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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3.26 [22:50]
자살 방지를 위한 열등감 극복
열등감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잊고 지낼 뿐이다
 
안형식

인간의 필연적 감정의 존재는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이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잊고 지낼 뿐이다. 생체는 아프면 아픈 곳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고 그래서 더욱 통증을 감각하게 되어 있는 구조를 가졌다. 그러나 정신의 질병은 육체적인 고통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자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열등감은  수면 아래 잠복하게 된다. 잠복해 있던 열등감은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될 때 수면 위로 부상하여 괴로움을 준다.

정신분석학의 거두인 프로이드를 필두로 많은 학자들이 열등감의 정체와 극복에 대해 연구해 왔다. 심리학자인 말츠(dr. maxwell maltz)는 미국사회의 95% 이상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긍정적 자아형상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룩한 자아형상이 실수나 실패로 인해 깨졌을 경우 어떤 방법으로 회복하는지에 대한 이론은 내놓지 않았다.

이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지그지글라가 내놓은 벼룩훈련이 있다. 벼룩훈련은 환경요인으로부터 오는 생태적인 열등감을 극복하기에 충분하다. 이에 더하여 자신의 자아형상(self-image)이 실수나 실패로 인해 깨졌을 경우 다시 회복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한 이론을 제공한다.

벼룩 훈련이란, 벼룩을 잡아 병 속에 잡아넣고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즉, 벼룩을 잡아 병 속에 넣으면 벼룩은 병 속에서 뛰쳐나오기 위하여 높이 뛴다. 이 병에 뚜껑을 닫아 놓는다. 그러면 병 안에 들어 있는 벼룩은 높이뛰기를 하다가 병뚜껑에 부딪치게 되어 있는데 골병이 들 즈음이면, 높이뛰기를 해도 뚜껑 높이만큼만 뛰게 된다. 그 뒤부터는 병뚜껑을 열어 놓아도 결코 그 병을 뛰어 나오지 못한다.

지그지글라는 인간을 벼룩에 비유하면서 도전을 준다. 사람을 벼룩에 비유하고 병을 환경에 비유하여 훈련이라는 적응력에 적용시킨 벼룩 훈련은, 너는 환경을 극복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그렇지 못하면 벼룩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도전한다. 벼룩으로 남아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유리병을 박차고 세상으로 뛰어 나오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마치 호랑이가 어린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 뜨려 놓고 기어 올라오는 새끼만 이끌고 가서 양육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벼룩훈련은 자존심에 자극과 도전을 주어 인간을 정상으로 끌어 올리는 맹수적인 양육의 조건과 맥을 같이 한다.

“정상에서 만납시다”의 저자 지그지글라는 열등감이 문제가 아니라 정상에 서고 못 서느냐가 문제라는 등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끌고 간다. 정상으로 치고 올라다가 보면 어디에 도달했던지 그만큼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다 보면 생태적 환경이나 정신적 육체적 열등감은 아무 것도 아니다. 치고 올라다가 보면 그만큼 되어 있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과 동기를 부여 받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 읽는 동안에 손으로 무릎을 칠 정도로 도전이 되었다면 이후는 읽을 필요가 없으니 이 글을 덮고 정상에 오르기 위한 벼룩훈련을 시도하라.

제1장 열등감에 대한 진단 

미국의 심리학자 말츠(dr. maxwell maltz)는 미국 사회의 95% 정도의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약해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해법을 내 놓기를 무력감에서 약해진 자아가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는 긍정적인 자아 형상 (self-image)을 이룸으로 무력감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말츠는 이것을  "더 나은 삶의 열쇠"라고 말한다. 

열등감은 삶의 전 영역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며 뒤떨어진다는 의식으로 상실감 혹은 무력감으로 나타나며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면 자기학대로 발전된다. 열등감이 발전하면 조울증으로 전이된다. 이는 평소의 습관적인 말투와도 관련이 있다. "배고파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는 말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죽겠다"라는 자포자기적인 용어는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죽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빈말이라도 “죽겠다”라는 말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자신감에 대한 상실로 풀이 되어진다. 용어 사용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미 열등감은, 폭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과거 양반과 상놈 사회에서는 신분의 벽을 도무지 허물 수 없었기 때문에 상놈 사회의 열등감은 극에 달했다. 그 열등감을 어찌할 수가 없어 양반의 신분을 돈 주고 사서 가짜 양반이 되었다. 반대로 양반은 상놈의 근육질에서 열등감을 느끼니 선비는 근육질이 없고 샌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선비 기준을 세워 놓고 근육질을 야만인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로서 조선시대 야사를 보면, 안방  마님은 어떤 남자가 진짜 양반인지 알아 모셨다는 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근육질이야말로 마님에게 있어서는 진짜 양반이었다. 

어느 나라이든 인종에 따라 열등의식은 다 가지고 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에 대하여 열등의식의 도가 지나쳐 사대주의로 발전되었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역사나, 근대에 있어서 강대국들에 대한 사대주의는 어쩌면 한국인들의 의식의 뿌리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이규태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자신이 훈련소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미제 철모와 국산 철모"에 대한 추억을 말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한국인의 열등감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있다. 

훈련소에서 집합이 있을 때에 철모를 쓰고 나가야 하는데, 훈련소 측에서 의도적으로 그러했는지는 모르나 몽땅 미제 철모인데 유독 다섯 개만 국산 철모였다. 결국 다섯 명은 국산 철모를 써야만 했는데 동작이 굼뜬 자신은 항상 국산 철모를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산 철모를 쓰고 나가면 교관은 그때마다 어김없이 총 개머리 판으로 머리통을 "뻥" 소리가 나도록 내려쳤고, 동료들은 국산 철모를 쓰고 있는 자신들을 고문관으로 불렀다고 했다. 이어서 씨는 이것은 국산은 나쁘고 미제는 좋다는 사대주의적 잠재의식으로서 열등감의 소산이라고 뼈아프게 지적하였다. 

그러면 오늘의 사회구조 안에서 발생되는 열등감은 없을까? 사회는 질서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사회는 질서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일정한 구조를 갖추게 되는데, 여기에서 필연적인 계급이 나오게 되어 있다. 계급에 따른 열등감은 필연적인 열등감이나 또 다른 발전의 계기가 되곤 한다. 계급 사회의 생리에 반발하며 뛰쳐나가 자신의 사업체를 세우고 성공한 오너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제2장 열등감의 정체


1. 사전적인 개념 


동아세계대백과 사전에서는 열등감의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열등감이란 심신의 결함에서 오는 특유한 감정, 즉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이다." 그리고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응어리 맺히는 것을 열등감 (inferioriticomplex) 라고 말한다. 

2. 심리학적 개념에서의 위치 

두란노의 소책자 “열등감”에서 이훈구는 열등감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정신 분석 학자들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열등감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발생하는 인간의 필연적인 감정이다." 라고 정의하며 심리학자들은 "자기모멸이나 자기 정죄"로 정의하고 있다. 

정신의학자 alfred adler는 인간과 열등감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우리를 몰아대는 열등감을 소유하는 것을 뜻한다."

아들러의 정의에 의하면 인간이라면 인간의 한계에서 나오는 불가항력적인 요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열등감을 소유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산물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간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심리학에서는 열등감의 문제를 심각하고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세 가지 중요한 용어를 단계별로 구분 사용하여 열등감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를 좀 짚어 보자.

1단계는 자아 개념 (self-concept)의 단계, 2단계는 자아 형상 (self-image)의 단계, 3단계는 자존감 (self-esteem)의 단계이다. 

자아 개념과 자아 형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세계이며 자신이 형성한 정체성(self-identity)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펙(specification)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세계 속에 담겨져 있는 생각과 태도와 감정들을 자신의 방법으로 발송하게 되어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형상화된 이미지를 발송하면 상대는 응답한다. 이때에 응답되어진 신호가 우호적이며 자신의 존재에 만족할만한 응답일 때에는 자존감이 생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되었을 때에는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열등감이 생기는 때는 대략 언제부터일까? 인간은 유년기를 거치면서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점점 선명해지고 사춘기를 경험하면서부터 선과 악에 연루된 타인의 존재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타인의 존재가치에 대하여 평가할 때에는 반드시 자신과 비교하여 자신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평가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어떤 대상을 모델로 삼게 되고 자신의 성격과 행동은 모델을 중심하여 자신 속에 형상화된다. 

예를 들어보자. 중, 고교 학생들 중에서 많은 학생들이 장래 희망을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항상 접하게 되는 학교 선생님은 모델로서 충분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자라면 0 0 0 선생님 같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의 형상 속에 선생님을 이미지화 시켜 놓는다. 그래서 이들은 그 선생님이 하라는 것이면 힘을 다해 하게 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점점 만나는 대상이 늘어나고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상대가 생기게 되면서 당장에 이룰 수 없는 선생님에 대한 꿈은 접어 두고 모방할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된다. 모방할 수 있는 상대는 친구이거나 이성이거나 해서 자신의 세계에 포함시킬 수 있는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상대방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상대를 인정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림으로 상호교감(communication)이 이루어진다. 상호교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동질성이 확인되었다는 말이며 동시에 자존감은 상승한다. 반대로 상호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열등감이 형성된다. 

열등감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은 타인에 의하여 직, 간접으로 나타난다. 상대방에 대하여 집착할 정도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도 상대방에 의해 거부당한다면 열등감의 무게도 상당하다. 반대로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상대라면 비례하여 열등감은 효력을 상실한다. 상호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열등감은, 자신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믿게 만들며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부모, 형제, 환경 등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조건에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여건에 대하여 열등감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여건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골몰하게 된다. 

그러나 자존감은 개인이 자신의 가치, 적성, 그리고 자신의 중요성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아 개념과 자아 형상이 자기표현 (self-description) 으로 나타나고, 자존감은 자기 평가 (self-evaluation)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서로 반복하여 나타남으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느끼는지에 대하여 삶의 전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열등감은 골이 깊고 폭 넓게 우리들 인생의 전 영역에 영향을 끼치게 됨으로, 상상할 수 없는 큰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괴심으로 발전하게 내버려둔다면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열등감은 주목되고 있다. 

3. 열등감에 대한 성경의 실례 

열등감에 대한 사례로서 처음 등장시킬 수 있는 성경의 인물로서는 가인을 꼽을 수 있겠다. 창세기 4장에 나오고 있는 가인과 아벨의 사건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 여기에서 가인의 제물이 하나님께로부터 거절당하자 가인은 분하여 견디지 못하고 동생인 아벨을 척살 하고야 만다. 가인은 먼저 아벨에게 자신의 분함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책망과 경고를 아벨에게 다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난 뒤에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에는 분명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 것이고 가인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따라서 결과에 초점을 두지 않고 동기에 초점을 둔다면, 그 동안에 가인은 열등감에 시달리며 아벨을 계속 주시하고, 시기하다가 결국에는 들에서 아벨을 만나 죽이고 말았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상은 가인이 살의를 품고 아벨을 찾아가서 죽였다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겠다. 형으로서 동생보다 못하다는 열등감, 상대적으로 하나님께 덜 인정받았다는 열등감은, 가인에게 있어서 자신을 상실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을 상실하기보다는 아벨을 상실시켜 버리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성경은 가인과 함께 또 다른 인류의 시작을 말씀하고, 가인은 자신이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 속에 던져졌다. 

또, 구약에 나오는 사울 왕은 열등감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울 왕은 떠오르는 별인 다윗에게 대하여 아주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 비하여 신앙이 깊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다윗, 자신에 비하여 용맹하며 전쟁에 능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었고 자신 보다 인격 면에서 훌륭하여 온 국민의 신망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다윗에 대하여, 사울 왕은 심각한 위협과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울 왕의 열등감은 골의 깊이와 폭이 넓어져 감에 따라 자신을 견디지 못하여 했으며 결국에는 악신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말았다. 이를 현대 의학에서 진단을 내린다면 아마도 중증의 조울증 (심각한 열등감) 으로 진단을 내릴 것으로 믿어진다. 결국 사울 왕도 가인처럼 다윗을 척살 하려고 계획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그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사울 왕은 길보아 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삼상 18장 - 31장). 

결국 열등감이란 남 보다 못하다는 자아의식이다. 그렇다면 이 열등감은 어떤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는가? 이를 구체적 사례별로 구분하여 보자.  

제3장 열등감의 원인 분석 

열등감은 유년기에 잘못된 교육을 받았거나,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강한 욕구불만을 느꼈거나,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다. 이렇게 나타나는 열등감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기형이나 병에 의한 장애의 경우와 절름발이, 대머리, 언챙이, 안면 상처, 말더듬이 등의 신체적인 것과 학교 성적이 나쁘다 혹은 운동을 못한다. 미인이 못 된다 등의 정신적인 경우, 그리고 학력이나 인종, 성별, 신분에 의한 차별로 나타나는 열등감과 문화, 빈곤 등의 사회적인 경우가 살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 세분하고 근원적인 원인을 추적해 본다면 의미가 깊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는 뒤에 가서 효과적인 예방 및 치유책에 기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몇 가지로 그 원인을 지적할 수 있겠는데, 

1. 잘못된 신학의 영향 

인간은 무가치한 존재이며, 죄는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켜서 결국 죄인들은 지옥이나 메우는 존재밖에 되지 못한다고 했을 때에, 인간은 심각한 열등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이 영역은 인간의 한계 저 너머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말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삼는 것은, 그러면 기독교는 의인들만을 위한 종교인가? 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의 영역밖에 있던 죄의 문제의 해결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내게 임하여 온 것으로 확인(체험)될 때에 비로소 복음의 효력과 가치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하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다고 했을 때에 이미 그것은 복음이요, 하나님의 나라였다. 로마 치하에 있던 유대 민족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의 극치였다. 죄인을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데 더 이상의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 보수 교단들은 예수께서 하지도 않았던 일을 복음을 빌어 하고 있다. 한 번 보라. 교회에서 집사 이상의 직분자들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를, 이들은 새신자들에 대하여 아주 고압적인 텃세를 일삼고 있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젖 좀 더 먹고 오라"는 식으로 새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자신들이 다 차지하고 있으면서 시어머니 행세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말이 새신자이지 세상 경력으로 보나 지위나 입장으로 볼 때 꿀릴 것 없는 새신자들은 그 꼴을 참아 낼 수 없다. 이들이 곧 바로 뛰쳐나가서는 하는 말이 "자기들만의 교회", "죄인은 필요 없다는 식의 거만한 교인들"이라고 비난한다. 무슨, 교회의 교자도 모르는 사람이 핍박하는 것이 아니다. 잘 모르기는 해도 지금 전도가 되어 새신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미 어린 시절에 교회에 나왔다가 텃세에 의한 열등감을 경험하고 교회를 방학했던 사람들이 더 많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인들이 지적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 오히려 복음을 위한 핍박 정도로 몰아 부치며 더욱 더 높은 담장을 쌓아 반격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교회, 혹은 뜻이 있는 목사들과 장로들이 앞장서서 개인의 은사를 계발하여 주고 개인의 능력이나 성격 그리고 창조성을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하겠다. 복음은 듣는 자가 들어주어야만 복음이 된다. 들을 자는 그만큼 귀가 열려지지 못했는데, 마치 갓난아이에게 귀찮다고 화장실 가서 볼일을 보라고 하는 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설교 강단은 죄인을 위하여 설교가 준비되어야 하고, 의인들을 위하여는 성결이 강조된 성경 공부나 제자 훈련 등으로 계획되어 있어야 바람직하다. 

2. 죄의식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그와 더불어 우리들에게 옳고 그름의 표준으로 선악과에 대해 말씀하심으로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있어야 함을 이미 말씀하셨다. 이것을 따 먹지 말라고 하셨음으로 따 먹지 않는 것이 선이며, 따 먹는 것은 악이다. 선과 악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의 기쁨을 빼앗으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행복과 사랑과 평안을 누리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일들을 범할 때, 죄를 짓는 것이며 그 결과로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을 느끼게 되어 있다. 이것들은 곧장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이로부터 오는 열등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더불어 자존감은 붕괴된다. 죄의식의 문제는 상당히 오랜 문제요, 인간의 숙명적인 문제이다.

성경은 분명하게도 죄사함을 통해 죄의식과 양심의 문제까지도 날려 버렸다고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였다면 그것이 무슨 죄이든 간에 죄가 씻겨 졌음을 확실히 믿고 죄의식과 양심의 찔림을 떨쳐 버려야 한다. 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경우 죄의식과 양심의 찔림이 열등감이 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사함에 있다. 성경이 복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의식과 양심의 찔림으로 인해 인간의 정체성이 망가지는 망가짐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3. 과거의 경험 

이 사회는 성공을 중요시하는 사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거부와 비판을 경험한다는 것은 참아내기 힘든 일이다.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게 될 때에 "나는 하찮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나는 실수투성이 이다."라는 자포자기적인 자기 딜렘마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강조를 하여도 자신의 실수가 거듭될 때,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많이 있는 사람이 과거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4. 부모 - 자녀 관계  

 대체로 이 경우에서 열등감과 열등한 자존감이 생겨진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 있어서 자존감은 어릴 때 이미 형성된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보통, 3살 이전 혹은 6살 이전에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특히 부모가 자녀들이 어릴 경우에는 저들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아직도 형성되지 못한 자기들의 세계가 있음을 부모는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실(ciecil)은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다루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1) 부모가 자녀에게 비현실적인 기준과 목표를 설정해 줄 경우 
2) 자녀가 아마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부모가 표현할 경우 
3) 칭찬하고 격려하고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일이 드문 경우 
4) 계속적으로 가혹한 벌을 줄 경우 
5) 아이들을 귀찮아하고 바보이고, 무능력하다고 인정해 버릴 경우 
6) 귀여워해 주거나 안아 주거나 애정이 담긴 신체적 접촉을 해주지 않을 경우 
7) 후에 아이들이 자립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을 지배하거나 과잉보호할 경우 

이러한 경우에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심각한 열등감이 유발되어 열등아가 되어 버리고 만다. 특히 부모의 이혼은 자녀들에게 심각한 열등감을 심어 주게 된다. 

5. 사회적 영향

사회적 구조에서는 성공한 사람만이 조명을 받게 되어 있다. 대중매체에 의해 특정적으로 조명되는 시대적 가치는 외모지상주의 성공지상주의를 꿈꾸게 만든다. 가정, 학교, 정부, 사회 환경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가치관의 잣대는 외모, 교육, 재력, 권력, 명예에 편중되어 있으며 이 잣대에 의해 계층이 만들어진다. 이 잣대에 자신의 스펙을 대입하여 구체적이며 보편적인 자신의 자존감을 측정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자존감을 얻지 못했을 경우에 열등감은 스물 스물 고개를 쳐들고 나오게 되어 있다.

사회구조에서 만들어진 계층은 신분의 벽을 만들고 이는 과거 양반과 상놈 시대를 능가하는 절대적 구조이다. 절대적 구조를 뛰어 넘기 위해 대중매체에서 만들어지는 스타를 꿈꾸나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스타가 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유독 한국 사회에 신분상승을 꿈꾸는 스타와 신데렐라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신분상승이 어렵다는 말과 동시에 쉽게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퀘스트(guest)는 또 다른 이유로 "자신의 현재의 모습이 자신이 세운 기준에 현저히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을 무가치하게 평가하며 다른 사람에 비교하여 열등한 자존감과 열등감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자기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열등감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되면 상당히 위험하다. 이렇게 생성된 열등감은 그 후유증이 아주 심각한 정도로 그 영향을 개인과 사회에 미치기 때문이다.

제4장 열등감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1. 긍정적인 측면 

때로는 열등감 때문에 자기 계발 욕구를 불러일으킴으로 성공한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열등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실례로 삼중고의 고통 속에서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 훌륭한 웅변가가 된 데모스테네스나 헬렌 켈러 등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단테는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실연을 당하여 자존심이 상하고, 열등감에 젖어 있었으나 복수심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단테는 훌륭한 인물이 되어서 그녀를 후회하게 만든다는 복수심으로 시를 썼다. 이것이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노의 에너지는 오히려 열등감을 정복해 버리는 또 다른 해결점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열등감은 오히려 인간에게 성공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 주고, 그 동기를 유발해 주는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아들러는 "인간이 본래 남 보다 더 우월하게 태어나면 오히려 자기 계발 욕구가 저하되어 열등감을 가진 사람보다 더 뒤 처진다."고 말함으로 열등감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2. 부정적인 측면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건대,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극복에 성공하여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열등감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떤 부류의 열등감 소유자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시키거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하여 허세를 부리거나 주위의 시선을 집중시키려고 이상한 복장이나 행동, 혹은 환상적인 영웅심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도 있다. 우리들 주위의 과대망상증 환자들은 대부분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로 보아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의 정신질환자 (귀신들린 자)를 제외한다면 거의 모두가 열등감의 진행으로 말미암아 정신 질환으로 발전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점에 대하여 정신분석으로 많은 연구와 결과물을 내놓아 이 방면으로 유명한 엘리슨(ellison)은 다음과 같이 열등감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사례별로 열거했다.  

"그것은 고립감, 자신감의 결여, 사회적 격리, 비사교성, 의존적 성격, 자포자기, 고립감에 대한 두려움, 불안정, 질투(비난 의식), 대인 관계의 결여, 자기비판, 권위 의식에 기댐, 의기소침, 용서를 못함, 수용성의 부족,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투덜거리는 행위 등이다." 


3. 열등감의 결과 

열등감의 결과는 우리의 생활을 패배와 실패로 이끌어 간다. 사탄은 열등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키도록, 그리고 사물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 절하하게 함으로써 동기 유발의 근원을 차단한다. 따라서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하나님께서 개인과 집단에게 비춰 주시는 비젼과 꿈을 보지 못하게 된다. 더 깊어지면 자신을 쓸데없는 존재로 비하시키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서 철저한 패배자로 남게 된다. 이는 곧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패배 혹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심장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열등감은 인간의 창의력을 누르고 비틀어서 결국은 만신창이로 만든다. 이어 자신을 극도로 혐오하고 증오하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에  자신을 던짐으로 복수하게 된다. 자살이다.

이처럼 열등감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더 나아가 사회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인격을 부수어 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남긴다. 이것이야말로 열등감의 심각한 파괴력이다. 

카스터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폐쇄성과 그 결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성공할 수 없다는 강박 관념에 빠져서 무슨 일이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에게서는 리더십을 발견할 수 없고 중요한 업적과는 담을 쌓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나 남이 전진하는 것에도 걸림돌이 되기 일쑤고 결국은 자신을 증오함으로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

종교적 실존으로 19세기 철학의 귀재, 실존주의 철학자로 불린 키에르케골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통해 인간이 자살에 도달하기까지에는 극도의 절망감에 휩싸이게 되고 그 절망이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고 했다. 열등감이 절망감으로 전이되게 되면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구원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자비하고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주는 열등감에서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인가?

제5장 열등감 극복을 위한 해결책 

1절 예방책 

1. 사명감 확인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재주를 가지고 이 땅에 보내진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한다. 어떤 사람이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무가치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인도 때에 맞게 보내셨다 하셨다.


자신의 사명감을 확인한 사람은 그 사명을 완수하기까지에는 결코 죽을 수 없으며 열등감에 빠져 있을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문제는 사명감을 확인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사명감은 신적인 것과 자존적인 것 두 가지로 구분된다. 궁극적으로 사명감은 자신이 깨닫게 되어 있다. 남이 아무리 권해 주어도 자신이 사명감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사람이 편할 때에는 사명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다급할 때, 절대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고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 선다. 이때에 자신의 사명감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사명감이다.

그렇다고 비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사명감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개그맨은 자신의 던져주는 웃음거리로 시청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명자로서의 삶을 산다. 비록 개그소재발굴에 애를 먹기는 해도 지독스러운 치열함으로 개그소재를 발굴해 내고 그것으로 시청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어디 개그맨 뿐이겠는가. 청소미화원도 자신이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닦으며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악취와 맞서 싸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사명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열등감이나 절망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지극히 초보적인 작업으로 사명감을 부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2. 종교적 실존을 위한 성경의 근거   

사도 바울은 당대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특권층이었다.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취득한 유대 전체를 통 털어도 발견되지 않는 최상위층의 특권층이었다. 그런 그가 낙타의 털에서 실을 자아내 그 실로 천막을 기우는 일을 하며 먹고 살았다는 기록은  내 현재적 삶이 얼마나 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해도 불평할 말을 잃게 만든다. 바울은 네가 가지고 있는 현재를 족한 줄로 알고 물질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경고와 함께 “자족의 미”를 말씀했다. 오히려 사도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엄명하며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권면했다. (딤전 6:18, 19)

아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용할 양식으로 채워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만약 부하게 되면 부를 의지하고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자만할까 두렵고 가난하여 일용할 양식이 없으면 도적질 할까 두렵기 때문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용할 양식만 채워 달라고 간구했다. (잠언 30:7~9)

3. 꿈과 감성을 일깨워 행복감을 주어야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 박사는 정보화 시대는 갔고 미래사회가 도래했음을 말하며 미래사회는 꿈과 감성을 자극하여 행복감을 만들어 주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경제를 창출하려면 꿈과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야 경제가 창출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덴마크는 어린이들에게 스토리텔링을 가르치는 것으로 미래를 대비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드스토밍으로 경제를 창출하는 시대는 갔고 소프트스토밍으로 꿈과 감성을 자극해야 경제가 창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옌센의 독특한 주장은 제3 세계를 통해 막스 웨버가 주장했던 “단절의 시대”, “대화의 단절”과 대비된 독특한 주장으로 막스 웨버의 주장을 단번에 뒤집는 해법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기실 현 인류는 첨단의 정보화 시대에서 첨예한 경쟁체제로 돌입되어 휴머니티를 상실했다.

세계의 주요 경쟁국들은 첨단의 정보화를 통해 입수된 정보를 토대로 원자재 값을 상승시켜 왔고 이는 경쟁에서 도태된 빈국을 압살하는 형태까지 진전되었다. 이로 인해 세계 인구의 1/3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은 이것들이 원인이 되어 세계의 종말을 불러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때에 맞춰 나온 옌센의 미래학적 행복론은 첨단 제품의 경쟁이나 첨단 무기개발의 경쟁으로 경제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국가나 도시에 관광객이 몰리는 현상으로 경제를 창출해 내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결국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과 평화에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행복은 사명감을 깨닫는 것과 같아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에 행복해지게 되어 있다. 행복감은 감성이며 행복을 느낄 때에 꿈이 생긴다.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듣고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 행복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때, 나도 행복하게 해 준 당신이 고마워 라고 답해 줄 수 있는 근거는 두 사람이 얽혀 있는 스토리에 있다. 꿈과 감성을 자극해 줄 수 있는 행복한 이야기. 휴머니티를 잃어버린 현대에서 그 어느 것보다 더 절실하고 시급하다.

지금이라도 서로에게 당신이 있어 행복해 고마워.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고 시각을 지체하지 말고 지금 속히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들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보배가 되었다. (고후 4:7)

4. 교회 공동체 훈련을 통한 자기 존재 확인 

사실 우리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무조건 공동체 훈련이나 혹은 공동체를 무슨 만병 통치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에 대하여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공동체 훈련이나 참여가 심심찮게 거론되는 것은 또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동체 훈련의 효과는 열등감 해소에 상당한 효과를 준다. 이것은 예방의 차원과 함께 치료의 효과도 동시에 거두게 되는데, 그 원인은 공동체 안에 들어 온 열등 인들이 서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도 저들과 똑같은 정도의 사람이지, 무슨 괴물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동질성 확인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이루어진 동질성 확인은 다음 단계로 전이되게 되는데, 이 단계는 "그렇다면 나도 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는 가능성으로 발전되고 결국 열등감은 해소되고 만다는 논리이다.  

 이렇게 하여 열등감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그 동안 억눌려 있던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해방감을 맛보게 되며 "변화 받은 새 삶"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공동체 훈련이란 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고 기도로 준비되어야 가장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사료된다. 

5. 자녀 지도를 통한 예방책 

자존감의 문제는 대개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예방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가정이다. 부모님에게서 사랑과 화목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는 법과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자녀는 견실하여 지고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점에 있어서 김상복 교수는 지난 학기 초에 있었던 리더십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 점이 인상 깊다. 리더십에 있어서 지도자의 자격 중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지도자 항목이다.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람을 아끼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고 역설한 점이 상당히 가슴에 남는다. 

부모님이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르치고 대화할 때,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겨 주시고 아끼셨는지에 대하여 가르쳐지게 됨으로 자녀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 가치와 함께 타인들의 존재 가치에 크게 가치를 두게 될 것이다. 결국 사랑은 허다한 죄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자존감과 함께 열등감이라는 괴물을 쫓아내고야 만다. 

2절 치료책 

만약 예방이 없는 상태에서 열등감에 빠져든 경우 - 참으로 목회자들은 이러한 교인들을 많이도 만나게 된다 - 에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자괴심으로 장래가 멍든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찾아 줄 수 있겠는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고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1. 사탄에 의한 정신적 침투

먼저 우리는 열등감이 인간들 내부의 문제가 될 수 있을망정,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디모데후서 1:7을 통하여 계시하시는 말씀을 보면, 우리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앞에서도 살펴 본 바 있는데 "두려워하는 마음은" 열등감의 대표적 감정이다. 따라서 치료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점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겠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쫓아 내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패배 의식을 점점 고질화시키는 열등감은 실상 사탄이 우리들에게 주는 치명적인 독화살이다. 사탄은 욥에게 달려들어 그를 제압하여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욥기1장, 2장 참고) 그러나 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신앙으로 견디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심으로 이전보다 갑절의 삶을 살았다 (욥기 43장 이하). 

사탄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자 스스로 자신을 높이다가 결국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말았다. 사탄은 이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걸작인 인간들에게 내려 와서 불순종하도록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꾀었고 죄인의 첫 아들인 가인은 열등감으로 인하여 동생을 때려죽이고 말았다. 이후 인간은 계속하여 열등감에 시달려 왔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오성춘 교수는 상담학적 차원에서 환영받을 만한 치유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도록 한다. 

2. 오성춘 교수의 치료법


1) 오래 참는 사랑으로 계속적으로 신실하게 대하여 주고 용납하여 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게 해 준다. 

2) 인간의 가치와 겸손에 대하여 성서적인 관심을 함께 나누며, 이해시켜 준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겸허히 살펴 볼 수 있는 훈련을 시킨다. 

4) 기대와 목표 그리고 우선순위를 재검토 할 수 있도록 격려하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고무해 준다.

특히 우리는 치유책에 대하여 8주 동안의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집중 연구하였다. 투입되는 성경 공부는 열등감에 대한 성경적 치유책이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를 권한다. 


결론 

열등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보면 그 처방도 단숨에 고치겠다고 덤비는 것은 금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가치가 지극히 소중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만들되,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자화상을 만들어야만 한다. 비록 나의 모습이 약하고 허물투성이라고 해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납되어진 존재임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자요,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놀라운 현실들, 나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엄청난 현실이 그 증거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분명함이 확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열등감에 시달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들을 그 열등감으로부터 구출해 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다시금 헬렌 켈러나 단테의 일어섬과 옥중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만 요셉을 본보기로 삼아야겠다. 사도 바울의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본문에서 언급한 벼룩 훈련은 상징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 발자국이라도 걸어 보겠다고 목발에 의지하여 자신의 전 체중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일어서는 재활자들의 용트림이요, 단발마적인 외침이다.  

 자기 자신도 포기한 사람이라면 누가 그 사람을 위하여 도울 수 있겠으며 대신 훈련을 받아 줄 수 있겠는가? 현 시대는 너무나 조급하고 포기가 빠르다. 젊은이들을 보아도 그렇고, 연조가 꽤 깊은 분들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또 쉽사리 포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아주 위대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도 귀한 선물들을 아끼지 않고 선사해 주었던 발명가 에디슨처럼 그렇게 일어서는 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본고는 살펴 졌고 열등감에 접근되었으며 마침내 벼룩 훈련을 찾아내었다. 

환경의 병을, 재물의 병을, 가정의 불운이라는 장애의 병을 뛰쳐나오기 위하여 외로운 벼룩 훈련가가 되어 뛰고, 또 뛰고 있노라면 능력 주시는 분께서 마침내 운명이라는 뚜껑을 열어 재껴 버리실 것이다. 그 때에 우리는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위에 계신 우리들의 아버지를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힘껏 나팔을 불 것이다. 

"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 12)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참 고 문 헌 


1. 사전류 

 동아원색 세계대백과. [열등감]항목, 서울:동아출판사, 1982. 

2. 단행본 

1) 오성춘 외. [손안에 책] 1권, "열등감" 서울:두란노, 1990. 

2) 옥한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서울:두란노, 1992. 

3) dan custer. [정신력의 기적] 안정효 역, 서울:삼일서적, 1988. 

4) david a. seamands. [상한 감정의 치유] 송헌복 역, 서울:두란노, 1986. 

5) gary r. collins. [크리스챤 카운셀링] 피현희 이해연 역, 서울:두란노, 1986. 
6) 지그지글라. [정상에서 만납시다] 김동일 역, 서울:대일서관, 1982. 

7) joan loyd guest. [자존감] 변순이 역, 서울:한국기독학생출판부, 1990. 

8) w.j. 맥브라이드. [열등감과 공포심은 이렇게 없애라] 최영진 역,  

 서울:평단문화사, 1992. 

3. 원어 

) ciecil g.osborne. the art of learning to love your self grand 

rapids,1976. 


2) craig w.ellison. self-esteem farmington hills, 1976. 

3) maxel malts. psychocybernetics new york, 1968. 


4. 강의노트 

김상복. [지도자리더쉽]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1993년 봄학기




목사, 작가, 한국기독교목회자협회 대표, 한국학술재단 학술연구자, 정책비평가, 뉴스타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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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0/04 [15:1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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