 던칸 캠벨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22)
 
김현배

▲ 던칸 캠벨     © 김현배 목사 제공
헤브리디스 부흥의 역사


영국 스코틀랜드 북서쪽 헤브리디스 (Hebrides)의 가장 큰 섬인 루이스 (Lewis) 섬과 여러 작은 섬에 하늘의 부흥이 수 차례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부흥의 요충지였던 헤브리디스는 첫 번째 1824년 부터 부흥이 시작되어 1835년 사이에 루이스 섬 곳곳에서 부흥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 때 주역은 앤드류 맥로드 (Andrew McLeod) 목사였다.

두 번째는 1934-1939년 사이에 루이스 섬은 부흥을 또 다시 경험하였다. 부흥으로 인해 가난과 무지와 미신으로 가득찬 섬 전체가 놀랍게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집집마다 성경을 읽고, 가정 예배가 생활로서 정착 되고, 칼빈 신학의 5대 교리와 기본신학을 이해하고, 강단에서는 말씀 중심의 교리가 1시간씩 선포되었고, 회중은 집중하여 설교를 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세 번째는 10년 후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또 다시 부흥이 일어났다. 이 부흥의 결과로 많은 심령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계속 되었다. 하나님은 헤브리디스 섬에 여러 차례 크고 놀라운 부흥을 부어 주셨다. 헤브리디스는 부흥의 땅이요 축복의 땅이다.

던칸 캠벨의 회심

1949년 루이스 섬 부흥의 주역인 던칸 캠벨 (Duncan Campbell, 1898-1972)은 교회 역사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흥의 인물이다. 하지만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크게 쓰임 받았던 성령충만한 설교자이다. 캠벨은 1898년 스코틀랜드 산지 Blackcrofts 에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스코틀랜드 연합 자유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캠벨은 어려서부터 신앙 안에서 부모로 부터 가족 예배와 기도회, 매일 말씀 읽는 등 신앙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누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코틀랜드 민속음악 (folk music) 을 사랑하였고 곧 실력 있는 피리(bagpipe) 연주자가 되었다.

1913년 12월 그는 초청 받아 피리 연주를 하는 도중에, 성령님이 그에게 갈보리의 언덕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기억 속에서 생각나게 하여 죄를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깊은 죄 의식과 양심의 가책이 그를 엄습해 버렸다. 그는 갑자기 그의 인생의 허무함과 빈곤함 그리고 공허함을 느꼈으며 이 고독한 마음 때문에 그는 그날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하였다. 그는 집에 도착 하여 그의 영적 괴로움을 어머니에게 얘기하였을 때 그의 어머니는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과 바로 서라고 말하여 그를 헛간으로 보내어 기도를 시키었다.

그 때 캠벨은 헛간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면 지금 나아가겠습니다." 그 때 그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말씀 (요 5:24)이 확신으로 다가왔고, 구원의 기쁨이 흘러 넘쳤다. 그는 그의 인생을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고 싶다는 강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전도사역 가운데 큰 열매

그의 회심의 첫 열매는 믿음 선교회 (Faith Mission) 에서 나타난 그의 열정적인 헌신이었다. 곧바로 캠벨은 작은 마을들을 거의 다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는데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으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캠벨은 오랜 기간 동안 신학 공부 하는 것보다 믿음 선교회에서 제공하는 9개월 집중 교육에 지원하여 복음 전도하는 일을 위하여 중점적으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전도자 훈련 과정을 마친 후 캠벨은 주님을 위하여 불타는 마음으로 스코틀랜드 각 지역과 섬 마을 구석구석까지 돌면서 전도하였다. 그의 방문 사역과 간증을 통하여 여러 영혼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기쁨 또한 그는 누리게 되었다.

또한 마음 속에 동족 스코틀랜드인들을 향한 소망을 품고 있었던 캠벨은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북부와 섬들을 순회하면서 열정적으로 설교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은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들의 일터를 찾아가 일을 돕기도 하는 등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북서쪽에 위치한 Iona부터 북쪽 Fort William까지 두루 두루 다니면서 영적 각성을 일으켰다. 더욱 더 힘을 받은 캠벨은 3년간 이러한 순회 사역을 하다가 1924년에는 스카이 (Skye) 섬까지 방문하여 전도 사역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굳은 마음으로 캠벨 일행을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설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드려지는 작은 기도모임들을 통해서도 회심하게 되었다.

사역지 이동과 영적 침체

캠벨은 믿음선교회에서 사퇴하여 스카이 섬에 있는 아드바서 자유교회 (Ardvasar Free Church) 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4년간 사역하였다. 그후 모라이 포스 (Moray Forth) 지방으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를 건립하였고, 10년간의 충실한 사역으로 많은 청년들의 신앙이 바르고 굳게 자라게 되었다. 그는 그후 1940년 팔키크 (Falkirk) 에 있는 자유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지만 그곳에서는 뜻밖으로 사역의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다. 산업적인 도시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특별히 더 굳어져 있었다. 그의 사역 가운데 더 이상 열매를 보지 못하자 그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게 되었고 자신이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 혹은 자신의 힘과 명성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등 여러 의문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그는 다른 지역에서 목회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믿음선교회로 돌아가 강의를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에딘버러에 있는 예배에 참석하여 주님께 부르짖도록 도전을 받아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밤을 세워 기도하였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자비의 손길로 그의 마음 가운데 시편의 말씀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94:14),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103:3)" 을 그의 마음 가운데 부으셨다.

캠벨의 영혼은 다시 확신으로 찼으며 그의 마음 가운데 다시 한번 그가 예전에 사역하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맛보았던 스코틀랜드 북부 지방을 향한 강한 열정을 품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한번 그곳으로 부르시고 계신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1949년 1월 캠벨은 그의 아내와 5명의 자녀들을 이끌고 믿음선교회에서 제공해준 집으로 이사하였고 곧바로 북부 지방을 돌며 사역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보고 하기를 "나는 내가 20년 전 싸웠던 전쟁을 다시 한번 싸우고 있지만 이번에는 승리자의 편에 서서 즐기고 있다".

부흥의 불을 붙인 두 할머니의 중보기도

역사적으로 여러 번 부흥을 체험했던 루이스 (Lewis) 섬 부흥의 열기가 식어지면서 젊은이들은 믿음을 버리고 타락과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다. 교회는 젊은이들을 붙잡는데 무기력했고, 사회는 전반적으로 복음에 무관심하였다. 역사 속에서 부흥을 경험했던 헤브리디스의 영성은 썰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바스 (Barvas) 마을에서 제임스 맥케이 (James Murray Mackay) 목사와 몇몇 교회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갈망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부흥을 보내 주십사고 여러 달 동안 기도하였다. 특별히 나이 많은 두 자매 할머니인 84세 페기 스미스 (Peggy Smith) 와 82세 크리스틴 스미스 (Christine Smith) 는 오두막 집에서 하나님께 이 섬에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언니 페기는 관절염 장애가 있어 잘 움직일 수 없었고, 그 동생 크리스틴은 앞을 잘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였다.
 

▲ 던칸 캠벨과 부흥을 위해 기도했던 두 노인 자매     © 김현배 목사 제공

두 노인 자매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사 44:3)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 노인들이 계속 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유명한 부흥사 던컨 캠벨 목사가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그들의 마을에 올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두 노인들은 그 섬 마을 발바스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임스 맥케이 목사에게 캠벨 목사를 초청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들은 기도 가운데 캠벨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1949년 던컨 캠벨은 부흥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루이스 섬에 도착했다. 그 때 두 할머니의 중보기도가 루이스 섬 부흥의 불을 붙이고 있었다.

던칸 캠벨의 성령집회와 부흥  

캠벨은 기도하는 사람이요, 부흥을 여러 번 목격했던 사역자요, 성령에 사로잡힌 부흥사이다. 그는 헤브리디스 부흥 시기에 말씀 증거하는 일에 크게 쓰임 받았던 설교자이다. 성령께 사로잡혀 루이스 섬에 도착한 캠벨은 성도들의 영적 기대감에 놀랐다. 그는 피곤을 잊어버리고 온 열정을 다하여 집회 인도에 나섰다.

첫째 날 성령의 감동은 있었지만 특별한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는 그 후 며칠이 지난 주일날 저녁집회 때 일어났다. 섬 전역에서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날 교회는 가득 차 있었다. 캠벨은 구원받은 자의 영광, 십자가의 능력, 하나님의 진노, 기도의 중요성, 거룩, 성결, 죄인들의 멸망, 천국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캠벨이 설교할 때 성령이 역사하여 회중에 강하게 임재 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흐느껴 울면서 깨어지고 죄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무관심한 그리스도인들은 잠에서 깨어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다. 집회 가운데 기쁨의 찬양과 괴로움의 신음이 뒤섞였다. 집회는 새벽이 맞도록 계속 되었고 캠벨이 축도를 하고 집회를 마무리 할려고 해도 사람들은 그룹별로 헤어져 계속하여 기도하였다. 교회 밖에는 많은 회중이 성령에 사로잡힌 채 서 있었다. 그 날 밤은 구원과 부흥의 밤이었다.

던컨은 발바스에서 5주 동안 저녁마다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의 설교 사역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능력이 움직이고 있었고, 성령이 운행하고 있었다. 이것이 1949년 루이스 섬 (Isle of Lewis)의 부흥이다.

루이스 섬 부흥의 현상

1949 년 루이스 섬 부흥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해 많은 크리스찬들이 죄를 고백하게 되었다. 예배 끝난 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임재에 실신하고 영혼의 고통으로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장성한 남자들이 죄의 무게에 머리를 엎드려져 자비를 구하였다. 그들의 죄악성을 깨달아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또한 방탕한 삶을 살았던 젊은이들도 교회로 몰려와 울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다. 집에 있다가 갑자기 성령의 강한 죄의 지적을 받고 꼬꾸라져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길을 가다가 성령에 감동되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헛간에서, 베짜는 광에서, 길가에서, 석탄재 옆에서, 들판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흐느끼며 결단했다. 그들은 기도하여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관계를 잘 해 나가고자 했다. 여러 지역에서 기도회가 마을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 영광의 임재 가운데 구원하는 손길을 맛보아 기쁨의 외침도 들렸다. 회심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일 아침에 신자가 4-5명밖에 참석하지 않던 교회들이 매주 차고 넘쳤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교회는 다시 살아났다. 술주정뱅이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왔으며, 술집들이 영업이 안 돼 문을 닫았다. 많은 이의 삶이 놀랍게 변화되었다.

이 부흥의 불길은 단순히 어떤 감정주의적인 사건이 아닌 지속적이고 루이스 섬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바꿔놓은 하나님의 강한 역사였다. 그 부흥의 소식이 마을에서 마을로 확산되었고 즉시 섬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온 지역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진 것 같았고 하나님께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이 가정이든, 논밭이든, 아니면 길거이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할 수 있었다. 어떤 성도는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덮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캠벨은 “부흥은 하나님께 흠뻑 빠진 공동체를 말한다”고 했다. 이날의 특별한 역사는 그날로 멈춘 것이 아니라 1949년 루이스 섬의 발바스 마을을 중심으로 부흥이 섬 전체로 퍼져나갔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 1952년까지 부흥은 계속 되었다.

은퇴 그리고 죽음

던컨 캠벨은 1952년 이후 스코틀랜드 여러 지역을 다시 순회하면서 설교하였지만 1956년 다시 그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스위스로 병가를 가게 되었다. 그 후 순회 사역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1958년 에딘버러에 있는 믿음선교회 성경대학으로 돌아가 교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차세대 젊은이들을 교육하며 강의하였다. 또한 기도시간에는 그들에게 불타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캠벨은 1966년 은퇴하였고 그 후 미국과 캐나다에서 집회 초청이 있어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여러 사역을 마치고 1972년 스위스 로잔 (Lausanne) 가서 청소년 선교학교에서 전도를 가르쳤다.

그가 죽기 전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이것 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고전 9:26)". 그의 열정과 헌신적인 삶을 요약해주는 구절이었다. 새벽시간 그에게 갑자기 심장마비가 엄습했다. 그는 1972년 5월 28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늘날 캠벨이 교회와 우리의 삶에 주는 교훈


1. 중보기도의 중요성

루이스 섬 부흥은 중보기도의 놀라운 위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부흥의 역사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간절한 중보기도이다. 하나님께서 큰 부흥을 일으키시기 전에는 꼭 기도를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언제나 기도의 사람을 통해 부흥의 불이 붙는다. 조국과 유럽 부흥을 위해 교회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선교센터에서 등 어디서든지 중보기도하는 사람과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그룹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2. 말씀 중심의 부흥

그러나 이곳 부흥에서의 중요한 원인은 말씀 중심의 부흥이었다는 점이다. 섬 사람들은 항상 말씀을 읽고 있었고,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확고하였다.

3.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

헤브리디스 섬 일대의 부흥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회심한 후 말씀 중심에 서서 신앙을 이어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성령의 임재가 섬 전체를 휩싸고 있었다. 그들의 심령 가운데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심으로 인해 죄를 자복하고 통회하게 되었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하면서 구원의 영광을 경험하게 되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4. 부흥을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함

캠벨은 "하나님의 부흥을 찾는 자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프로그램과 행사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의 절대주권 속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손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고 무릎을 꿇고 부흥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인 자들에게 부흥을 부어 주셨다. 캠벨은 “부흥은 항상 거룩함과 연결되어야 한다. 거룩함 없이는 누구나 주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참된 부흥은 거룩함의 부흥이다. 부흥을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하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루이스 섬 부흥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배울 수 있다.

부흥을 위한 메시지

부흥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축복이다. 교회의 부흥을 꿈꾸는 한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캠벨처럼 성령에 사로집힌 설교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80이 넘은 두 할머니처럼 부흥을 위한 중보기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들이 루이스 섬에 다시 한번 부흥을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조국 교회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영적인 황무지가 되어버린 유럽 땅에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부어지는 부흥을 보내달라고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한다. 유럽은 지금 선교지가 되어 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헤브리디스 부흥, 루이스 섬 부흥이 쇠퇴해져가는 유럽 땅에서 다시 리바이벌되게 해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부흥은 기도하는 사람,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 자신을 깨끗이 준비하는 거룩한 사람을 통하여 임할 것이다.
▲ 김현배 목사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국 부흥운동사를 공부했다. 현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맡아 유럽 재복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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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14 [09:1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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