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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이호문 목사] “꿈을 심어 준 한 마디"
이호문 목사-인천 숭의교회 원로
 
뉴스파워   기사입력  2022/10/05 [08:14]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이호문 감독     ©뉴스파워

 

목사님, 꿈이 있어 보입니다.”

첫 대면에 김준곤 목사님께서 하선 첫 말씀은 30여 년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목사님의 이 한마디는 제게 큰 꿈을 갖게 했습니다. 또한 오늘의 숭의교회를 일구고 대형집회를 인도하면서 부흥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김준곤 목사님은 제게 아주 특별하신 분입니다.

 

19718, 대전에서 1만여 명이 참석했던 민족복음화요원훈련 집회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소서라는 광고를 보고 매료되어 훈련에 참석하였고 이를 계기로 많은 은혜를 받고, 목사님을 직접 뵙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생각지도 않았던 미국을 다녀오게 되었고, 제 꿈은 점점 확실하고, 견고해졌습니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대회와 1974년 엑스플로 대회 등 대형 성회 때 저는 목사님 밑에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지속해서 저를 불러 일을 시키셨고,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CCC를 통한 훈련은 당시 100여 명 남짓 되는 숭의교회를 오늘날 6만여 명의 교회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를 요소요소에서 활동하는 막강한 인물로 길러내셨습니다. ‘배움이 깊은 사람을 훈련하면 복음화의 영향력은 그만큼 더 커진다.’라고 하시며 대학생 훈련에 열정을 쏟으셨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을 누구보다 감사하게 여기셨고,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경제성장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라 하시던 목사님. 1958CCC를 설립하신 이래 민족복 음화와 세계 선교에 이바지해 온 그 업적은 오래도록 후손들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형님처럼, 작은아버지처럼 오늘까지 섬겨왔는데 흘러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합니다. 한국 교계를 위해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을 텐데, 목사님과 같은 분 지 한두 분만 더 계셨어도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을 앞당길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남기신 업적이 너무 크기에, 저희가 배운 것이 너무 많기에 그나마 위로받습니다. 우리를 매료시켰던 그 설교만큼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호문 목사는 인천숭의교회 원로 목사로, 1938년 경북 월성군에서 4대가 목사인 가정에서 태어나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거쳐 목사가 됐다. 이호문 목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부흥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영적 운동을 주도하고 숭의교회를 개척해 10만 성도의 초대형 교회로 성장시켰다.

 
2022년 9월 30일 85세 일기로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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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0/05 [08:14]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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