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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5.26 [07:56]
악의 비밀 (6)
거짓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정성민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하지 못한다. 정말 충격적인 발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 아니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학대하는 부모가 아주 많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부모가 나를 버렸다.” “수치심의 치유”라는 베스트셀러 작가, 존 브래드쇼는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자신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이 책을 내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수치심으로 말미암아 당신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도 망쳐놓았습니다. 

왜 이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학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자녀를 학대하게 된다. 자신의 자녀를 학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았던 학대와 상처를 자신의 자녀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무의식적인 반응일 것이다. 이러한 자녀 학대현상은 일반적인 부모들 가운데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거짓의 사람들에게서는 더욱 잔인하게 드러난다. 보통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나 가짜 거짓의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자녀를 학대한다. 그러기에 분명한 증거가 남게 된다. 그리고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거짓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체적인 학대보다는 정신적인 학대를 통해 자녀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학대를 받는 아이조차도 누가 자신을 학대했는지를 잘 모른다. 자녀에 대한 정신적인 학대가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인 학대는 자녀의 정신건강에 아주 치명적인 것이다. 결국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적인 인간으로 일어설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학대를 한 부모 자신조차도 원인을 다른데서 찾는다. 한마디로 이 아이가 왜 그러냐는 것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정신적인 학대를 하는 것일까? 정신적인 학대의 여러 가지 유형을 소개하자면, 차별대우, 욕구제한, 형제와 자매간의 이간, 정죄하기, 편 가르기 등이 있다. 이러한 정신적인 학대의 특징은 모두 비인격적이라는 것이다. 어려서 공평한 사랑을 느껴야 할 아이들에게 비인격적이고 차별적인 사랑은 아이들로 하여금 왜곡되고 비인격적인 인격을 형성하게 한다. 어린 아이들의 인생의 잣대와 기준은 오로지 부모밖에 없다. 그러기에 부모의 비인격적인 대우는 어린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흔히 청소년들이 타락하게 되면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은 청소년 타락의 제 1원인이며 직접적 원인은 바로 부모이다. 학교를 잘못 선택해서 그리고 친구를 잘못 만나서는 핑계이거나 간접적인 원인에 불과한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왜 감기에 걸리는가? 감기 바이러스를 핑계 댈 수도 있지만 가장 정확한 답은 면역성이 무너진 약골 체력 때문이다. 

정말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비인격적인 학대에 속수무책이다. 그냥 하얀 백지에 부모가 그림을 그리는 대로 그려진다. 어른이 되고 나서 망가진 자아상을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학대한 부모를 고소할 수도 없다. 그리고 문제는 자신도 그 학대받은 학대를 자신의 자식에게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말이 이러한 현상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거짓의 사람들의 자녀에 대한 정신적인 학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들의 사랑은 거짓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가 보기에도 이들은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랑을 받는 자식들은 자꾸 의기소침해지고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눈속임을 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위선적인 사랑을 받는 당사자는 괴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서게 된다. 자꾸 세상이 싫어지고 자신이 없어진다. 자꾸 손톱을 입으로 물어뜯게 된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지면서 어깨가 저절로 구부러진다. 그리고는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면서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진다. 때론 어딘가 손톱으로 쥐어뜯고 싶어진다. 머리를 파본다. 피가 나서 상처가 생긴다. 하지만 아물면 자신도 모르게 손톱으로 그 자리를 다시 뜯게 된다. 손톱에 피가 묻어난다. 저절로 한숨을 쉬면서 안되는데 생각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그때만큼은 왠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어쩌다 모기가 물리면 왠지 손톱으로 쥐어 파고 싶어진다. 쥐어 파고 나면 피가 흐른다. 그러면 딱쟁이가 생긴다. 그러면 다시 뜯어낸다. 그리고는 온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러한 현상은 신경증적인 어린이가 부모의 정신적인 학대에 반응하는 현상일 것이다. 또 다른 현상은 어린아이가 자꾸 밖을 나도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려고 구실을 만든다. 자신의 욕구를 집에서 채울 수 없기에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아 떠돌아다닌다. 아니면 방에 처박혀 컴퓨터나 책만 읽는 방콕(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일컫는 신세대 언어)족도 나오게 된다. 또 다른 유형은 아무 생각이 없이 명랑 하거나 지나치게 순종적인 아이들도 나온다. 아니면 과다한 식욕으로 먹을 것, 특별히 단것만을 찾아다니는 아이가 생긴다. 이와 같이 거짓 부모의 학대에 의한 자녀들의 반응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어떠한 정신적인 학대를 했단 말인가? 어린아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충격은 아마도 차별대우일 것이다. 보통 둘째들이 태어나면 첫째들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셋째가 태어나게 되면 둘째가 겪게 되는 현상이다. 보통 인간들은 비교대상이 있을 때에 가장 커다란 자극을 받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생이 태어났는데, 그 동생으로 인한 엄청난 압박은 어린아이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부모들은 이러한 위기 속에 있는 아이에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주기보다는 비웃고 조롱한다. 인간들이 어찌 그러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현실이다.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기는 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린아이는 필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바로 이때가 제 2의 거짓의 사람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이어 거짓의 사람이 되어줄 사람을 찾는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앞으로 계속해서 거짓의 사람으로 프로그램을 주입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바로 충격과 쇼크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에서 절명의 상처를 남기는 작업이다.

보통 둘째나 셋째가 태어나면,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나 소심한 사람들은 정신이 없어서 큰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질 못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소외되고 방치되어진다. 그러다가 미운오리새끼가 된다. 어쩌면 이는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물론 분별력이 있는 부모라면 큰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려고 애를 쓸 것이다. 물론 사랑을 빼앗긴 아이에겐 턱도 없이 부족한 관심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거짓의 사람과 가짜 거짓의 사람이다. 이들은 사랑을 빼앗긴 아이를 바라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학대하게 된다. 아니 사랑을 빼앗겨 슬픈 아이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괴롭힌다. 그것도 인격적으로 말이다. 마치 전혀 쓸모없는 아이가 집에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그리고 던지는 한마디의 말이 비수를 꼽는다. “ ” 갑자기 그 아이는 집을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이제부터 거짓의 부모의 철저한 유기(아이를 버림)와 학대가 철저하게 진행된다. 바로 후계자를 양성하는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반응이겠지만 “너도 나처럼 당해보아라”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계승되는 순간이다.

모든 심리학자들의 동일한 견해는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3년 동안 철저한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건강한 자의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동생이 3살도 되기 전에 태어난 아이들은 거짓의 부모로부터 더욱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고아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오히려 거짓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고아보다 더욱 불쌍할 수도 있다. 존 브래드쇼는 말한다.

사람은 버려지면 홀로 남게 된다. 하지만 버려짐-유기는 그들의 곁에 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 돌봐주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보다도 사람이 있으나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 것이 더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렇다. 거짓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정말 미치게 한다. 똑같은 자식인데 버려지고 차별대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인격적인 모멸감을 받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일이다. 이때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거짓 부모에게 인식되어지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이제 이들은 거짓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만이 살아갈 수 있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되어진다. 이러한 무기력한 상황에서 거짓 부모의 철저한 통제 교육이 실시되어진다. 이러한 거짓 부모의 교육을 엘리스 밀러는 “치명적인 독처럼 작용하는 교육”이라고 부른다. 이를 보게 되면,

첫째로 부모는 아이들의 지배자이다.

둘째로 부모는 마치 신처럼 뭐가 옳고 그른지 다 판단한다.

셋째로 아이들은 부모가 기분이 나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넷째로 아이들이 아닌 부모가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아이들이 가진 확신은 부모의 독단적인 권위에 위협으로 여겨진다.

여섯째로 아이들은 가능한 빨리 부모에 의해 고집이 깨지고 상처받아야 한다.

일곱째로 이 모든 일이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인지하지 못하는 아주 어릴 때에 행해져 서 나중에 부모에게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자신이 거짓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잘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너무나 어릴 적에 벌어진 일들이기에 그리고 너무나 상처를 아름답게 포장하기에 모두 다 속는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학대한다 해도 그 원인이 자기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제 포장된 거짓 사랑이 거짓 부모와 자식사이를 매꾸게 된다. 하지만 자식 안에 스며든 수치감과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스스로 독립할 수 없는 부모를 의존해야만 하는 성인아이가 되어버린다. 밀러에 의하면,

이들은 부모로부터 떨어지지 못한다. 그들은 거짓 관계에 묶여 있어 부모가 그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부모와의 관계 가운데 휘말려 제자리를 못 찾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잘못된 관계는 나중에 있을 인간관계까지 파급된다. 거짓된 관계에 매여 있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으려 하고 또 아이들에게까지 인정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데 이는 그들조차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짓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학대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는 그 학대를 사랑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킨다. 바로 학대가 사랑으로 둔갑하는 것이 거짓 부모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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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1/05 [12:57]  최종편집: ⓒ newspowe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왕같은 제사장 하나님의 자녀. 사라 10/01/10 [23:46]
사단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체성을 잃어 버리는것일 것이다.

가정파괴가 전략 일것이다.가정공동체가 회복 되어야한다.

가정안에 주님이 함께 해야한다.사랑의 공동체로 믿음안에 있어야한다.

세상은 악한영과 공중권세 잡은자가 주관한다.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해야 이길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를 온전히 주님께 드려야한다.

말씀으로 깨어 있고 분별해야만 사명을 감당할수 있다.

믿고 신뢰하는 사랑의 공동체는 주님이 함께 할때에야 가능하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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