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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5 [07:03]
복음 중심적인 삶을 산 언약도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7)
 
김현배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은 누구인가?

교회 역사 속의 인물들 중에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신앙의 위인으로 기억되고 거론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박해 속에서 말씀으로 영혼을 일깨웠던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을 빼 놓을 수 없다. 종교개혁 운동이 계속 확산되었던 17세기의 설교자요 목회자들을 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Puritans)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언약도’(Covenanters)라고 부르고 있다. 언약도란 용어는 순수하게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만을 일컫는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권이 통합 (1603)이 된 이후 국가와 교회를 손에 쥐고 세속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세력 앞에서 분연히 일어서 종교와 시민의 자유를 지키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을 언약도라고 부른다.
▲ 마지막 언약도들의 순교자들의 원형터     © 김현배

언약도들은 존 낙스 이후 완성되지 못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의 전 삶을 불태웠다. 언약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열정과 성령의 능력을 겸비하여 성도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참된 목회자들이었다. 그들은 열정주의, 강력한 설교, 예리한 설교, 진리에 굳게 선 사람, 불의에 투쟁하는 사람이다. 언약도의 특징은 “사명, 열정, 헌신, 사랑, 인내, 순결, 결단, 영성, 순교” 이다. 언약도들은 성경적인 진리에 기초하여 크리스찬다운 신앙과 삶을 살았던 영적 위인들이요 이 시대에 빛이 되어줄 신앙의 거인들이다.

그 당시 스코틀랜드의 영적 상황: "계몽주의와 지성적 움직임의 출발"

그 당시 유럽 전체에는 세속 문화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들이 나타났다. 지성인들의 사고 속에서는 자연과학과 역사가 신학을 대신하기 시작했으며 이성을 모든 진리의 규범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의 집단이 등장하였는데 존 로크(John Locke) 같은 사람은 자연종교 또는 이성의 종교를 내세웠다. 이성과 과학 운동에 대한 지적인 탐구의 시대가 전통을 무시하는 새로운 경향을 낳고 있었다. 이처럼 대륙과 영국으로부터 밀어닥친 영향들이 스코틀랜드에 침투했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스코틀랜드 국가교회는 제네바 칼빈의 신학과 교리를 따랐다. 반면에 영국 국가교회는 영국 국교회주의를 따랐다. 정치 문제에 있어서 감독제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장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 그리고 ‘언약’ 또는 ‘언약사상’이라는 말의 이해는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개혁 이후에 더욱 복잡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성경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 모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으며, 학자들 사이에는 언약적 주제에 관한 의견 불일치가 있어 왔다. 장로교와 감독교회 사이의 신학적 논쟁과 근본적으로 언약사상의 성격 및 중요성에 현대신학의 정수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 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보다 인구, 국토, 경제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열세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열정만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상하고 헌신적이었다.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던 스코틀랜드는 신학의 고향이요, 격전장이 되어 왔다. 찰스 1세의 감독주의 제도 하에서 두 나라를 통합시키려는 종교정책 때문에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고 바른 교회 형성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던 스코틀랜드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때 언약도들이 등장하였다.
▲ 교회 전체 모습     ©김현배

언약도 운동의 배경 - “국가 언약 (The National Covenant)”을 체결함

제임스 6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군주)이 국가 뿐 아니라 교회까지 다스리는 권세를 하나님으로 부여 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왕이 교회의 머리이며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요 왕이 앉는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에 비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를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 이러한 제임스의 실패 정책을 물려받은 찰스 1세는 켄터베리 대주교 라우드가 만든 기도 예식서와 교회 예식서를 스코틀랜드 교회에 강압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언약도들은 이러한 예식서가 의식적이요 천주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간주하고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장로교를 국교로 한 성경적인 개혁교회를 로마 카톨릭으로 복귀하려는 왕의 처사에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언약도들은 국왕이나 교황이라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천명하였다. 언약도들이 원수들과 싸운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위해서였다.

결국 분노한 장로교인들은 1638년 2월 28일 에딘버러에 있는 그레이프라이어 (Greyfriars) 교회에서 유명한 ‘국가 언약’(The National Covenant)을 체결한다. 이날은 ‘하나님과 스코틀랜드 민족 공동체가 혼인 서약을 하는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이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을 ‘언약도’라고 불렀다. 3월 2일에는 에딘버러 대학과 트리니티 교회에서 국가언약이 낭독되고 에딘버러 시민들이 서명에 참가하였으며 스코틀랜드 국민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가 국가언약을 맺은 것이다. 이 언약은 개인 언약과 동시에 국민 상호간의 언약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스코틀랜드 국가와의 언약 즉 “하나님과의 언약”을 의미하였다.

그 언약의 내용은 모든 천주교식 실제들을 교회에서 추방시키는 것이며, 로마교회로 되돌아가게 하는 어떤 요소들을 대항하는 것과, 교회의 머리되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왕권에 도전하는 시도들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가장 거룩하신 말씀에 최고의 존귀와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인준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실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언약도들은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교회 순수성이 많이 오염되고 있는 이 시대에 언약도들의 ‘하나님과의 언약’ 사상이 우리들에게도 실천되어져야 할 것이다.

언약도들의 신앙과 영적부흥

언약도들은 경건하고 순수한 사람이며 부드러우면서도 주 예수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거짓 없이 비추는 거울과 같이 소명과 사명의 분명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하나님이 풍성하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그 주어진 언약에 절대복종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았다. 언약신학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차원에서 가르쳤고 예배하였다.

그리고 언약사상을 그들의 삶에서 구현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열심히 적용시켰다. 언약도는 세상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진리 따라 믿음으로 살았으며 청교도들 처럼 세상을 향한 살아있는 진리였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 진리를 위해 투쟁한 사람이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환난을 통해 거룩해지며 불같이 타오르는 신앙의 열정과 믿음으로 고통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언약도들은 하나님 중심의 진정한 교회와 신앙을 확립하기 위해 흔쾌히 자신들의 몸을 순교의 제물로 내던졌던 사람들이다.

언약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참된 부흥이다. 언약도의 부흥은 수적이고 외적인 것이 아니라 심령부흥이요 영적 부흥이다. 참된 부흥은 언약도들처럼 우리의 심령에서부터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말씀의 설교자

언약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권위와 영광을 돌리며, 말씀의 신실한 선포, 성례의 올바른 실행, 모든 거짓 종교의 척결을 행하였다. 언약도들은 생명력 있는 믿음과 불같은 열정으로 명료하게 성경의 진리를 전파하고 온 몸을 던져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력하게 설교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죽어가는 시대를 향한 살아있는 진리" 라고 말한다. 언약도들은 거침없는 용기와 예리한 논리를 바탕으로 청중들의 심곡을 찌르는 설교를 선포하였으며, 천둥소리와 같이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말씀의 설교자로서 청중들 앞에 서서 맹수처럼 표효하였다. 진리에 강하고 불의에 투쟁하며 능력있는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대적들과 맞서 싸웠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천명하였다. 1643년 7월에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에서 작성하였던 ‘교회정치’, ‘예배모범’, ‘소요리문답’, ‘대요리문답’, ‘신앙고백서’ 등의 문서들을 장로교의 표준 문서로 수용하여 세계화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언약도들은 하나님이 쓰실만한 인물들이었으며, 열정으로 자신의 전 삶을 불태워 하나님 나라 확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언약도들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임재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탁월한 영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고난의 현장 - “지붕 없는 감옥”

교회의 영적 독립성을 무시한 찰스 2세의 학정과 종교탄압은 갈수록 강도를 높여 갔다. 감독 제도를 통해 종교 통합을 이루려는 찰스 2세의 강압 종교정책은 결국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순결한 언약을 맺고 국가언약 문서에 서명했던 언약도들의 봉기로 이어졌다. 먼저 여러 가지 이유로 선제공격을 감행한 언약도들과 위기를 느낀 정부군들의 군대가 싸우게 되었다. 이 전투로 인해 약 400-500명에 이르는 언약도들이 거룩한 피를 쏟으며 전사하였고, 1,200명의 언약도 포로들이 에딘버러 그레이 프라이어 교회 뜰에 있는 지붕없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정부 당국은 언약도의 처참한 결과를 보란 듯이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과 언약도들이 거룩한 혼인 언약이 거행되었던 이곳 교회에 감옥을 두었던 것이다. 스코틀랜드 날씨는 너무도 험악하여 밤마다 비가 오기에 지붕없는 감옥에 있던 언약도들은 헐벗고 춥고 굶주려 죽었다. 그들이 갖은 고초를 겪었던 언약도들의 수용소가 이 지붕 없는 감옥이다. 이처럼 지붕없는 감옥과 목잘려 죽었던 순교의 현장, 목회했던 교회, 언약도들의 묘, 그레이 프라이어 교회 등은 언약도들의 박해 역사이다.

박해, 추방, 처형을 당한 언약도들 - “살인의 시대 (Killing Time)”

언약도 운동사는 1638년 2월 28일 그레이 프라이어 교회에서 국가 언약문서에 서명한 날로부터 1688년 명예혁명으로 장로교주의가 회복될 때까지의 순수한 종교적 순교역사였다. 이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수 천명의 언약도들이 순교 또는 심한 고생과 재산 몰수를 당하고 처형되었다. 수많은 목사들이 사택에서 추방되었으며 들판으로 내몰렸다.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냉대가 극심하였지만 양떼들이 위로하며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 주었다. 참으로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 언약도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신앙 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1660년 찰스2세의 왕정 복고가 성립되면서 언약도 운동의 성과들이 빛을 잃게 되고 감독제도가 부활되고, 성직 임명권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때 언약도들은 불법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1662년에는 11월 새벽에 400명의 언약도 목사들이 자신의 교구를 떠나 추방되었으며, 1663년에는 추방당한 목사들이 야외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자 벌금 또는 무력으로 탄압하였다. 1679년에는 400-500명의 언약도들이 전사하였다. 찰스의 가혹한 핍박은 1661년부터 1668년 기간 동안에 스코틀랜드에서만 어린아이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무려 18,000여명의 언약도들을 순교하게 했다. 잉글랜드에서는 그의 재위 기간 동안에 감옥에 간 사람들만 8천명이나 되었고 끝까지 언약에 충실한 사람들은 유배의 길로 가든지 추방되거나 처형되었다. 그 당시 추방령 받은 200여명의 언약도들은 유배의 뱃길인 바바도스로 가는 도중 선박이 좌초되어 모두 익사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핍박받은 언약도들의 이야기는 모든 이의 가슴에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것들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스튜어트 왕가가 무너지고 도륙의 시대(Killing Time)는 끝났다.

언약도들의 순교이야기 -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다”

순결한 언약도들의 고난과 희생, 순교의 이야기는 모든 이의 가슴에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것들이다. 알렉산더 헨더슨 (1583-1646), 데이비드 딕슨 (1583-1662), 사무엘 루터포드 (1600-1661), 제임스 거스리(1612-1661), 조지 길레스피 (George Gillespie, 1613-1648), 제임스 더람 (1622-1658), 제임스 렌윅 (1662-1688), 알렉산더 페든 (1626-1686), 도널드 카길 (1627-1681), 리처드 카메론 (1648-1680) 등의 언약도들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몇몇 순교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당시 언약도 지도자였던 아가일 후작과 제임스 거스리가 처형되었다. 이들은 고결한 언약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타협 대신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1661년 6월 교수형을 받게 된 언약도의 작은 거인 제임스 거스리는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같이 자신도 나무에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대에 오른 제임스 거스리 목사는 온갖 회유와 핍박을 이겨낸 승리자의 당당함과 열정을 가지고 마지막 메시지를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며, 빛이요, 의요, 힘이요, 구원이요, 모든 것 되십니다. 오직 그 분에게, 그 분에게 나의 영혼의 힘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충성할 것입니다. 나의 영혼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그 분을 송축할지어다. 주여, 이제 나의 눈으로 당신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언약도여, 언약도여, 그대들이 스코틀랜드의 부흥을 가져 올 것입니다.”

1680년 7월 32세의 리처드 카메론 목사는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토벌군은 리처드 카메론의 머리와 손을 잘라 자루에 담았다. 그는 그의 형제와 나란히 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들었고 에어모스에서 순교하였다. 토벌군 병사들은 순교자의 머리를 꺼내 축구를 즐기듯이 발로 차기도 하였다. 어느 한 병사는 카메론 목사의 입에 긴 창을 끼워 그의 머리를 높이 들고 다니며 “반역자의 머리다‘고 외쳤던 것이다.
당시 추밀원으로 순교자의 유해를 운반한 로버트 머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 있는 머리와 손은 기도하고 설교하며 살다가, 기도하고 싸우면서 죽은 자의 것입니다.” 1688년 언약도 제임스 렉윅 목사는 에든버러 그라스 마켓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의 머리와 손은 네더보우 항구에 내걸렸다.

언약도 중 맥케일은 에딘버러의 머캣일 십자가에서 순교했는데 그의 마지막 말은 유명하다. "오 주님 이제 나는 피조물에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당신께 내말을 돌리나이다. 이제 나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하나님과 나와의 교제를 시작하나이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이여 친척들이여 안녕히! 세상과 모든 쾌락이여 안녕히! 고기와 술이여 안녕히! 해, 달 별들아 안녕히! 하나님 아버지여 오소서 친절한 주 예수 새 언약의 중보자여 오소서! 은혜의 복된 성령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여 오소서 영광이여 오소서! 영생이여 오소서! 죽음이여 오소서!

그들은 순수한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다가 결국은 순교의 산 제물이 되었다. 순교를 당한 언약도들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위대한 영웅들이었다.
▲ 뚜껑 없는 감옥 방     ©김현배
오늘날 언약도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1. 언약도들은 박해 속에서도 말씀을 외쳐 영혼을 일깨웠다.

Greyfriars 교회, 지붕 없는 감옥, 언약도들의 묘, Grass Market 순교 현장 이야기는 정말 눈물 없이는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너무 귀하고 감동적인 이샤기이다. 처참한 박해 속에서 말씀을 선포하다 순교한 언약도들은 분명 교회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영적 거장들이다. 고난과 순교의 현장 속에서 피어난 언약도들의 신앙은 필자의 신학과 영성, 신앙과 삶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2.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의 소중함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소중함을 알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 국가 통제 안에서 행하는 예배를 거부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이단과 대적들을 색출해내도록 요구하였다. 찰스 2세의 탄압과 핍박으로 인하여 목회지에서 추방된 언약도들은 산과 들에서 비밀리 예배드렸다.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공동체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시대를 볼 때 이러한 예배를 우리들은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이러한 예배를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서 다시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순수한 교회의 소중함이다.

언약도들은 교회의 본질을 가지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언약도들은 국왕이나 교황이라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천명하면서 진리를 위해 투쟁하며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였으며 순수한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과 생명을 걸고 싸웠다.

4. 그들은 복음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언약도들은 그들의 목회와 삶 속에서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함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물질이나 가족, 명예 등 그 어떤 것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함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심지어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였고, 핍박 받았으며, 화형당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단지 말뿐이 아니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으며 그것은 그들의 가장 큰 열망이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믿는 바와 일치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잘 살았기 때문에 잘 설교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가장 잘 사는 사람이 가장 잘 목회하고, 가장 잘 설교하는 것이다.

또 다른 부흥을 소망하며

오늘 무기력에 빠진 교회를 깨워 일으키기 위해서는 언약도 처럼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용기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언약 백성으로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를 갈망하고 순수한 교회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또한 언약도들 처럼 목회와 삶 속에서 물질이나 가족, 학력, 지위, 경력, 명예 등 그 어떤 것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함을 몸소 실천하여야 한다. 어떠한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진리에 굳게 선 언약도와 같은 개혁주의 영성을 가진 능력있는 설교자가 필요하다. 이것이 침체된 교회를 살리는 방법이다.

부흥은 위대한 설교자를 통하여 일어나기도 한다. 부흥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 즉 존 위클리프, 윌리엄 틴데일, 존 낙스, 리처드 백스터, 존 칼빈,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로이드 존스 목사 등은 다 위대한 설교자들이다. 그들을 통하여 그 시대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언약도처럼 진리의 말씀으로 영혼을 일깨우며 담대히 외치는 신실한 설교자, 참된 목회자를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부흥은 교회가 언제나 추구해야 할 영적 건강의 비결이다.

왜 오늘날 언약도 처럼 순수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선포하는 참된 설교자들이 리바이벌 되지 않는가? 왜 이 세상 그 어떤 것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함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참된 목회자들과 참된 평신도들이 리바이벌 되지 않는가?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제2의 언약도가 필요하다. 언약도 영성을 가진 설교자들과 평신도들을 통하여 이 땅과 온 열방에 참된 부흥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 김현배 목사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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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2/13 [10:3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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