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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3.27 [11:01]
북아일랜드의 모세 제임스 맥퀼킨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7)
 
김현배
▲ 얼스터 부흥의 주역인 James McQuillkin     ©김현배 목사 제공
북 아일랜드의 영적상황


부흥이 일어나기 전의 북아일랜드는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였다. 도시는 닭싸움하는 오락과 장날과 장례일은 술 마시는 시합, 권투 시합을 하고, 경찰 감방이 사람들로 들끊었고, 술주정꾼들이 많았다. 항상 부흥이 있기 이전 시기의 특징은 역시 생명이 없고 무섭도록 죽어 있었던 것처럼, 그 당시 교회의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갔으며, 교회들 대부분이 수년 동안 형식주의와 무관심주의로 마비되어 있었고 차가웠다.

특히 북아일랜드의 장로교회가 교리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장로교회가 아리안주의 (Arianism)라 불리는 교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아리안주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과 영원성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교리이다. 그것이 교회 상태가 완전히 생명력과 유익함을 잃어 버리게 된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들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교회는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당시 교회는 침체되어 생명이 없고 죽어 있었다. 교회가 생명을 좌우하는 어떤 진수적인 진리를 묻어 버리거나 무시하는 일이 있었을 때에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기도의 열정이 가득한 제임스 맥퀼킨 (James McQuilkin)

제임스 맥퀼킨은 북아일랜드에서 쓰임 받았던 사람으로서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고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일으키실 때 사용하시는 사람의 유형에 있어서는 다양하다. 예를들면 마틴 루터나, 조지휫필드나 요한 웨슬리, 다니엘 로우랜드 등과 같은 위대한 사람을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제임스 맥퀼킨과 같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기도 하신다. 맥퀼킨의 주된 능력은 성령의 부으심을 위하여 열심있는 기도의 열정에 있었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는 그의 저서 ‘부흥’에서 제임스 맥퀼킨을 북아일랜드의 모세라고 불렀다. 중보기도자 모세처럼 그는 분명히 중보 기도의 사람이었다. 또한 맥퀼킨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조지 뮬러 목사의 일기와 책들을 통하여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는 기도로 북아일랜드에 부흥의 불을 지핀 설교자이다.
작은 학교 건물에서 시작된 기도 모임

어느날 복음 전도에 열심을 다하였던 Colville 여사는 Ballymena 를 방문하여 다른 여인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예정(Predestination)에 관하여 지식적이고 교리적인 부분에서만 접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Colville 여사는 "그대는 한 번도 주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네" 라고 말하였다. 이 때 Colville 여사의 말을 듣게 되었던 맥퀼킨의 가슴에 그 진리가 꽂히게 되었다. 스스로를 크리스챤으로 여기고 있었던 맥퀼킨을 뒤흔들어 놓았던 그 진리로 인해 그는 약 2주 동안 아침이든 밤이든 주님과 말씀 앞에서 씨름하게 되었고 결국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바로 그의 친구인 제레미아 메닐리 (Jeremiah Meneely)를 전도하여 같이 기도모임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존 월리스 (John Wallace) 와 로버트 칼라일 (Robert Carlisle) 이 동참하여 기도 모임을 가졌다. 1857년 9월 코너 근처의 작은 학교 건물에서 네 명의 사람들로 시작된 기도 모임은 시간이 거듭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참석하였다. 그리하여 1858년 놀라운 회심의 역사들이 있었다. 꾸준히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여 교회로 나오게 되었으며 부흥의 불길은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얼스터 (Ulster) 부흥의 출발점

1859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 부흥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 연관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소수의 겸손한 사람들이 시작한 기도 모임은 전국적인 영적 각성 운동으로 확장 되었다. 1857-58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부흥의 소식들이 점차적으로 북아일랜드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는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설교를 들었으며 뉴욕에서만 약 1만 2천명의 회사원과 사업가들이 기도 모임을 위해 매일 매일 모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여러 개의 기도모임들이 시작되었다. 영적으로 깊은 관심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59년 부흥은 어떤 한 사람이나 어떤 한 지역에 국한 시킬 수는 없지만 자세히 연구를 하여 보면 부흥의 물결을 트인 곳을 찾아 낼 수 있다. 공공 예배와 모임 가운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위해 울부짖었으며 끊임없이 기도모임들은 계속 생기고 진행되었다. Ballymena 와 그 옆에 있는 작은 마을 코너(Connor)를 불태운 부흥의 불길은 또 아호힐 (Ahoghill) 외 다른 곳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한 목사는 고백하기를 "옛날에는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어려웠는데 지금의 어려움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축도 후에도 끊임 없이 진행된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간구는 보통 새벽이 돼서야 마무리 되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부흥과는 사뭇 다르게 이번 영적 각성에서 찬송의 역사 또한 놀랍게 나타났다. 은혜가 되었던 찬양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What's the News? (무슨 소식인가?") 이다. 이 찬양의 가사는 십자가의 소식, 부흥의 소식, 하나님의 역사의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흥의 현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이 찬양을 부르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다. 경찰이나, 기차요원이나 누구나 이 찬양을 불렀다. 젊은 사업가들뿐만 아니라 하루 수당을 통하여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까지 많은 시간을 헌신하여 각 마을에 육체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영적으로 아파하는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위로하고 섬기는 일들 또한 있었다. 이처럼 목사들과 선교사들을 돕는 이들 평신도들의 숫자는 당시 매우 많아졌다.

1859년 얼스터에 임한 부흥의 불길

하나님의 역사는 심히 놀라워서 예배와 기도모임을 위해 교회나 큰 건물에서 모이기도 하였지만 너무나도 많이 오는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하여 대부분 들판이나 산에서 많이 모였다. 벨파스트 (Belfast) 에서 회심한 한 노인이 기도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왔을 때 간증을 부탁 받는 일이 있었다. 당시 기도모임은 채석장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약 5천명이 모여 있었다. 그의 간증을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여러분! 저는 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술로 매일 살았으며 가족들을 술 때문에 50년 동안 빈곤으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지난주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저의 무거운 죄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지어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서 죄인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완벽한 은혜의 결과물로 서고 있습니다. 주님의 갈보리 사역은 완전하십니다."

적지 않은 카톨릭 신자들도 이 부흥을 통하여 회심하게 되었다. 신부들은 이 부흥을 경험하면서 심히 놀라며 경계하게 되었고 가끔 어떤 신부들은 부흥을 '사탄의 속임수'로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말은 곧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의 간증 가운데 사라지게 되었다. 이처럼 기도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이 부어져 1859년 얼스터(Ulster) 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얼스터 부흥을 통한 사회의 변화

1859년 얼스터에 일어났던 영적 각성은 기독교가 개인과 전 사회를 순식간에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이 부흥을 통하여 물론 세상에서 의미없이 살던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키기도 하였지만 부흥의 진정한 열매는 초대 교회 사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가졌던 열정과 열심히 다시 한번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부흥을 통하여 전 사회가 변하게 되었다. 지역사회에 범죄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얼스터 판사들은 재판할 사건이 없었고 경찰이 조사할 범죄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감금 중인 죄수들이 거의 없었다.

특별히 방탕한 삶의 요새였던 술집들이 여러군데 문 받게 되었으며 술취함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과 더러운 언어 생활은 사라지게 되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부흥은 Antrim 과 Down 을 넘어 많은 곳으로 퍼졌고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성령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하나님과 거룩함에 대한 깊은 사모함은 깊어져만 갔다. 사람의 이름이 높아지는 일은 없었으며 모든 기도모임 가운데 사랑의 교제가 넘쳤다. 이 부흥은 곳곳 마다 전 마음과 도시를 변화시켰다.

한 목사가 기록하기를 "전 마음이 깨어났다. 농사와 일은 잠시 멈추었고 모두가 기도에 전념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역사가 임했을 때 도시는 철저하게 각성되었다. Bellaghy 의 Hugh Hunter 목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기도 하였다:
"주님의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영적 축복들은 너무 놀랍다. 나는 지난주 동안 하루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매일 밤 그리고 아침에 성경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찾아온 영혼들 때문이다. 우리 도시는 주님의 역사 이전에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부패한 도시였다. 하지만 부흥의 불길이 모든 부패한 것을 태워버렸다. 나는 마치 새 예루살렘의 길거리를 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1859년 얼스터 부흥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특징

1. 부흥의 사역은 역시 오직 성령님의 사역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였다. 부흥의 사역을 위해 성령께서는 대부분 겸손한 지역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특히 각 지역의 평신도들의 기도 모임과 여러 사역을 통하여 복음은 더 멀리 퍼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을 구원한 주님을 위해 봉사하며 헌신하였다.

2.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찬양이다.

장로교 총회는 날을 잡아 큰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주신 만왕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배하는 날로 정하였다. 이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삶 속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약 백 만개의 찬양집들이 이 시기에 팔렸다.

3. 성품의 변화와 절제와 생활의 경건함이다.

William Arthur 목사는 전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변화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의사, 사업가, 가게주인, 선원, 직공 등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대하는 태도와 말의 큰 변화가 있었다. 또한 술취함이 상당히 줄어 들었고 술집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였으며 생활의 부패와 방탕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4. 연합이다.

부흥의 불길 가운데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놀라운 연합이 이루어졌다.

제임스 맥퀼킨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1. 맥퀼킨의 중보기도 사역이다.

얼스터 부흥의 교훈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부흥의 불을 지펴 얼스터에 불을 타오르게 한 것은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 있고 긴급하고 끈질긴 기도였다. 지금 우리들은 유럽을 위한 긴박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얻기 위해 뜨겁게 기도해야 한다. 북아일랜드의 중보기도자 제임스 맥퀼킨 처럼 우리도 부흥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2. 성령께서 비상하게 역사하심이다.

성령께서 비상하게 역사하실 때 교회의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것이 부흥이다. 1859년 얼스터 지방을 삼켜버린 부흥은 진정 성령의 사역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독교의 지적인 면과 학식과 이해와 지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성령을 잊게 된다. 이제 교회는 성령의 적극적인 역사를 인식해야 한다. 우리들은 비상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사모해야 한다. 불같은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는 부흥을 갈망해야 한다.

부흥을 위한 메시지

얼스터 부흥이 일어난지 1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 유럽에서 부흥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북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교회들이 많이 쇠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도와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인해 유럽 47개국에 참된 부흥이 일어나기를 갈망해야 한다. 오늘 유럽을 뒤바꿀 부흥의 불길은 기도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이 부어짐으로 인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맥퀼킨 처럼 중보기도 하며 성령을 절대적으로 의지한 설교자가 나와야 한다. 1859년 얼스터 부흥이 침체된 유럽 땅에 다시 리바이벌 되는 꿈을 꾸어야 한다. 유럽의 모든 현지교회와 한인교회에 얼스터 부흥이 일어나는 꿈을 꾸면서 기도해야 한다.
▲ 김현배 목사     ©뉴스파워


이억만리 독일 땅에서 디아스포라로 사역하면서 정든 조국교회의 부흥을 갈망한다. 개혁주의 영성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반면에 세속화와 비성경적이고 신비한 영성이 가득한 조국 교회 회복을 위해 맥퀸킨 처럼 불같은 성령의 부어주심을 갈망하는 중보기도자가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부흥은 성령의 부어주심이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비상으로 기도해야 할 때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이 다시한번 조국교회에서 일어나기를 꿈꾸어 본다. 피묻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 조국의 성시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김현배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국 부흥운동사를 공부했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맡아 유럽 재복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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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31 [17:0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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